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1. 한약분쟁과 여의도 법정- 1993년 3월 31일 오후 7시 반에 한국방송공사(KBS-TV)에서 신기남 변호사가 재판장 역할을 하는 ‘여의도 법정’이라는 공개방송이 있었다. 주제는 약사가 한약조제를 하는 것이 타당한가였다.
진행 방식은 한의사 측에서 두 명, 약사 측에서 두 명이 나와 1시간 정도 토론을 하고 난 후 시청자들의 전화 투표를 집계하여 어느 쪽의 주장이 여론의 지지를 더 받았는가를 공개하는 것이었다. 나는 약사 측 변론인으로, 대치동에서 약국을 개업하고 계신 김양일 약사님은 약사 측 참고인으로 출연하였다.
나는 약사의 한약 취급이 당연하다는 논리에 비교적 자신이 있었으므로 차분한 톤으로 내 주장을 전개해 나갔다. 때때로 한의사 측에서 거칠게 공격해 왔지만 나는 별로 흔들리지 않았다. 내 옆에 앉은 김 약사님은 한의사 측의 공격을 한번 세게 맞받아치고 싶은 기색이었다.
나는 김 약사님의 옆구리를 툭툭 치면서 ‘그냥 점잖게 가시죠’라며 흥분을 제지하였다. 그런데 1시간인가 걸린 양측의 토론이 끝나자마자 공개된 전화 여론 조사의 결과는 내 예상과는 달리 응답자의 79%가 약사의 한약조제를 반대하였다. 어이가 없었다.
뒤에 나와 약사회는 우리가 왜 이 논쟁에서 졌는가를 곱씹어 보았다. 결론 중 하나는 대중들을 상대로 한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토론자의 목소리가 클 필요도 있다는 것이었다.
마치 시장에서의 싸움에서는 싸움꾼의 목소리가 커야 구경꾼의 호응을 얻는 데 유리한 것처럼, 시종 차분했던 약사 측 주장보다는 큰 목소리로 흥분해서 우겼던 한의사 측의 주장이 시청자들에게 더 그럴 듯 해 보였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날의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1) 변론인(나)의 보다 강력한 논리 전개, (2) 참고인(김 약사님)의 큰소리 후원, (3) 약사회원들의 보다 적극적인 전화 걸기 등이 필요했던 것 같다.
2. 의약정 토론회- 2000년(?) 11월 1일 저녁 과천에 있는 보건복지부 회의실에서 최선정 장관 주재로 의약분업 실시에 대한 의약정(醫藥政, 의사, 약사, 정부)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의사 측에서 10명, 약사 측에서 10명이 토론자로 참여하였는데 나는 약학계를 대표하는 약사팀의 일원으로 이 자리에 참석하였다. 약사 측 참석자는 의약분업의 필요성을 주장하였고, 의사 측은 분업을 반대하는 논리를 전개하는 상황이었다. 양측은 각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여 자기 측의 주장을 개진하였다.
결국 이날 토론회를 계기로 2000년 11월 11일 의약분업 실시에 관한 의약정 합의에 도달하게 되었지만, 내가 이 토론회를 통하여 깨달은 것은, 위에서 언급한 ‘여의도 법정’을 통하여 깨달은 것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그 토론회에서 어떤 의사 측 인사가 약사 측에 신랄한 공격을 해 오고 있을 때이었다. 마침 그 사람은 아마 약국이라고 말해야 할 대목에서 약방이라는 식의 실언을 하였다.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은 지엽적인 용어 사용에 실수를 하였다.
그러자 내 옆에 앉아 있던 약사 측 토론자 S 씨가 돌연 큰 소리로 “약방이 아니라 약국입니다. 사과하세요” 라는 식으로 상대방에게 태클을 걸었다. 나는 순간 ‘왜 점잖지 못하게 사소한 문제를 저렇게 까지 걸고 넘어지는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 측 인사는 자존심 때문인지 쉽사리 사과하려 들지 않았다. 그러나 S씨는 상대방의 발언을 물고 늘어지며 끈질기게 사과를 요구하였다. 의사 측 인사가 끝내 사과를 하였는지 여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S씨의 태클 때문에 그 사람이 자신의 논리를 잃고 비틀거렸다는 것이다. 이 때 나는 논쟁에서는 무식한 태클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상의 두 경험을 통해서 나는 논쟁에 나갈 때에는 (1) 차문하게 논리적인 주장을 전개하는 사람과 (2) 무식해 보일 정도로 큰 소리로 떠들어 대는 비논리적인 사람을 한 팀으로 구성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결국 오직 논리로만 논쟁에 임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한 것 같다. 논리가 이기는 세상이 더 합리적이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