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거울을 보거나 상대방을 볼 때에 얼굴부터 본다. 얼굴이 그 사람을 대표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모두 얼굴의 생김새,즉 용모(容貌)에 신경을 쓴다. 옛날에 ‘얼굴 뜯어먹고 사냐?’는 말이 있었지만, 얼굴의 아름다움, 즉 미모(美貌)에 대한 관심은 세월이 갈수록 더 커지는 것 같다. 신사동에 즐비한 성형외과들이 웅변(雄辯)으로 이를 증명한다.
얼굴을 보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그 사람의 감정이 얼굴에 나타난다. 웃고 있으면 기분이 좋은 것이고, 찡그리고 있으면 슬픈 것이며, 붉으락푸르락하면 화가 난 것이며, 안면(顔面)에 홍조(紅潮)를 띠고 있으면 부끄러운 것이다. 예부터 아랫사람은 윗사람의 안색(顔色)부터 살펴야 했다. 어딘가 안색이 애매하면 언행(言行)을 삼가는 것이 안전하다. 다음으로 안색으로부터 그 사람의 건강 상태도 짐작할 수 있다. 안면(顔面)이 불그레하면 건강한 것이고, 창백(蒼白)하면 아프거나 피곤한 것이고, 이상하게 검으면 병을 앓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이처럼 얼굴에 사람의 감정과 건강상태, 즉 ‘얼(魂)’이 나타난다고 해서 ‘얼’굴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사귀어 아는 사람이 많을 때, ‘얼굴이 넓다’거나 ‘안면이 넓다’고 한다. ‘발이 넓다’와 비슷한 의미이다. 다른 사람과 사귀려면 우선 안면(顔面)부터 터야 한다. 그래서 사람을 많이 알수록 유리한 사업을 안면(顔面)장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런저런 의미로 안면이 넓은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실제로 얼굴이 큰 것은 ‘얼큰이’라고해서 다들 싫어한다. 그래서 얼굴이 작아 보이도록 화장하는 것이 유행이고, 심지어 성형외과에 가서 얼굴을 작게 만드는 수술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옛날에는 어느 정도 얼굴이 넙데데해야 잘생긴 걸로 쳐줬었다.얼굴이 조막만 하면 ‘오종종하다’고 흉을 보기도 했다. 예쁜 얼굴의 기준이 세월에 따라 정반대로 바뀐 것이다.
‘얼굴이 잘생긴 사람은 언젠가는 얼굴값 한다’고 지레 비난하는 말이 있다. 대개는 시샘에서 나온 말이다. 반면에 미모가 좀 떨어지는 사람의 행동을 보고는 ‘꼴값한다’고 비아냥댔다. 비열한 말버릇이다. 옛날 다방(茶房)에서는 되도록 예쁜 여자를 ‘얼굴마담’으로 고용했었다. 일본어로 얼굴이란 뜻인 ‘가오’를 써서 ‘가오마담’이라고도 했다. 이는 ‘당시의 주 고객인 남자 손님들을 유인하여 매상(賣上)을 올리려 한 일종의 미인계(美人計)였다. 마담의 용모가 다방의 브랜드 역할을 하기도 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참, 다방이란 오늘날 커피숍의 고어(古語)이다.
그 시절에 ‘가오(얼굴)잡고 다닌다’라는 말이 있었다. 잘났다고 으쓱대며 다니는 모습을 빗대는 말이었다. 비슷한 말로 ‘목에 힘주고 다닌다’는 말도 있었는데, 이는 체력이나 권력을 과시하는 모습을 가리킨다.
얼굴이 잘생기면 대체로 범사(凡事)에 유리하지만, 너무 잘 생겨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 사장님보다 더 사장님같이 잘 생겨서, 사람들로부터 사장에 앞서 인사를 받는 바람에 사장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부하도 있다. 그런 부하는 대개 오래지 않아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
크게 성공한 사람은 얼굴을 들고 거리를 활보(闊步)할 수 있다. 그러나 성공했다고 죽마고우(竹馬故友)를 외면(外面)하면 안면을 바꾼 사람 또는 안면몰수(顔面沒收)한 사람이라고 욕을 먹는다. 반면에 명예를 실추시킨 사람이 부끄럼도 모르고 활개치고 다니면 ‘벼룩도 낯짝이 있지’, ‘얼굴이 두껍네’, ‘얼굴에 철판 깔았나?’ 또는 철면피(鐵面皮)라는 욕을 먹는다. 그러고 보면 어느 정도 인격적으로 품위가 있는 얼굴을 들고 살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3년째 사람들과 대면(對面, face-to-face)하기가 어려워졌다. 전에는 ‘언제 밥 한 번 먹읍시다’가 인사였는데 이제는 ‘언제 얼굴 한 번 봅시다’가 전화 인사가 된 지 오래다. 얼굴을 보는 것이 만남의 첫 단계란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요즘처럼 얼굴 보기가 소중하게 느껴진 적이 없다.
여러분, 건강하시고 언제 얼굴 한 번 꼭 보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