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말, 『대한민국 약학박사 1호, 대하 홍문화』란 책이 서울대 약학역사관에서 발간되었다. 이를 기념할 겸, 그리고 코로나 사태로 졸업식도 제대로 못하고 이번에 약학대학을 졸업한 후배들을 격려하고자, 1982년 홍문화 교수님 (당시 66세)이 서울대 약대의 교지 『약원』에 써 주신 글 (“약대를 졸업하는 후배에게”)을 소개한다. 시대를 초월한 고매한 가르침에 감동을 금할 수 없다.
두려운 존재
새 생명이 움트는 봄과 더불어 우리 약학계에 새로운 후배들이 많이 배출된 것을 충심으로 환영하며, 여러분들의 앞날에 무한한 광명과 성공이 있기를 축복하는 바이다. (중략) 우리의 약학계나 나라 전체의 미래가 여러분 두 어깨에 걸려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여러분들이야말로 두려운 존재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래서 옛 사람들이 ‘후생(後生)은 가외(可畏)라’라는 표현, 또는 뒤에 난 뿔이 우뚝하다는 표현을 써서 후배들에게 모든 소망을 걸었던 것이다. (중략) 부디 바라건대, 나이 먹은 기성세대들이 청순한 후배 여러분들에게 기대를 거는 이 간절한 마음을 음미하여 주기 바란다. 대망(大望)에 벅찬 친애하는 후배들이여! 부디 두려운 존재가 되라.
일이관지(一以貫之)
“그 사람의 행위가 그의 지식보다도 위대할 때 그 지식은 유익하다”라고 말한 사람이 있다. 여러분들이 그 동안 대학에서 배우고 연구한 지식이 많은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와 같은 지식을 사회에서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가치가 결정된다. 여러분들은 약학자(藥學者)이며, 약학이 사회에서 무엇으로 봉사하는 학문인가를 분명히 생각할 필요가 있다. 목표나 목적의식 없이 길을 걷는 사람에게 도달이란 있을 수 없다. (중략).
위대한 계획이란 장기계획(長期計劃)이다. 당장 눈앞의 조그만 이해 타산에 얽매어 잔재주를 부려서는 아니 된다. 한번 결심하여 이 길이 바로 내가 평생을 걸어야 할 길이라고 작정이 되면 어떠한 곤란과 애로가 있더라도 뚫고 나가는 데에 인생의 보람이 있는 것이다.
현자(賢者)란 무엇인가? 모든 사람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사람이다. 대학을 나서서 사회인이 된다는 것은 배우는 것의 종말이 아니라, 바야흐로 이제부터 인생이 시작되는 것이다. 평생을 두고 겸허하게 배우는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다.
강자(强者)란 무엇인가? 자기의 정열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하나의 목표가 설정되면 모든 다른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강자가 되어야 한다.
부자(富者)란 무엇인가? 자기가 뽑은 제비에 만족을 느끼는 사람이다. 여러분들은 이미 대학에 들어올 때부터 약학자가 되겠다는 제비를 뽑아 쥐었던 것이다. 여러분에게 여러 가지 재능과 가능성이 있을 것이지만, 훌륭한 약학자가 되기 위하여 모든 정열을 오르지 약학을 위하여 쏟아야 한다. (중략)
사람의 한 평생을 논할 때, 평생을 하나의 목표를 위하여 소위 ‘일이관지(一以貫之)’한 사람처럼 숭고한 것이 없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지 말라
대학이라는 학창은 이를테면 사회의 온실이나 비닐하우스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지금 첫발을 내디디려고 하는 사회는 때로는 풍우가 몰아치고, 때로는 치열한 약육강식의 경쟁이 소용돌이치는 개방사회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문제가 경제적 독립이다.
이제는 부모의 품을 떠나서 스스로 독립하여야 한다. 그러나 친애하는 후배들이여! 걱정하지 말라.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 하고 길쌈도 아니 하느니라” (중략)” 먹고 입을 것을 위하여 직장을 선택하지 말고, 무엇을 하는 것이 가장 보람 있는 길인가를 골라 택하도록 하여라.
결어
(중략) 우리나라, 우리 민족도 한 번 세계에서 번쩍하게 소리치면서 살아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잘 되어야 한다. 친애하는 후배 여러분!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앞으로의 성공 여부가 바로 우리나라의 앞날의 운명과 직결된다. (중략) 모든 행운과 신의 가호가 그대들에게 있기를 축원하여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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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7> 故 홍문화 교수님의 격려사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기자
webmaster@yakup.com
입력 2020-04-22 10:16
수정 최종수정 2020-04-22 10:57
▲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지난 3월 말, 『대한민국 약학박사 1호, 대하 홍문화』란 책이 서울대 약학역사관에서 발간되었다. 이를 기념할 겸, 그리고 코로나 사태로 졸업식도 제대로 못하고 이번에 약학대학을 졸업한 후배들을 격려하고자, 1982년 홍문화 교수님 (당시 66세)이 서울대 약대의 교지 『약원』에 써 주신 글 (“약대를 졸업하는 후배에게”)을 소개한다. 시대를 초월한 고매한 가르침에 감동을 금할 수 없다.
두려운 존재
새 생명이 움트는 봄과 더불어 우리 약학계에 새로운 후배들이 많이 배출된 것을 충심으로 환영하며, 여러분들의 앞날에 무한한 광명과 성공이 있기를 축복하는 바이다. (중략) 우리의 약학계나 나라 전체의 미래가 여러분 두 어깨에 걸려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여러분들이야말로 두려운 존재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래서 옛 사람들이 ‘후생(後生)은 가외(可畏)라’라는 표현, 또는 뒤에 난 뿔이 우뚝하다는 표현을 써서 후배들에게 모든 소망을 걸었던 것이다. (중략) 부디 바라건대, 나이 먹은 기성세대들이 청순한 후배 여러분들에게 기대를 거는 이 간절한 마음을 음미하여 주기 바란다. 대망(大望)에 벅찬 친애하는 후배들이여! 부디 두려운 존재가 되라.
일이관지(一以貫之)
“그 사람의 행위가 그의 지식보다도 위대할 때 그 지식은 유익하다”라고 말한 사람이 있다. 여러분들이 그 동안 대학에서 배우고 연구한 지식이 많은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와 같은 지식을 사회에서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가치가 결정된다. 여러분들은 약학자(藥學者)이며, 약학이 사회에서 무엇으로 봉사하는 학문인가를 분명히 생각할 필요가 있다. 목표나 목적의식 없이 길을 걷는 사람에게 도달이란 있을 수 없다. (중략).
위대한 계획이란 장기계획(長期計劃)이다. 당장 눈앞의 조그만 이해 타산에 얽매어 잔재주를 부려서는 아니 된다. 한번 결심하여 이 길이 바로 내가 평생을 걸어야 할 길이라고 작정이 되면 어떠한 곤란과 애로가 있더라도 뚫고 나가는 데에 인생의 보람이 있는 것이다.
현자(賢者)란 무엇인가? 모든 사람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사람이다. 대학을 나서서 사회인이 된다는 것은 배우는 것의 종말이 아니라, 바야흐로 이제부터 인생이 시작되는 것이다. 평생을 두고 겸허하게 배우는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다.
강자(强者)란 무엇인가? 자기의 정열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하나의 목표가 설정되면 모든 다른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강자가 되어야 한다.
부자(富者)란 무엇인가? 자기가 뽑은 제비에 만족을 느끼는 사람이다. 여러분들은 이미 대학에 들어올 때부터 약학자가 되겠다는 제비를 뽑아 쥐었던 것이다. 여러분에게 여러 가지 재능과 가능성이 있을 것이지만, 훌륭한 약학자가 되기 위하여 모든 정열을 오르지 약학을 위하여 쏟아야 한다. (중략)
사람의 한 평생을 논할 때, 평생을 하나의 목표를 위하여 소위 ‘일이관지(一以貫之)’한 사람처럼 숭고한 것이 없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지 말라
대학이라는 학창은 이를테면 사회의 온실이나 비닐하우스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지금 첫발을 내디디려고 하는 사회는 때로는 풍우가 몰아치고, 때로는 치열한 약육강식의 경쟁이 소용돌이치는 개방사회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문제가 경제적 독립이다.
이제는 부모의 품을 떠나서 스스로 독립하여야 한다. 그러나 친애하는 후배들이여! 걱정하지 말라.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 하고 길쌈도 아니 하느니라” (중략)” 먹고 입을 것을 위하여 직장을 선택하지 말고, 무엇을 하는 것이 가장 보람 있는 길인가를 골라 택하도록 하여라.
결어
(중략) 우리나라, 우리 민족도 한 번 세계에서 번쩍하게 소리치면서 살아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잘 되어야 한다. 친애하는 후배 여러분!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앞으로의 성공 여부가 바로 우리나라의 앞날의 운명과 직결된다. (중략) 모든 행운과 신의 가호가 그대들에게 있기를 축원하여 마지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