팜플러스
심창구 교수의 약창춘추
<350> 삶 속의 작은 깨달음 5
편집부
입력 2022-06-22 12:1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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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대학에서는 열심히 공부해야 
1967년 대학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 아버지가 인천에 있던 집을 파셨다. 그때부터 인천과 서울에서 가정교사 입주, 자취, 친척집을 전전하며 학교에 다녔다. 주 3~5회 가정교사를 해서 학비와 용돈을 벌었다. 무대는 주로 인천이었지만 서울 서교동의 한 교회 종탑방에서 입주 과외를 하기도 했다. 가정교사 자리가 없는 방학에는 그때까지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시골집에서 보냈다. 지루한 생활이었다.

학기 중에는 인천이나 부평에서 경인선을 타고 연건동에 있는 약대까지 통학하였다. 서울역에서 내린 다음 미아리행 20번 시내버스를 타고 동숭동 대학본부 앞에서 내려, 길을 건너  의대를 지나 약대까지 가는데 1시간 반 이상이 걸렸다. 아침마다 헐레벌떡 달려가도 지각하는 날이 많았다. 월~목요일에는 아침 9시부터 8시간의 수업이 있었고, 토요일에는 9시부터 5시간의 수업이 있었다. 수업이 끝나면 가정교사를 가야 했다. 그래서 당시 세시봉 같은 음악 다방이 인기였다는 소리는 훨씬 훗날에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통학과 가정교사에 지쳐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배우는 학과목들도 암기 과목이 많아 재미가 없었다. 약용식물학이나 생약학 등이 특히 그랬다. 게다가 ‘노는 것은 대학가서 놀아라’ 하신 고3 때 담임 선생님의 말씀을 청개구리처럼 잘 들은 것도 잘못이었다. 물론 진짜 이유는 내가 철이 덜 든 탓이었다.

대학교 3학년 때는 편집부장이 되어 교지인 ‘약원(藥苑)’ 제15호를 편집 발간하였다. 이때 싸게 해 준다는 브로커 말에 넘어가 을지로5가에 있는 조그만 출판사와 덜컥 계약을 하였다.계약 후 방문해 보니 말이 출판사이지 대중가요 가사집 같은 소책자나 만들 수 있는 매우 영세한 곳이었다. 영어와 한자, 그리고 화학구조식이 많은 약원 같은 책의 출판은 애당초 그 출판사 분수에 넘치는 일이었다. 예컨대 조판을 하려면 납으로 주조된 활자판에서 정확한 활자를 골라내야 하는데 문선공들이 영어나 한자를 잘 몰라 쩔쩔매기 일쑤였다. 그래서 계획보다 한참 늦게서야 조판이 완성되었다. 나는 그 무거운 납판들을 리어카에 싣고 손수 을지로 입구에 있는 ‘청풍인쇄소’까지 끌고 갔다. 일을 서두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 인쇄소는 500부도 안되는 책의 인쇄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윤전기 옆의 종이 더미 틈 속에서 밤을 지새며 잠시 우리 책을 인쇄에 걸어달라고 애원을 했다.

나는 편집부장이라는 학생회 임원 자격으로 3선개헌 반대 데모에도 참여하였다. 그때는 해마다 휴교령이 내릴 정도로 데모가 심하였다. 휴교령이 내리면 학생들은 전국 각지로 무전여행(無錢旅行)을 떠났다. 나도 친구들과 무주 구천동에 다녀오는 호사를 누려봤다.

이런 식으로 지냈는데도, 1971년 2월 졸업할 때 보니 내 성적이 제약학과 40명 중 5등이었다. 의외로 성적이 좋아서 놀랐다. 다른 친구들은 나보다도 공부를 안 한 모양이었다. 당시는 “노나 공부하나 마찬가지다”라는 노래가 약대에 유행할 때였다. 그때에 비하면 요즘의 약대 학생들은 정말 열심히 공부한다. 교수들의 강의내용이 충실해진 데다가, 공부를 안 하고는 배겨날 수 없는 시대가 된 덕분일 것이다. 

막상 졸업을 앞두고 보니, 뭐 하나 제대로 아는 것도 없이 학교에서 쫓겨나는 기분이 들었다. 일찍이 20세에 인생의 방향을 정하셨다는 아버지 말씀이 충격이 되어 머리에 맴돌았지만, 일단 대학원에 진학해 시간을 벌어보기로 하였다. 전공으로는 당시 미국에서 미생물약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하신 K교수님의 연구실을 택하고 싶었지만, 동기인 C군이 먼저 지원했다고 해서 포기하였다. 대신 1학년 때부터 낯이 익은 약품분석학 연구실을 택하였다. 그때 미생물 연구실로 갔으면 내 인생은 어찌 되었을까?

돌이켜 보니 역시 대학에서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정답이었다. 젊었을 때 열심히 공부한 걸 후회하는 사람을 내 평생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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