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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창구 교수의 약창춘추
<307> 팩트체크 (1). 위액(胃液)의 pH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입력 2020-09-16 10:2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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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첨단과학의 시대에도 ‘잘못된 기초 지식’을 바탕 삼아 진행되고 있는 연구들이 적지 않다. 이는 진실의 탑을 모래 위에 세우려 드는 것처럼 결국은 헛수고가 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약제학 영역에서도 그런 ‘잘못된 기초 지식’이 몇 가지 눈에 띈다. 오늘은 ‘위액(胃液)은 늘 산성(酸性)이다’라는 명제에 대해 팩트 체크를 해 보고자 한다.

사람이 정제(錠劑)를 복용하면 정제가 처음 만나는 환경이 위액이다. 먹은 약이 약효를 나타내려면 1) 정제 중에 들어 있는 약물(藥物, 약효 성분)이 일단 위액 속으로 용출(溶出), 즉 녹아 나온 후, 2) 위의 유문(幽門)을 통과해 소장(小腸)으로 내려가야 하고, 3) 거기에서 소장 표면을 덮고 있는 소장상피세포(小腸上皮細胞)를 통과해서 혈액 중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 순차적인 과정을 흡수(吸收)라고 부르는데, 흡수의 첫 단계가 약물이 위액에서 용출되는 과정인 것이다.    

약물이 위액에 빨리 용출되기 위해서는 정제 속에 들어 있는 약물이 위액에 잘 녹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염기성(鹽基性, 또는 알칼리성) 약물은 산성(酸性)인 물에 빨리 녹고 알칼리성 물에는 잘 녹지 않는다. 그러므로 위액의 산성도(酸性度, pH)는 정제를 복용하였을 때 함유된 약물이 용출(溶出)되는 속도를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위액의 산성도(pH)는 약물의 용출속도, 즉 흡수 및 약효 발현 속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위액의 pH는 얼마일까? 모든 교과서는 ‘위액의 pH는 위에서 분비되는 염산(鹽酸) 때문에 1~2’라고 쓰고 있다. 내가 쓴 생물약제학 교과서에도 공복 시에는 1.2~1.8, 식후에는 3.5~5.0이라고 하였다. 약사 면허 시험에서도 1~2라고 답해야 정답으로 인정해 준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들에 의하면 이는 늘 옳은 것은 아니었다. 

한 연구에 의하면 위액의 pH는 인종(人種, race)과 나이(age)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미국인의 경우 무염산증(無鹽酸症, achlorhydria)인 사람이 20-40세는 12.5%, 40-60세는 26.2%, 60세 이상은 31.5%에 이른다. 나이가 들수록 위액의 pH가 산성이 아니라 중성 내지는 약알칼리성인 미국인이 많아지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특히 일본인에게 이런 경향이 현저하였다. 무염산증 환자의 빈도가 각각의 연령대에서 52.5%, 81.6%, 90%에 이르는 것이다. 일본 젊은이의 절반 이상, 그리고 40대 이상의 대부분이 무염산증을 보였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어떨까? 조사 결과 각 연령대에서 40.9%, 46.2%, 57%가 무염산증이었다. 일본인 보다는 적지만 미국인에 비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특히 고령자가 무염산증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염기성 약물(정제)은 미국인에게는 일반적으로는 효과가 잘 (빨리, 강하게) 나타나겠지만 특히 고령의 일본 노인에서는 약효가 잘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위액이 산성(미국인)일 때는 약이 잘 (빨리, 많이) 녹지만 산이 없는 경우, 즉 액성이 중성이나 약알칼리성인 고령자의 위액 중에서는 염기성인 약물이 잘 안 녹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일본 사람들보다는 덜 하지만, 역시 고령이 될수록 무염산증인 사람이 적지 않아 염기성 약물의 약효가 잘 안 나타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고령자에게 염기성 약물을 투여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여 세 나라의 정제에 대한 용출 시험이 다르게 규정되어 있음에 주목하여야 한다. 즉 각 나라의 약전(藥典)을 보면 미국은 정제의 용출시험액으로 pH 1.2 액을, 우리나라는 pH 1.2, 4.0, 6.8 및 증류수를, 일본은 염기성 약물에 대해서는 pH 1.2, 3~5, 6.8 액 및 증류수를, 산성 약물에 대해서는 pH 1.2, 5.5~6.5, 6.7~7.5 및 증류수를 사용 하도록 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위액의 pH는 언제나 1~2’라는 고정 관념을 갖고 신약개발이나 정제의 처방설계에 임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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