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플러스
심창구 교수의 약창춘추
<177> 약학사 연구의 재미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입력 2015-07-08 09:38 수정 최종수정 2015-07-29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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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2일, 서울대 약대에서는 5월 20일 시작된 메르스 전염의 공포 분위기 속에서도 우리나라의 근대 약학교육기관 설립 100주년 행사가 성황리에 열렸다. 행사는 기념 심포지엄 (1부), ‘가산(岢山) 약학역사관’ 개관식 (2부), 기념비 제막 (3부) 및 ‘감사의 밤’ (4부) 순서로 진행되었다.

나는 대한약학회 약학사 분과학회장의 자격으로 서울대약대 이봉진 학장과 함께 심포지엄을 공동 주최하였다. 또 개인 자격으로 약학역사관의 개관 준비, 기념비 비문 작성, 그리고 감사의 밤에 상영된 100주년 기념 동영상의 제작에 기여할 수 있었다. 모두 분에 넘치는 영광이었다.

우리나라 근대 약학 교육 100년의 역사를 정리한 ‘약학역사관’을 둘러보면, 이제야 비로소 일제하의 척박한 황무지에 약학의 귀한 씨를 뿌린 선배님들이 노고를 기리게 되었다는 송구스러움이 앞선다.

감사하게도 그 씨는 100년에 걸친 시련을 극복하고 싹트고 자라나서 이제 서울대약대는 교수 1인당 연구논문 수가 세계 약학대학 중 1등인 대학이 되었고, 우리나라는 신약개발 건수가 20개가 훨씬 넘는 미래의 신약개발 강국으로 기대되는 나라가 되었다.

밥술이나 먹는 후손이 있어야 조상의 묘역을 정비한다고 했던가? 요즈음 나는 황폐한 조상의 묘역을 새롭게 조성하는 개심(改心)한 불효자의 보람을 느낀다. 또 ‘상놈’ 또는 ‘불효자’라는 손가락질을 조금은 면하게 된 약학 가문(家門)의 자부심도 가져본다.

100주년 기념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은 환희의 연속이었다. 서울대 김진웅 교수와 약학역사관의 장윤이, 조누리 선생의 탁월한 능력에 힘입어 속속 새로운 자료가 발굴되었다. “오늘은 이런 자료를 찾았습니다” 라는 연락을 받을 때마다 가슴이 뛰었다.

1. 예컨대, 조선약학교가 설립된 다음해인 1919년에 적어도 14명의 조선약학교 학생이 3.1만세 운동에 참여하다 체포되어 신문을 받은 조서가 발견되었을 때, 그리고 1942년 축구부를 위장한 경성약전생들의 비밀결사조직이 발각된 기록이 발견되었을 때에는, 선배님들의 민족정기에 대한 자부심이 솟구쳤다.

2. 1960년 4.19 혁명 때의 사진 설명을 바로잡은 것도 큰 기쁨이었다. 당시 동아일보에 ‘백색 가운을 입은 의사들도 데모에 나섰다’는 취지의 사진과 기사가 크게 실렸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금도 그렇게 알고 있다.

그러나 당시 데모에 참여한 것은 약대생이지 의대생이나 의사, 또는 치과 의사가 아니었다는 선배님들의 증언을 수차 들은 바 있었다. 당시 조교였던 이은방 서울대 명예교수도 분명히 증언하셨다. 또 당시 데모에 나섰던 약대생들이 인명 피해를 당하지 않았던 것은 당시 학생과장이셨던 고 이왕규 교수의 명 설득 덕분이었다고 한다 [김병각 명예교수의 전언(傳言)].

그래서 나는 이를 바로잡기로 마음 먹었다. 우선 동아일보로부터 사진을 구한 다음, 사진에 나온 사람들 하나 하나에 홍청일, 노환성 등 당시 약대생들의 실명을 붙여 나갔다. 이로써 드디어 중요한 역사 하나를 바로 잡을 수 있었다. 선배님들의 명예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3. 얼마 전 서정규 라는 대 선배님 (1928년생, 전 성보제약 사장)을 만나 광복 후 혼란기의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 분은 1945년에 경성약전 7회로 입학하셔서 3년 후인 1948년 6월에 전문부 1회로 졸업하시고, 금강제약에 취직하셨다가 다시 1년 더 학교에 다니시고 1950년 3월에 학부 1회로 졸업한 분이시다.

그 분 말씀에 의하면 1945년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광복이 되자, 경성약전의 일본인 교장 다마무시는 학교를 미군정에 넘기려고 하였단다. 그때 당시 학생회장이었던 서 선배님 등이 목검(木劍)을 들고 강압적인 분위기를 연출한 가운데 이남순 박사(훗날 성균관대 약대 초대 학장) 등이 교장실에 쳐들어 가 압력을 넣어, 그 해 9월 학교를 인수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도봉섭 교수와 이동선 이사장(이남순의 부친) 등도 함께 노력하였다고 한다.

새로운 자료와 생동감 넘치는 뒷이야기는 언제나 나를 흥분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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