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플러스
심창구 교수의 약창춘추
<313> 약사 직능의 진화
편집부
입력 2020-12-16 23:38
수정
▲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요즘 ‘전원일기(田園日記)’라고 하는, 지난 1980년말부터 2002년말까지 22년간 인기리에 방송되었던 농촌 TV 드라마의 재방송을 가끔 본다. 훈훈한 이야기도 많이 나오지만 드라마를 관통하고 있는 분위기는 농업이 쇠락하여 머지 않아 농촌이 붕괴될 것 같다는 무거움이었다. 그런데 오늘날의 우리 농촌의 삶은 드라마의 예상과 달리 붕괴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 때보다 나아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돌아보면 우리나라의 제약산업도 1987년에 물질특허제도가 도입되면 대부분 붕괴될 것이라는 무거운 전망이 나돌았었다. 2000년의 의약분업 실시도 일부 제약기업에는 간단치 않은 시련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나라 제약산업은 놀랍게도 이런 위기들을 잘 극복해 내고 오히려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제약산업은 그 사이에 신약을 30개나 개발하여 소위 ‘신약개발 강국’ 리스트에 우리나라 이름을 올릴 수 있었으며, 금년 코로나 사태에서도 타 산업과 달리 의미 있는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천만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지난 11월 20일, 인천에 있는 가천대 약대 학생들에게 ‘예비약사의 진로와 자세’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할 기회를 가졌다. 비록 마스크를 쓰고 한 강의였지만 분위기는 오히려 진지했다. 강의 내용은 한마디로 우리나라의 약학 및 약업이 발전함에 따라 약대 졸업생들의 진출분야도 옛날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으니, 과거의 시각에 집착하지 말고 새로운 미래를 예측하면서 자신의 진로를 선택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었다. 강의 내용의 일부를 이하에 소개 한다.
약학은 기본적으로 신약의 창제 및 개발 (創藥, Creation Pharmacy), 의약품의 제조 (製藥, Manufacturing Pharmacy), 그리고 의약품의 임상 사용(用藥, Clinical Pharmacy)이라는 3대 분야에 관한 이론과 기술을 연마하는 학문이다. 그 동안 약대 졸업생의 진로도 자연히 이 3대 분야에 집중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약학이 급속히 진보함에 따라 이들 대 분야(大分野)도 진화(進化) 분화(分化)를 거듭하여 다양한 중소분야가 새롭게 생겨나고 있다.
우선 창약분야에서는 신약창조에 관한 기초 연구를 하는 연구기관 (대학, 회사, 국공립 연구기관) 외에, 신약의 개발 과정 전반을 기획 관리하는 벤처 회사들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벤처 회사의 연구자금 조달을 위한 벤처 캐피탈 회사들도 줄을 잇고 있다. 또 신약개발과 관련하여 변리사, 변호사, 벤처 CEO, 신약개발 자문, 비 임상 또는 임상시험 관리, CLO, 벤처 캐피탈리스트 등이 이미 약사의 직역(職域)이 되었다.
제약분야에서는 개발 전문, 제조 전문(CMO), 특정제제 (소프트 캡슐 등) 전문제조, 판매 전문 등으로 제약회사의 기능이 진화, 분화 되고 있다. 또 의약품 원료, 첨가제, 코팅색소, 주사제용 고무마개, 실험용 동물, 제약기기, 시험장비, 공조시설 (양압, 음압 시설) 등을 제조 또는 취급하는 회사들, 또 GMP 등을 교육하는 전문 기관도 생겨났다. 기존의 제약회사 내에서의 진출 분야도 다양해졌다.
순수 연구는 물론, 학술, 개발 (식약처 승인 받기), 글로벌 업무, 영업, 주가 관리 등 개인의 능력과 취향에 따라 진출할 수 있는 분야가 다양해 진 것이다. 또 의약품 시장이 국제적으로 개방됨에 따라 많은 다국적 기업이 국내에 생겼는데 약사들, 특히 여약사들의 이들 기업으로의 진출이 괄목할만하다.
끝으로 용약분야 업무는 크게 병원약국과 일반약국에서 환자에 대한 의약품의 투여로 나눌 수 있는데, 앞으로 환자 개개인의 유전적 특성 등에 따른 환자 맞춤형 약물요법 (personalized drug therapy)이 대세를 이룰 전망이다. 이에 따라 복약지도 등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될 전망이다. 병원약제부에서는 숙원사업이던 특수 질환 전문약사 제도가 실시됨에 따라 약사들의 직능도 다양화, 전문화 될 전망이다.
나는 인공지능의 시대에도 약사의 직역은 더욱 진화할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