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창구 교수의 약창춘추
<342> 덕담과 빈말은 결코 하나마나 한 말이 아냐
편집부
입력 2022-02-23 16:14
수정 최종수정 2022-02-24 14:59
양력이든 음력이든 새해가 되면 으레 주고받는 말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이다. 한 해의 시작 시점에서 이보다 더 주고받기에 좋은 덕담(德談)은 없는 것 같다. 나는 가끔 이 말을 들으면 “네, 많이 주세요”라며 웃는다. 많이 받으란다고 많이 받아지는 것이 복인가? 이렇게 생각하면 이런 덕담은 사실 조금 실없어 보이기도 한다.
‘복 많이 받으세요’와 비슷한 말에 “건강하세요, 건강이 최고예요”란 덕담이 있다. 이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맞아요, 건강이 최고예요”라고 맞장구를 친다. 나이 먹은 사람치고 건강이 최고인 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러고 보면, 이 말도 하나마나 한 말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류의 덕담을 곧잘 주고받는다. 덕담은 주고받는 사람의 마음을 따듯하고 서로 친밀하게 만들어 준다. 서로에게 덕(德)이 된다고 해서 덕담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몇 십년 만에 만난 친구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어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올 때가 있다. 한 친구가 “너 하나도 안 늙었다. 옛날 고대로다”라고 한다. 그러면 이 말을 들은 사람도 “너야말로 옛날 고대로다”라고 화답(和答)한다. 몇십 년이 지났는데 옛날 그대로라고? 명백한 거짓말이다. 그래도 이런 인사를 나누고 나면 서로 기분이 좋다. 최소한 나빠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 말도 단순한 거짓말이 아닌 덕담인 것이다.
반면에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어디 아파? 안색(顔色)이 안 좋네” 하거나 “살이 왜 그렇게 많이 빠졌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본대로 느낀 대로 솔직하게 말한 것이지만, 그 말을 들은 사람은 문득 자기 건강을 염려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류의 솔직한 말은 덕담이라고 할 수 없다.
‘언제 밥 한번 먹읍시다’, ‘차 한잔합시다’ 또는 ‘언제 얼굴 한번 봅시다’란 인사말이 있다.헤어질 때, 또는 전화 통화를 끝낼 때 으레 하는 말이다. 가끔은 정말로 약속을 잡게 만들기도 해 주지만, 대개는 꼭 약속을 잡자는 뜻은 아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그냥 ‘그럽시다’라고 응수하면 그만이다. 그래서 이런 류의 말들을 ‘빈말’이라고 한다. 이 말을 듣고 ‘날짜를 잡자’고 수첩을 펴드는 사람이 있다면 고지식한 사람이다. 그러나 빈말이라고 해서 꼭 헛소리(虛言)라고는 할 수 없다. 빈말로라도 이런 말을 못 들으면 서운할 때가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런 잡문(雜文)에 인용하기는 송구하지만, 고 하용조 목사님은 ‘말에는 권세가 있다’고 말했다. 세상에 영향력이 없는 말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예컨대 부부간에 ‘사랑한다’는 말을,빈말로라도 반복하다 보면 어느덧 서로 정말로 사랑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니 설사 본심(本心)이 아니더라도 나쁜 말보다 좋은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나는 주례를 설 때, 부부간에 솔직한 대화를 하지 말라는 주의를 준다. 솔직하게 대화를 나누다 보면 아무래도 서로 상대방의 단점을 지적하게 되기 때문이다. 솔직한 지적을 했다고 상대방의 단점은 결코 고쳐지지 않는다. 대화가 길어질수록 누가 더 상대방의 치명적인 단점을 지적하는가 하는, 상처(傷處)주기 시합으로 변질될 따름이다. 결국 대화 전보다 부부 관계가 더 나빠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남편은 부부싸움에서 이기지 않도록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남편이 승리할 경우의 후유증은 정말 심각하기 때문이다.젊은 신랑은 모르겠지만, 우리 나이쯤 되는 남편들은 체험을 통해 모두 다 아는 사실이다.
요컨대 부부싸움을 건설적으로 승화(昇華)시키기 위해서는 솔직한 대화 대신, 상대방에 대한 덕담, 즉 빈말이라도 아부(阿附)에 가까운 칭찬을 해야 한다.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니 도(道)를 닦아야 한다. 세상의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빈말이더라도 상대방의 기분을 배려하는 덕담을 주고받는,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건강하세요 .언제 뵙고 식사 한 번 하십시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