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플러스
심창구 교수의 약창춘추
<281> 아버지의 정리정돈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입력 2019-09-04 09:38 수정 최종수정 2019-09-04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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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아버지의 근검절약에 이은 두 번째 좌우명(座右銘)은 정리정돈(整理整頓)이었다. 아버지의 하루 일과는 아침 일찍 바깥마당과 안마당을 쓰시는 일로부터 시작되었다. 아버지의 비질 소리에 식구들이 아침 잠을 깨는 날도 많았다.

오후에 군청에서 퇴근하시면 자전거를 바깥 마당에 세워 놓으신 채로 마당을 다 쓸고 나서야 대문을 넘어 오셨다. 집안에 들어 오셔서도 여기저기 어질러져 있는 것들을 정리하기 전에는 옷을 갈아 입지 않으셨다.

멀리서 아버지가 퇴근해 오시는 기척이 나면 나는 부리나케 주변을 정리하고 공부를 하는 자세를 취하였다. 한 말씀 들을까 봐 걱정이 되어서였다. 아버지의 정리정돈은 용모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식구들이 외출 할 때마다 머리와 복장은 단정한지, 구두는 잘 닦았는지 등을 늘 살펴주셨다. 노년에는 내 자동차의 세차 상태도 자주 지적하셨다.

“깜깜한 밤에도 금방 찾을 수 있도록 늘 정해진 자리에 물건을 놓아라”. 그게 아버지의 정리정돈 기준이었다. 아버지는, 좀 불경스러운 표현이지만, 늘 ‘정리정돈’을 노래 부르듯 하셨다. 그러나 어머니는, 여느 아내들이 다 그러하듯, 아버지의 말씀을 그다지 괘념치 않으셨다. 어머니는 당신의 라이프 스타일, 즉 ‘사람이 좀 어질러 놓고 살면 어떠냐’고 생각하는 분이셨다.

그런데 아버지의 문제는 잘 정리해 놓으신 물건을 나중에 어디에 두었는지 종종 기억해내지 못하시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정리’란 대개 물건을 잘 안 보이는 깊은 곳에 두는 행위이기 때문에 그 장소를 금방 생각해 내기 어려우셨던 것이다.

이런 경우 대개는 어머니의 반격을 받으신다. “내가 둔 대로 그냥 놔 두었으면 금방 찾을 수 있었을 텐데 왜 치워서 못 찾게 만드느냐?”어머니의 질책에 난감해 하시던 아버지 모습이 지금도 떠오른다.

아버지의 잔소리를 듣고 자라서인지 어느새 나도 정리정돈이 사람이 마땅히 취해야 할 올바른 생활태도라고 신봉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백분의 일 수준에 불과하지만 아무튼 나도 어질러져 있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불편해지게 된 것이다. 특히 신기한 것은 나도 정리를 해 놓고는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부전자전 (父傳子傳)! 사실 정리란 아버지나 나처럼 기억력이 좋지 못한 사람이 기억력을 보완하기 위해 자구책으로 생활화한 습관일지도 모르겠다. 정리마저 해 놓지 않으면 끝내 찾지 못하고 기억해내지 못할까 봐 두려워 생긴 버릇이라는 말이다.

내가 현직에 있을 때 C 교수님 방에 가 봤더니 큰 탁자 위에 온갖 책과 서류 등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내가 놀라는 표정을 짓자 그 교수님은 “지금 정리 중이야” 하시는 것이었다. 내가 묻지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본인도 그 혼란스러운 상태가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다는 의미였다. 물론 그 산더미는 그 교수님이 정년 퇴임할 때까지 없어지지도, 그 크기가 줄어들지도 않았다. 쌓아놓고 사는 것은 그 분의 습관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런 분들은 그 산더미 속에서 본인이 필요한 것을 용케도 찾아낸다. 아마 그분들은 구태여 정리 정돈해 놓지 않아도 다 찾을 수 있는 기억력이 뛰어난 분들일 것이다.

백 퍼센트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정리정돈은 근검절약과 세트를 이루는 생활습관이 아닐까 한다. 정리정돈을 잘 해 놓으면 이미 있는 물건을 또 사는 낭비를 막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재고관리를 잘 하면 물자의 낭비를 막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제 시대가 바뀌어서 근검절약이 아니라 낭비가 미덕이라는 소리가 들린다. 공휴일을 많이 만들어야 사람들이 돈을 많이 쓰고, 그래야 경제가 잘 돌아간다는 말도 들린다. 맞는 말이니까 하는 것이겠지만 평생을 근검절약, 정리정돈을 모토로 삼아 사신 아버지를 회상할 때, 아무래도 낭비와 어질러 놓음에 대해 내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심플 라이프! 실천은 못하고 있지만, 나이가 들수록 추구하게 되는 나의 좌우명이다.

아버지 어머니가 새삼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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