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 어느 날 필자의 약국에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이 세 명이 녹음기를 들고 찾아와서 “약사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학교의 학습과제로 여러 가지 직업에 대해 연구 조사 중이라며, 그동안 정리한 자료까지 보여 주면서 인터뷰에 응해주기를 부탁했다. 아이들과 인터뷰를 마친 후 그날 저녁 늦도록 많은 생각을 했다.
`약사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 `의약분업이 시행된 후에 약사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필자는 많은 것을 얻었고 새로운 각오도 다지게 됐다.
의약분업 제도에서 변화된 약사의 역할을 가장 특징적으로 표현한 것이 개정 약사법의 복약지도에 관한 조항이라 할 수 있다. 약사법 제2조 16항에
“복약지도”라 함은 `의약품의 명칭, 용법'용량'효능'효과, 저장방법, 부작용, 상호작용 등의 정보를 제공하는 것'과 `일반의약품의 판매에 있어 진단적 판단에 의하지 아니하고 구매자가 필요로 하는 의약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으로 정의되어 있다. 필자는 이 조항에 따라 성실한 복약지도를 하는 것이 바로 약사가 하는 일이며, 또한 약사의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너무도 평범한 결론에 이르게 됐다.
이 조항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각의 해석이 가능하다. 필자는 약사의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규정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이 조항에 따라 철저한 복약지도를 실천하는 것만이 의약분업이라는 새로운 제도에서 약사의 역할을 대외적으로 확인시키고, 깊이 인식시킬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한다. 즉 대외적으로는 약사의 전문성을 인식시키는 길이며, 우리 입장에서 보면 새로운 약사의 모습을 실천함으로써 약사의 사회적 위상을 제고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생각이다.
여기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복약지도의 의미에 대한 해석이나 중요성에 관한 인식이 아니라 실천이다. 오랜 시간 동안 익숙해 있던 것을 버리고, 새로운 행동을 습관화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각자가 몸으로 익숙해져서 습관화하도록 작은 실천을 시작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복약지도는 약국의 경쟁력이다
약국경영의 경쟁력으로서 복약지도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처방조제에서 차별화를 통한 경쟁력이고, 다른 하나는 복약지도가 처방전 이외의 다양한 구성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점이다.
먼저 처방조제에 있어서 복약지도의 의의를 살펴보자. 처방전의 처리는 의약품만 구비되어 있다면 어디서나 가능하다. 처방조제 과정에서 상세하고 성실하게 복약지도를 해 주는 약국과 그보다는 덜 상세한 복약지도를 해주는 약국은 분명한 차별성을 가지게 되며, 단골고객의 확보에서 뚜렷한 차이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고객의 입장에서 여러 가지 궁금증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약국과 그렇지 못한 약국에 대한 인식이 어떠하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특히 만성질환자에 대한 성실한 복약지도는 단골고객 확보와 관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따라서 복약지도는 대단히 중요한 경쟁력 요소로 자리하게 됐다.
현재 처방전의 이동 현상을 보면 제도적 한계로 인해 오직 공간요소(거리와 위치)가 지배하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지난 1년 6개월 동안의 혼란스러운 상황이 가져다준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런 현실에서 공간요소의 지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단골고객이 주로 찾는 의료기관을 파악하고, 약품 구비에 관한 합리적인 계획을 수립하며, 처방전 처리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식시키는 일련의 작업이 필요하다. 현재 단계에서 이러한 작업이 다시 필요한 이유는 어느 정도 고착화되어 가는 제도와 고객들의 의료기관 이용행태에 대응한 우리의 주관적인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즉 이러한 현실에서 기존의 고객이 회귀하고, 새로운 고객을 창출(처방전의 유치 및 처리)하는 방안 중 가장 기본이 되며 또한 중요한 것이 복약지도이다. 성실한 복약지도는 처방전 이동에 있어서 공간지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할 수 있다. 단골고객을 중심으로 고객에 관한 건강정보의 확보 및 관리에 조금만 노력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처방전에 따른 조제가 가능하게 되면, 그 다음 단계에서 차별화되는 것이 바로 복약지도이다.
다음으로 처방전 이외의 다양한 구성요소를 활용하는 데 있어서 복약지도의 의의를 살펴보자. 복약지도 과정에서 고객의 궁금증과 약물, 식이요법, 생활관리에 대한 상담을 하는 동안 고객의 요구와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이를 통해 접근 가능한 다양한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환자뿐만 아니라 그 가족이나 보호자에 관한 상담도 가능하게 되며 이것은 새로운 고객창출의 계기가 될 수 있다.
특히 일반의약품의 판매에 있어서 성실한 복약지도는 처방전을 유치하는 계기로도 작용한다. 처방전의 집중과 편중 현상이 지배적인 현재 조건에서 필자처럼 현재의 위치를 고수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일반의약품과 기타 구성요소에 대한 복약지도는 더욱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성실한 복약지도는
약국의 경쟁력
약사의 고유권리
능동적 실천해야
복약지도를 위한 준비과제
복약지도에 필요한 자료의 정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처방조제를 마친 후 환자와 마주 앉은 상태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정리하는 것'이다. 이런 목적성에 충실한 정리 자료를 각자 나름대로 준비해야 한다.
우선 각 약국에서 자주 처리하는 약물을 중심으로 개개 약물에 대한 자료를 정리하고, 다빈도 처방전이 있다면 처방전 자체에 대한 복약지도 자료를 준비하는 것도 필요하다. 특히 만성질환자의 경우는 소수의 약물이 반복 처방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처방전 자체에 대한 복약지도 자료를 준비하여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필자의 경우 만성질환자에 대해서는 한번 처방된(투약일수가 30일 또는 60일 등) 약물을 복용하는 동안 세 차례의 복약지도를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참고로 필자가 생각하는 복약지도에 필요한 준비물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고객 차트이다. 환자의 약력카드에 해당하며 환자의 약에 대한 부작용 여부, 과민증 여부, 기타 복용하고 있는 약물 및 건강관련 정보를 기록해 보관한다.
둘째 단골고객 아이디 카드(ID card)이다. 과민증이 있는 환자라면 해당약물을 기록해주고, 병'의원이나 약국에서 약품 구입시 미리 제시하게 한다. 만성질환자의 경우는 계속 복용하는 약물을 기록해 주고 미리 제시하게 한다.
즉 명함의 뒷면에 `단골고객 ID card'라는 칸을 미리 인쇄해 고객의 성명'나이'성별을 기록하고, 복용하는 약물의 성분'용법'용량을 기록해 주어 다른 병'의원이나 약국에서 미리 제시하도록 하고 있다. 이것이 환자뿐만 아니라 복약지도를 하는 우리에게도 대단히 유익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이외에도 시청각 자료를 비롯한 다양한 자료가 응용될 수 있을 것이다. 각자가 약국의 여건이나 경영방식에 맞는 자료를 준비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자세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