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1----
강남구 방배동 주택가에서 10여년이 넘게 한자리에서 약국을 운영해 온 김모 약사.
그는 지난해 7월 의약분업이 시행될 당시 의원급 의료기관이 밀집해 있는 약국으로 이전하라는 주위의 권유를 받았다.
특히 그에게 약국이전을 권유한 사람 중의 한 명은 그와 절친한 내과의사였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내과의원 건물에 자리를 임대해 줄 테니 약국을 이전해서 같이 운영하자는 제안을 했다.
김모 약사는 약국을 10여년 넘게 운영하면서 쌓아온 학술지식과 수많은 단골환자들을 버려 두고 문전약국으로 옮길 수는 없어 약국이전을 포기했다.
그러나 분업시행 3개월이 지나면서 김모 약사는 자신의 선택이 그른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의료계의 분업 비협조로 인해 인근 의료기관의 처방전 리스트를 입수하지 못해 처방약을 구비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었으며, 처방약을 구비했다 하더라도 의료기관과 약국간의 담합으로 인해 처방전 수용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루에 수용하는 처방전은 고작 10건 내외였으며, 처방전 수용 건수가 적다보니 환자가 오지 않아 일반약 매출도 의약분업 시행 이전의 절반에도 못 미친 것.
결국 그는 지난해 12월 의료기관이 밀집해 있는 지역으로 약국을 이전했다.
약국을 이전한 후 그가 하루에 평균 수용하는 처방전은 150건 내외. 관리약사 2명과 전산요원 1명에 대한 경상비용을 제외하더라도 그가 한 달에 올리는 순수익은 의약분업 이전보다 2배가 늘었다.
------사례2------
마포구의 주택가에 자리잡은 한 약국
그는 의약분업 이전부터 각종 임상강좌를 수강하며 학술능력을 키워왔다.
특히 그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한방이었다. 한방에 관한 임상지식을 축적하기 위해 그는 중국에서 한의학 관련 학문을 단기과정으로 이수했는가 하면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각종 학술강좌를 수강했다.
의약분업이 시행될 무렵 그에게도 많은 유혹이 있었다.
죽마고우인 의사가 자신과 같은 건물에서 약국을 운영하며 의약분업을 준비하자고 했는가 하면 자신과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온 제약회사의 영업소장이 목 좋은 곳에 약국 자리가 나왔다며 약국을 이전하자고 했던 것.
그러나 자신이 가지고 있던 약국 운영에 대한 소신으로 인해 이 같은 유혹을 뿌리치고 의약분업 1년을 맞고 있다. 그의 소신은 `약국은 주민 곁에 있어야 하며 약사는 금전적인 유혹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것.
또한 의약분업이 시행되면서 많은 고초를 겪었다. 처방약 리스트 확보 미비와 제약사의 현금결제 우선 영업방침으로 처방약을 구비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으며 그로 인해 환자가 오지 않아 약국문을 닫아야 하는 위기에 처하게 된 것.
이런 위기상황에서 그는 한방을 통해 활로를 모색했다. 한방에 관한 한 전문가에 버금가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의 약국에서 초제나 과립제를 복용한 환자들은 80% 이상 증상이 호전됐으며, 이 같은 효과는 주위를 통해 퍼져 여기 저기서 환자가 찾아와 약국경영이 분업 이전의 상태를 회복했다.
-----사례3-----
성동구 금호동에 자리잡은 한 동네약국
이 약국의 약사는 30여년간 한 곳에서만 약국을 운영해 오며 동네주민들의 신망을 받아 왔다.
의약분업이 시행된 지난해 초 주위 약국들이 분업 수용준비를 서두들 때 그 또한 후배 약사들과 같이 컴퓨터 교육과 임상관련 지식을 쌓느라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또 상당한 비용을 투자해 약국 인테리어를 환자 중심으로 재편했는가 하면 컴퓨터를 마련해 전산화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와 함께 자존심을 버리고 주위 의료기관을 찾아다니며 처방약 리스트를 입수해 인근 의료기관에서 처방약의 90% 가량을 구비했다.
그러나 의약분업이 시행된 지 1년 가량이 지난 현재 이 약사는 약국을 폐문할 계획을 갖고 있다.
엄청난 비용을 투자해 의약분업 수용 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특정 의료기관과 약국간의 처방담합으로 약국에 거의 환자가 오지 않기 때문이다.
또 약국에 환자가 오더라도 기형적인 분업 제도로 `약의 전문가'라는 자긍심을 가질 수 없는 것도 이 약사가 폐문을 계획하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다.
의사의 처방전에 문제가 있어 처방의사에게 오류를 지적할 경우 “당신이 무엇을 아느냐 처방전에 따라 약을 조제하는 것이 약사의 임무 아니냐” 등의 면박을 당하기 일쑤였고 환자 또한 약사를 테크니션 수준으로 인식하고 있어 더 이상 약국문을 열 이유를 찾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이 약사는 약사로서의 인생을 마감하고 다른 생을 찾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3가지 사례는 의약분업 시행후 동네약국들의 모습을 대변해주고 있는 대표적인 모습이다.
첫번째 사례는 처방전 수용 곤란으로 어쩔 수 없이 문전약국으로 갈 수밖에 없는 약사의 모습을 보여 준 것이며, 두번째 사례는 처방전 수용 없이도 약국이 나름대로의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또 세번째는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의약분업 수용에 전력을 기울였는데 제도미비와 자긍심 실추로 어쩔 수 없이 30년간 운영해 온 약국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한 노약사의 현실을 기록한 것이다.
지난해 7월 한달간의 시범기간을 거쳐 8월부터 본격 시행된 의약분업은 혼재해 있던 의·약사의 직능을 정립하고 의약품의 오남용을 막자는 취지로 도입된 제도이다.
그러나 의약분업 시행 1년이 되는 현재 의약품의 오남용 예방 효과는 어느 정도 나타나고 있는 반면 의사와 약사의 직능 정립은 요원한 과제로 남아 있다.
처방약의 선택권을 의사가 독점하다 보니 `약의 전문가'라는 약사의 위상은 오갈 데 없이 된 것이다.
약사는 오로지 의사의 처방전에 의해 약을 조제해 주어야 하고 의사의 처방전에 오류가 있었을 때 문제를 지적한 약국의 경우 하루아침에 처방전이 절반 이상으로 격감하는 사례가 허다하게 나타나곤 한다는 것이 동네약국을 운영하는 약사들의 지적이다. 또 지난해 하반기 집중 실시된 전공의들과 복지부·지자체 등의 약국에 대한 약사감시는 정상적인 약국운영을 어렵게 했다.
환자가 일반약을 구입할 때 증상에 대해 물어 보는 것도 당시에는 문진행위로 오인돼 적발될 경우에는 `무면허 진료행위'로 규정되는 통에 오로지 환자의 요구에 의해서만 약을 주어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던 것.
그러나 동네약국 약사들을 가장 허탈하게 만든 것은 특정 의료기관과 약국간의 담합이다.
약사의 학술적인 능력은 간 데 없이 오로지 약국의 입지 조건에 따라 약국경영의 성패가 좌우되다 보니 담합을 하는 약국이 우후죽순으로 난립하게 된 것.
처방전을 한 장이라도 더 수용하기 위해 인근 약국에 리베이트를 갖다 바치는 등 약사로서의 자존심을 버리는 일이 주위에서 비일비재하게 나타나게 됐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의료계의 파업투쟁에 밀려 정부에서는 처방담합을 근절할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으며, 최근에는 정치권의 정쟁에 휘말려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특히 최근에는 국민불편을 이유로 주사제를 의약분업 대상에서 제외시킨 복지부의 조치는 동네약국을 운영하는 약사들을 더욱 비참하게 하고 있다.
국민불편을 명분으로 의약품 오남용의 주범인 주사제가 분업 대상에서 제외됐는데 이보다 더 심한 민원이 가중되고 있는 고령자와 유·소아에 대한 분업 대상 제외가 나타나지 말라는 경우가 없지 않다는 것이 개국가의 예상이다. 의약분업 시행에 따라 가장 큰 직능실추와 경영상의 타격을 입은 동네약국. 이들 중 대부분은 의약분업 제도가 제자리를 찾게 될 것을 기대하며 약국운영에 임하고 있으나 일부는 현실과 타협해 약국을 의료기관 인근으로 이전할 계획을 가지면서 분업 1주년을 맞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