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0일, 일락회(一樂會)라는 모임을 통해 JW중외제약의 당진 공장을 견학하였다. 일락회란 오랜 전통을 갖고 있는 전국 약학대학 명예교수들의 모임인데, 중앙대 손동헌 명예교수님의 뒤를 이어 지금은 서울대의 이은방 명예교수님이 회장을 맡고 있다. 회원은 140명 정도이며, 주요 사업으로 봄 가을로 연 2회 정도 제약관련 산업 현장을 견학하고 1-2회 뉴스레터도 발간하고 있다.
이번 춘계 견학에는 일락회 회원 23분(남자 10명, 여자 13명)이 참가하였다. 일정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10일 아침 9시 30분에 서울 강남의 지하철 3호선 양재역 2번 출구에 모여 회사가 마련해 준 버스를 타고 10시 40분경 공장에 도착, 11시까지 회사를 소개하는 홍보영상을 관람한 후 12시까지 수액제 생산 공장을 견학하였다.
참가자들은 모두 엄청난 규모와 최신식 설비에 감탄하였다. 공장 견학을 마친 후 다시 버스를 타고 당진 포구에 있는 식당에 가서 맛있는 회 정식을 먹으며 담소 하였다. 이어 오후 1시에 버스를 타고 심훈 기념관과 솔뫼 성지를 둘러 보았다. 이 때 회사가 주선해 준 문화관광해설사의 상세한 해설이 특히 유익하였다.
구경을 마치고 3시 40분쯤 다시 버스를 타고 양재역으로 돌아오니 오후 5시 30분경이 되었다. 다른 때의 견학도 대체로 이와 비슷한 구성으로 진행된다. 매 견학 때마다 회사 측의 배려(교통편, 식사 등 제공)로 참가자들은 매우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견학 일이 마치 소풍날처럼 기다려진다고 한다.
견학을 갈 때마다 확인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제약 기술이 어느덧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해 있다는 사실이다. 솔직히 이 정도까지 발전해 있을 줄은 몰랐다고 놀라는 분들이 적지 않다.
문득 약학대학의 현직 교수들은 이런 발전상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주 현장에 가서 보지 않으면 그 흐름을 놓칠 정도로 빠르기 발전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 제약 기술이기 때문이다.
사실 명예교수들이 현장의 발전 흐름을 놓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그들은 이미 현직에서 한발 물러선 퇴직 교수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직 교수들을 생각하면 문제는 달라진다. 교수가 흐름을 모르면 학생 교육에 대한 방향과 수준에 심각한 오류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잘못 가르칠 우려가 크다는 말이다.
약학의 현장은 제약 공장뿐이 아니다. 제약 회사 내에도 연구소, 개발부, 국내외영업 부서 등이 다 현장이다. 또 병원약제부, 개업약국, 의약품 안전관리(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사회약학 분야(의약품심사평가원 등) 등도 다 현장이다.
학생들에게 앞으로 약학이 나아갈 방향을 올바로 가르치기 위해서는 약대 교수들이 이런 현장에 대한 최소한의 현장 경험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런데 노파심 같지만 특히 최근의 약학대학 교수들의 현장 체험이 많이 부족해 보인다.
약학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타학과 출신 약대 교수들의 경우에는 상황이 더 심각해 보인다. 요즈음의 교수들은 당장 코 앞에 닥친 연구가 바빠서 현장 체험의 필요성을 느낄 경황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현장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면 교육은 물론이고 교수의 연구 자체도 점점 현실감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아무리 바빠도 좋은 강의와 연구를 위해서도 현장 체험은 매우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제안하고자 한다. 각 약학대학마다 모든 교수들의 현장 체험을 의무화, 정례화 해 주었으면 좋겠다. 즉 모든 교수들이 매년 약학의 각 현장에서 적어도 일주일 정도씩 연수를 받게 제도를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마침 약학계에는 한국약학대학교육협의회(약교협)가 있고, 그 산하에 약학교육평가원(약평원)도 있다. 두 단체가 힘을 모으면 모든 현직 약대 교수들의 현장 체험을 정례화, 의무화 할 수 있을 것이다. 뜻만 있으면 길은 얼마든지 열릴 것이다.
일락회 견학을 주선하며 느낀 노파심(老婆心)의 일단을 피력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