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가(宗家)에서는 종종 객과 빈을 달리 대접한다고 한다. 오래 전 경주 김씨 17대 종손(宗孫)인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객이나 빈은 둘 다 종가를 찾아 온 손님이지만, 객은 과객(過客)의 용례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주인의 사전(事前) 초청을 받지 않고 지나가다 방문한 나그네 급 손님을 말한다.
반면에 빈은 주인의 초청을 받고 온 손님을 말한다. 손님이 종가에 들어서면 종부(宗婦)는 객에게는 식혜를, 빈에게는 수정과(水正果)를 대접한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식혜는 손님을 맞는 순간 항아리에서 한 그릇 떠 내 오면 그만이지만, 수정과는 손님이 오기 전에 미리 곶감을 한 두 개 집어 넣고 풀어지기를 기다렸다가 떠 와야 하기 때문이란다.
아무리 봉제사 접빈객(奉祭祀 接賓客, 제사를 받들고 손님을 대접하는 일)을 첫번째 사명으로 삼는 종가라 하더라도 갑자기 들이닥친 객에게는 식혜를 떠 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혹시 종가를 방문할 경우, 식혜가 나오나 수정과가 나오나를 보면 내가 객인지 빈인지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식혜가 나온다면 ‘아! 나는 그저 객이구나’ 깨닫고 알아서 처신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옛날에는 그랬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요즘도 초청 받은 손님인 빈은 각종 행사장에서 내빈(來賓), 내빈(內賓) 또는 외빈(外賓)으로 불리며 제대로 된 대접을 받는다. 접수 테이블의 안내인들이 가장 큰 임무는 빈을 정중히 안내하는 일이다. 빈을 객으로 오인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된다. 눈치 빠르게 빈을 식별하여 꽃 장식을 윗 주머니에 달아 드린 다음 빈 전용의 지정석으로 안내해야 한다.
그러나 객에게는 대개 꽃을 달아주지 않으며 단 아래(壇下)있는 일반석에 알아서 앉으라는 안내(?)를 한다. 요컨대 객은 옛날에는 종가에서 수정과를 못 얻어 먹었고, 오늘날에는 행사장에서 빈보다 한 단계 낮은 예우를 받고 있다.
30여년전인 1987년, 1년간 미국 퍼듀대학에 체류했었는데 그 때 내 신분이 영어로 visiting professor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visiting professor를 객원교수(客員敎授)라고 부르고 있었다. 고위층 인사가 일정 기간 미국 대학에 가는 경우 ‘객원교수로 갔다’라는 기사가 언론에 나곤 하였다.
‘객원’ 교수라고 하면 어딘지 모르게 상대 기관이 대단한 손님으로 모셔갔다는 이미지가 풍긴다. 그러나 내 경우는 퍼듀대학이 나를 대단하게 여겨 모셔 간 것까지는 아니기 때문에 나를 ‘객원교수’라고 표현하는 것은 좀 건방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내 신분을 영어 표현대로 방문교수(訪問敎授)라고 표기하였다.
그러나 훗날 종손인 친구로부터 빈과 객에 대해 배우고 나니 ‘객원교수’가 방문교수 못지 않게 매우 적절한 번역어임을 깨닫게 되었다. visiting professor가 상대기관으로부터 정중하게 초청을 받은 빈 급 교수가 아니라, ‘뭐 오시려면 오세요’ 정도의 방문 허락을 받은 객 급 교수를 말하는 용어라면 말이다.
말이 난 김에 교환교수(交換敎授)라는 용어에 대해서도 잠시 살펴 보자. 한 때 교수가 미국에 가면 ‘교환교수로 간다’는 표현이 많이 사용되었다. 교환교수란 문자 그대로 내가 그 대학으로 가는 대신 그 대학에서도 누군가가 우리 대학으로 오는 교환 프로그램(exchange program)에 따라 오고 간 양 쪽 교수를 지칭해야 옳을 것이다.
그런데 실은 객원교수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교환교수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뭔가 좀 있어 보이려는 허영심의 산물은 아니었을까? 요즘은 그런 용어에 미련을 두는 교수도 좀 줄어든 것 같다. 교수들의 내용이 충실해짐에 따라 이름에 대한 허영이 줄어든 것 같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사족 하나. 어떤 직함 앞에 명예, 겸임, 객원, 초빙 같은 군더더기(?) 수식어가 붙으면, 오히려 수식어가 없는 직함보다 실속이 없는 것 같다. 내가 ‘명예’교수가 되고 나서 깨닫는 사실이다.
그나저나 깨끗이 끝나지 않는 코로나 사태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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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 객(客)과 빈(賓)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기자
webmaster@yakup.com
입력 2020-07-01 09:50
수정 최종수정 2020-07-07 17:41
종가(宗家)에서는 종종 객과 빈을 달리 대접한다고 한다. 오래 전 경주 김씨 17대 종손(宗孫)인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객이나 빈은 둘 다 종가를 찾아 온 손님이지만, 객은 과객(過客)의 용례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주인의 사전(事前) 초청을 받지 않고 지나가다 방문한 나그네 급 손님을 말한다.
반면에 빈은 주인의 초청을 받고 온 손님을 말한다. 손님이 종가에 들어서면 종부(宗婦)는 객에게는 식혜를, 빈에게는 수정과(水正果)를 대접한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식혜는 손님을 맞는 순간 항아리에서 한 그릇 떠 내 오면 그만이지만, 수정과는 손님이 오기 전에 미리 곶감을 한 두 개 집어 넣고 풀어지기를 기다렸다가 떠 와야 하기 때문이란다.
아무리 봉제사 접빈객(奉祭祀 接賓客, 제사를 받들고 손님을 대접하는 일)을 첫번째 사명으로 삼는 종가라 하더라도 갑자기 들이닥친 객에게는 식혜를 떠 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혹시 종가를 방문할 경우, 식혜가 나오나 수정과가 나오나를 보면 내가 객인지 빈인지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식혜가 나온다면 ‘아! 나는 그저 객이구나’ 깨닫고 알아서 처신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옛날에는 그랬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요즘도 초청 받은 손님인 빈은 각종 행사장에서 내빈(來賓), 내빈(內賓) 또는 외빈(外賓)으로 불리며 제대로 된 대접을 받는다. 접수 테이블의 안내인들이 가장 큰 임무는 빈을 정중히 안내하는 일이다. 빈을 객으로 오인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된다. 눈치 빠르게 빈을 식별하여 꽃 장식을 윗 주머니에 달아 드린 다음 빈 전용의 지정석으로 안내해야 한다.
그러나 객에게는 대개 꽃을 달아주지 않으며 단 아래(壇下)있는 일반석에 알아서 앉으라는 안내(?)를 한다. 요컨대 객은 옛날에는 종가에서 수정과를 못 얻어 먹었고, 오늘날에는 행사장에서 빈보다 한 단계 낮은 예우를 받고 있다.
30여년전인 1987년, 1년간 미국 퍼듀대학에 체류했었는데 그 때 내 신분이 영어로 visiting professor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visiting professor를 객원교수(客員敎授)라고 부르고 있었다. 고위층 인사가 일정 기간 미국 대학에 가는 경우 ‘객원교수로 갔다’라는 기사가 언론에 나곤 하였다.
‘객원’ 교수라고 하면 어딘지 모르게 상대 기관이 대단한 손님으로 모셔갔다는 이미지가 풍긴다. 그러나 내 경우는 퍼듀대학이 나를 대단하게 여겨 모셔 간 것까지는 아니기 때문에 나를 ‘객원교수’라고 표현하는 것은 좀 건방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내 신분을 영어 표현대로 방문교수(訪問敎授)라고 표기하였다.
그러나 훗날 종손인 친구로부터 빈과 객에 대해 배우고 나니 ‘객원교수’가 방문교수 못지 않게 매우 적절한 번역어임을 깨닫게 되었다. visiting professor가 상대기관으로부터 정중하게 초청을 받은 빈 급 교수가 아니라, ‘뭐 오시려면 오세요’ 정도의 방문 허락을 받은 객 급 교수를 말하는 용어라면 말이다.
말이 난 김에 교환교수(交換敎授)라는 용어에 대해서도 잠시 살펴 보자. 한 때 교수가 미국에 가면 ‘교환교수로 간다’는 표현이 많이 사용되었다. 교환교수란 문자 그대로 내가 그 대학으로 가는 대신 그 대학에서도 누군가가 우리 대학으로 오는 교환 프로그램(exchange program)에 따라 오고 간 양 쪽 교수를 지칭해야 옳을 것이다.
그런데 실은 객원교수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교환교수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뭔가 좀 있어 보이려는 허영심의 산물은 아니었을까? 요즘은 그런 용어에 미련을 두는 교수도 좀 줄어든 것 같다. 교수들의 내용이 충실해짐에 따라 이름에 대한 허영이 줄어든 것 같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사족 하나. 어떤 직함 앞에 명예, 겸임, 객원, 초빙 같은 군더더기(?) 수식어가 붙으면, 오히려 수식어가 없는 직함보다 실속이 없는 것 같다. 내가 ‘명예’교수가 되고 나서 깨닫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