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요즘 티브이에서 트로트 가수 오디션(audition)이 한창이다. 수많은 가수 지망생과 무명 가수들이 출전하는데, 그중에는 깜짝 놀랄 정도로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이 많다.
나는 그 중 김태연이라는 9살 먹은 소녀 가수에 흠뻑 빠져 있다. 솔직히 이들이, 이들을 심사하러 나와 있는 원로 가수들보다도 훨씬 노래를 잘 부르는 경우도 많다. 어떤 심사위원은 출전자가 자기보다 노래를 더 잘 부른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 중에서 가수로 선발되는 사람은 얼마나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일까 생각해 본다.
문득 내가 현직 교수일 때가 생각난다. 조교수직 공채에 응모한 젊은 학자들의 공개 발표를 심사할 때마다, 과연 내가 저 사람들을 심사할 자격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옛날이니까 내가 교수가 되었지 요즘 같으면 어림도 없겠구나 생각할 때도 많았다. 그런 오디션 같은 경쟁을 통과해야 교수로 채용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렇게 뽑힌 교수들의 실력이 예전과 다를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 동네에 있는 작은 음식점들이 코로나 때문에 연쇄적으로 문을 닫고 있어 걱정이다. 그런데 앞 동네에 있는 막국수 집은 코로나 이전보다 더 장사가 잘된다. 맛이 있다고 소문이 나서이다. 점심때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고, 좀 늦게 가면 재료가 떨어졌다고 손님을 받지 않는다. 이처럼 코로나 상황을 맞이하여 맛이 없는 집과 맛집의 운명이 극명(克明)하게 갈리고 있다. 이제 음식점도 맛의 오디션을 통과해야만 살아남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처럼 지금은 가(可)히 오디션 시대이다. 이 시대의 특징은 무한경쟁이고, 그 결과로 실력자만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이제 아마추어의 시대는 지나갔다. 프로페셔널, 즉 전문가만 살아남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든 분야에서 살아남기 위해 실력 배양에 목숨을 건다. 세대 간 경쟁도 치열해졌다. 요즘 젊은이와 어린이들을 보면, 어떻게 그런 높은 실력을 갖추게 되었는지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이는 우리 국민 특유의 경쟁적인 학구열 덕분일 것이다. 그 결과로 이제 젊은 학자, 신인 가수, 새로 연 식당 등이 소위 원로들을 밀어내고 있다. 자연스러운 귀결(歸結)이다. 오직 실력만이 대접받는 시대가 되었다. 원로나 고참이라는 사실만으로는 대접받지 못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당사자들은 힘들어졌지만, 젊은 학자들의 실력이 향상되고, 어린 신인 가수들이 노래를 잘 부르고, 새로운 맛집이 생기는 것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젊은 전문가들이 많이 배출되는 것은 국가적으로 좋은 일이다. 그런 나라의 미래가 그렇지 않은 나라보다 밝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미래는 지극히 희망적이다. 물론 우리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이 계속된다는 전제 아래에서의 전망(展望)이다.
이쯤에서 우리 같은 소위 ‘어르신’ 세대의 역할을 한번 생각해 본다. 어르신들은 자고(自古)로 젊은이들의 생각과 행동을 못 미더워한다. 옛날부터 그랬다. 공자님도 당신의 시대를 말세(末世)라고 했단다. 어르신의 또 다른 특징은 나라 걱정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자기 경험에서 우러난 걱정이다. 그러나 젊은이는 이를 노파심(老婆心)이라고 폄하(貶下)한다.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것이다.
2세 경영자들은 대체로 창업주의 간섭 때문에 힘들어한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제발 자기를 믿고 맡겨 달라고 호소한다. 실제로 창업주의 전적인 신뢰와 위임 덕분에 회사를 크게 발전시킨 2세도 적지 않다. 창업주가 골프에 전념해야 회사가 잘 돌아간다는 말이 농담만은 아닌 모양이다.
오늘날의 젊은 세대는 마치 대장간의 쇠처럼, 오디션이라는 담금질을 통해 단련되었다. 그들의 전문 지식과 능력이 어르신 못지않은 분야가 많다. 그러니 이제 그들을 믿고 그들에게 조국의 앞날을 맡겨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세월이 흐르니 안 맡길 도리도 없다.
이 지점에서 젊은 세대에게 하나 부탁한다. 주연(主演) 자리를 넘겨받았으니, 범사(凡事)에 어르신의 조언(助言)을 구하라는 것이다. 어르신들은 그걸 좋아한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 하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