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밀레니엄의 환호 속에 21세기를 되뇌이고 2001년을 보내면서 감회가 깊지 않을 수 없다. 2001년 우리 약계는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의약분업이라는 격변을 경험했다.
1976년 직장의료보험제도 도입이 공포되고 1977년부터 시행되면서 1989년에는 전 국민 의료보험제도가 도입'실시됐고 이 때 약국 의보라는 제도가 시행됐다.
이 약국 의보제도는 부분 임의분업의 성격을 가졌지만 약사회의 정책 부재로 인한 소극적 참여로 그 뿌리를 내리지 못했고 따라서 국민적 신뢰를 구축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마침내 1994년 의약분업제도가 공포됐으나 2001년 7월에 시행되면서 국민들은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의료대란을 겪은 것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최근에는 의사협회가 `의약분업 전면 재검토'를 내세우며 정치참여를 본격 선언하고 이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의약분업 정착을 위한 진통과 의약분업의 소용돌이는 새해에도 계속될 것 같다.
국민의 건강증진과 의료혜택의 극대화는 국가복지정책의 으뜸이지만 현재의 상황을 보면 건강보험 재정적자는 2001년 1조8,627억원에 달할 것으로 우려되며 2002년에는 2조∼2조6,000억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당국은 예측하고 있다.
이러한 건강보험재정 적자를 해소하는 방편으로 당국이 채택하고 있는 방안에 따르면 2002년에 보험료 경감을 없애고 보험료 인상률을 9%로 함으로써 직장인들의 보험료 실제 인상률은 최소 20%를 웃돌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 지역건강보험도 보험료가 9% 인상되면 실제로는 평균 13% 정도 오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정부는 보험재정적자 해소를 위해 당장 손쉬운 보험료 인상방법을 우선시하고 있다.
의료전달체계의 건전화는 보험재정문제뿐 아니라 노인인구 구성, 국민소득수준, 문화적 배경 등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리나라는 2000년에 이미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7%를 넘었으며 통계청 예측으로는 2010년 10%, 2019년에는 14%를 넘어 본격적인 노령화 사회로 진입할 전망이다.
노령사회가 되면 노인부양 부담도 갈수록 늘어나 2000년에는 생산인구 10여명이 노인 1명을 부양했지만 2030년에는 3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상황은 지금처럼 안일한 건강보험료 인상방편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며 앞으로 건강보험제도의 변화, 의료전달체계의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1989년 전국민의료보험제도가 도입되면서 궁극적으로 의약분업으로 갈 것은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다.
1989년부터 1994년까지 5년간 그리고 2001년까지 근 7년간에 걸쳐 의약분업제도가 도입된 셈인데 그동안 약사는 과연 어떤 신념과 비전을 가지고 대처해 왔는지 되새겨 보아야 하며 다시 밀려올 파도를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지 깊이 연구해야 한다.
의료전달체계에 있어 약사는 정치인들의 정략적 문제 접근과 강세의 세 몰이 상황 속에서 자기위상을 유지'발전시키기 위해서 임기응변적 전략이 아니라 확고한 정론의 정책이 우선돼야 한다.
지난 11월 남편이 낸 산불 피해에 대한 변상금 130만원을 남편 사후 20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찢어지게 가난한 속에서도 갚아낸 강원도 홍천 용간난 할머니의 이야기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중 하나는 이런 것이 자존심이고 긍지가 아닌가하는 것이다. 20년은 그만두고 10년의 인고 끝에 용 할머니가 느낀 후련함을 느낄 수 있는 정책수립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론에 `人無遠廬 必有近憂'라고 했다. 이는 사람은 먼 앞날을 바라보고 살아야 하며 목표가 설정돼 있지 않다면 그날그날 목전의 이익만을 추구하게 되므로 머지않아 우환에 빠질 것이라는 뜻이다.
지난 11월 3개 대학 한약학과 학생들이 학교측에 자퇴서와 폐과 요구서를 제출했다. 이는 한의약 분업이 이뤄지지 않은데다 한약재 처방제한에 묶여 한약국을 경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는 1994년 한약학과 설치를 공포하고 1996년부터 시행했다.
그 당시 한약사제도의 도입과 한약학과 설치가 또 다른 큰 문제의 불씨가 될 것은 예측된 일이었는데도 정책당국은 국민보건증진에 있어 한약사의 필요성에 대한 검증된 합의적 정책수립 없이 졸속행정을 펼친 것이다.
의약분업문제에서 우리가 자주 거론하는 일본의 경우를 보면 국민소득 미화 1만달러(1984년)에서 2만달러(1998년)가 되고 노인인구 10%(1985년)가 넘는 시기에 약사의 직능에 큰 변화를 가져왔고 후생성은 약제사를 법적으로 의료인으로 규정(1992년)했다.
동시에 약사직능수행능력평가에 기초한 약제사국가시험 출제기준과 국가시험제도 전면개편을 공포(1994)하고 1996년부터 시행했다.
반면에 2001년 의약분업이라는 큰 변동이 일어났는데 이 새로운 제도의 도입에 대해 약사직능교육인 우리 약학교육의 반응은 어떠한가.
의사국가시험의 경우 시험기관은 1994년 국립보건원에서 의사국가시험원으로 분리 독립하고 시험과목은 15개 과목에서 7개 과목으로 변경되면서(1997) 꾸준한 내용의 발전을 가져왔으며, 1999년에는 과목통합을 당국에 신청했다. 그러나 약사국가시험은 1968년부터 지금까지 12개 과목으로 요지부동이다.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1만달러에서 2만달러로 되는 시기는 언제쯤일까? 노인인구가 10%쯤 되는 시기는 언제쯤일까? 이 시기에 의료전달체계는 어떻게 바꿔야 하며 여기서 약사의 직능위상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깊이 연구해야 한다.
정치체제가 변하더라도 국민의 의식과 사고방식이 변화되지 않으면 사회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약사가 진정으로 국민건강 증진의 파수꾼임을 국민들로부터 인정받고 국가의 건강보험재정을 건실하게 하는 데 약사의 기여가 있어야 한다. 정치인들로부터 인정받아 신뢰를 구축하는 정책을 수립하고 그 길로 매진할 때 약세의 불이익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길이야말로 먼 길 같지만 가장 확실하고 빠른 길이다. 그리고 우리의 갈 길은 우리가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