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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창구 교수의 약창춘추
<283> 이등병, 병기수입, 조의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입력 2019-10-02 09:38 수정 최종수정 2019-10-02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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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1. 이등병, 일등병

군대에 들어가 보니 사병들의 계급을 부르는 호칭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입대 후 소정의 훈련을 받고 나면 계급장에 작대기 하나를 달아주며 ‘이병(二兵) 또는 이등병(二等兵)’이라고 부른다.

다시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작대기 한 개를 더 달아주며 이번에는 ‘일병(一兵) 또는 일등병(一等兵)’이라고 부른다. 그 후 세월이 지나면서 작대기가 3개, 4개가 되면 각각 ‘상병(上兵)’과 ‘병장(兵長)’으로 부르는데, 내게는 특히 이병과 일병이라는 호칭이 영 마음에 안 들었다.

작대기 하나를 일병, 작대기 두 개를 이병으로 불렀으면 헷갈리지도 않고 좋았을 텐데 왜 각각을 이병, 일병으로 부르게 되었을까 내내 궁금하였다.

이 의문은 군대에서 만난 강(姜) 아무개라는 한자 달인(?)을 통해 풀렸다. 그에 의하면 우리나라가 군대 계급을 중국 군대에서 배웠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일, 이, 삼, 사’를 ‘이, 얼, 산, 시’라고 부르기 때문에, 계급도 당연히 이병, 일병 식으로 부른다고 한다.

우리 군대도 이 중국식 계급 이름에 따라 이병, 일병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도 작대기 3개, 4개를 각각 상병(上兵)과 병장(兵長)이라고 부르게 된 이유는 설명해 주지 않았다.

그럼 왜 우리는 1, 2, 3, 4를 중국처럼 이얼산시로 부르지 않고 일이삼사로 부르게 되었는가? 처음부터 이일삼사로 불렀으면 계급장에 대한 혼동도 없었을 텐데 말이다. 강아무개는 이는 중국에서 한자를 들여 올 때 착오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수입할 때 정품(正品)을 들여와야 혼란이 없는 것은 물건만이 아닌 모양이다.

2. 병기(兵器)수입?

사병(士兵)으로 입대하면 특히 훈련소 시절에는 매일 같이 ‘병기수입’을 해야 한다. 일과 후 저녁 시간에 내무반의 침상에 앉아 총을 분해해서 녹을 닦아내고 기름을 칠하는 작업을 병기수입이라고 부르는데, 총을 병기라고 부르는 것까지는 그렇다 쳐도, 수입은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3년 내내 궁금하였다.

이 궁금증은 훗날 일본어를 배우면서 저절로 풀렸다. 여기서 말하는 수입이란 일본어의 ‘手入れ(데이레)’에서 어미れ를 떼고 앞 부분인 手入만을 남겨 부른 것이었다. 우리 군대에 남아있는 일본어의 잔재(殘滓)이었다. 일본어 ‘데이레’는 우리말로 ‘손질’이다.

그러므로 병기수입은 ‘병기손질’, 나아가서는 ‘총 손질’로 바꾸면 더 좋을 말이었다. 지금도 군대에서 병기수입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여담(餘談)이지만 군대에서는 한자 단어 쓰기를 너무 좋아한다. ‘극장 갈 사람 모여라’ 하면 될 것을 꼭 ‘극장 관람자 집합!’ 이라고 소리친다. 목욕 갈 사람을 모을 때도 ‘목욕 집합!’ 이라고 외친다.

한자를 쓰면 글자수가 줄어 간단해지긴 하지만 때로는 지나쳐서 거북한 경우도 많았다. 행여 한자를 써야 유식해 보여서 그러는 것은 아니었길 바란다.

3. 조의(吊儀)와 조의(弔儀)

다시 강아무개한테 들은 이야기이다. 사람이 죽어 조화를 보낼 때 ‘조의’라고 써 보내는데 이 글자는 고인이 어떻게 죽었냐에 따라 한자를 구분해서 써야 한단다. 수건 건(巾)자가 들어 있는 吊儀는 수건까지 깔아 놓고 나름 복 있는 죽음을 맞이한 사람에게 쓸 수 있는 단어란다.

반면에 글자에 활(弓)이 들어 있는 弔儀는 전쟁에서 활 맞아 죽는 등 비명에 죽은 사람에 대해 사용하는 단어라는 것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고인이 어떤 죽음을 맞이했나’부터 살펴 본 후에 ‘조’자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나는 장례식장에 문상을 가면 가끔 이 이야기를 하면서 내 유식(?)을 자랑하는데, 누군가가 요즘에는 두 한자를 구분하지 않고 써도 된다고 귀뜸해 주었다. 네이버 한자 사전에도 吊는 弔의 속자(俗字)라고 나온다. 그래서인지 국어 사전에 弔儀는 나와도 吊儀는 잘 나오지 않는다. 내가 유식한 건지, 오히려 무식(無識)한 건지 헷갈리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강아무개가 군대에서 가르쳐 준 한자 지식은 몇 가지 더 있지만, 까딱하면 유식 사이로 나의 무식이 삐져 나올까 두려워 이쯤에서 글을 닫는다.
전체댓글 1
  • 솜다리 2019.10.04 10:40 신고하기
    유익한 정보 고맙습니다..망자를 비명에 가신 분으로 만드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네이버 등 검색에서 간혹 틀린 정보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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