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실에 맞는 신약개발 전략이란 어떤 것일까? 신약개발이라는 지난(至難)한 일에 대한 의견도 의견이려니와 한국 현실에 맞는 전략, 한국 현실에 맞다는 것이 신약개발에 플러스 요소인가 마이너스 요소인가 등을 판단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단순히 한국 현실을 제한적 요소로 볼 것 같으면 신약개발의 마이너스 요소임에 틀림없으나 한국 현실에 맞는 신약개발을 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플러스적인 요소로 전환(사고의 전환)해야 한다. 그렇다면 신약개발이라는 일에 대한 정리를 1차로 끝낸 다음에 한국적인 현실을 검토해 한번 접목시켜 볼 수밖에 없다. 거기에다 단순한 신약개발이 아니라 우리 기업의 입장에서 볼 때 실질적인 수익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전제이다.
기업의 핵심경쟁력 찾아 네트워킹 적극 추진
신약개발 전과정 독자적 수행은 불가능
다국적 제약사도 50~60% 라이센싱 의존
국내시장에서만 수익성 확보는 어려워
신약허가담당기관·고객 세계적 수준 요구
Global Level로 신약개발 목표수준 높여야
신약개발
신약이라 함은 법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신규의 화합물(Chemical entity)을 개발하고 이의 안전성·유효성을 국가적으로 인정받은 약물을 말한다. 그러나 필자는 신약의 의미를 New Chemical Entity에 준하는 협의의 신약이 아닌 New formulation 즉, 기존 물질의 신규 적응증 획득 등을 포함하는 광의의 신약개발로 확대하고자 한다. 적정수준 이상의 시장 니즈(시장성)가 존재하는 분야에서, 자체의 스크리닝(Screening) 능력을 통해 NCE(New Chemical Entity)나 NF(New Formulation)를 확보할 수 있다면, 전임상 시험이나 임상시험의 대부분을 기업 외부의 능력을 활용(아웃소싱)할 수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의 핵심경쟁력은 자금력·기획력·추진력이다.
따라서 신약개발의 핵심능력은 NCE의 디자인 및 합성 능력, NF의 디자인 능력과 이의 신약 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는 자체적 스크리닝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최근 Genomics의 발달에 힘입어 New Target Identification 능력이 가장 중요한 핵심경쟁력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한국의 현실
신약개발이라는 명제 하에 한국의 현실을 살펴보면 좀 답답한 게 사실이다. 신약의 개발에 필요한 지식(Knowledge)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목표 질환의 병리학을 필두로 한 기초의학에서부터 출발해 관련있는 약리학, 화학, 수의학, 분자생물학, 독성학, 통계학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국가 전체로 본다면 어느 정도 지식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신약개발 문제는 기업간의 전략적 제휴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개별기업의 문제이다. 우리나라 제약기업 그리고 그들이 동원(networking&out sourcing)할 수 있는 수준은 상당히 낮다고 볼 수밖에 없다.
`특허화'라는 전략에서 본다면 이것 역시 상당히 곤혹스럽다. 나름대로 타깃을 정하고 신규 화합물을 만들어서 출발했는데 나중에 특허 문제로 개발을 포기한 경험은 흔하다. 외국계 기업과의 경쟁에 있어서 이 분야 역시 경쟁력이 없다.
요즘 신약개발의 관건은 target identification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Genomics의 발달로 그간 약 500개 정도의 타깃이 3,000개 이상으로 확대됐다. 따라서 신약개발 주체의 입장에서 본다면 독자적인 target identification이 신약개발의 분야를 얼마나 확보하느냐는 것이 관건이 된다. Target identification에 필수적인 지식, 지노믹스 이것 역시 한국 기업의 입장에선 고개를 흔들 수밖에 없다.
NCE나 NF를 확보한 후 스크리닝을 하기 위한 수단 중의 하나인 특정질환 모델 동물의 확보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이후 필요한 전임상·임상시험에서의 GLP·GCP 능력은 이미 밝힌 바대로 자금력·기획력·추진력 등이 성공의 핵심요소가 되므로 논외로 하고자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전임상·임상실험을 아웃소싱 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기획하고 관리할 능력과 경험에 관해서는 한번쯤은 짚어볼 필요성이 있겠다.
마지막으로 수익성 측면에서 한국의 현실은 어떠한가. 일본의 경우를 본다면 일본은 1960년대 말 혹은 70년대 초부터 일본의 자체 신약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최근의 상황으로 본다면 그 시절 일본 신약의 경우 안전성·유효성의 미비로 제품이 시장에서 퇴출된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제품조차 일본 내에서는 상당한 수익에 기여한 제품이 많다.
Sankyo의 Krestin의 경우 80년대 단위 매출이 약 400~500억엔 규모에까지 이르렀었다. 일본 제약시장은 단위 국가로서는 미국 다음가는 세계 제2위의 시장이다(전세계 시장의 15~18%). 따라서 구태여 어려운 해외시장 개척이라는 한 단계 높은 수준을 추구하지 않더라도 일본 내에서만도 충분히 수익성(투자비+이익)을 확보할 수 있었다.
또한 일본 시장 자체가 가지고 있는 폐쇄성, 자국의 신약에 대한 끔찍한 애정 또한 일본 제약기업 수익의 원천이 되고 있다. 세계 최대의 의약품인 Losec(Prilosec)이 일본에서는 Yamanouchi의 Famotidine과 Takeda의 Takepron에 눌려 거의 기를 펴지 못한다.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떤가? 우선 시장자체(세계 시장의 1% 규모)가 작아서 국내시장에서 만의 수익성 확보는 웬만해서는 어렵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굉장히 공정한 규칙이 적용되는 나라이다.
어느 누구도 국산 신약이라 해서 주는 혜택을 누릴 수 없다. 백수십년의 신약개발 역사를 지닌 서구기업, 일본기업과 동일한 기준으로 판단한다.
국가기관에서조차 국산신약에 대해 암묵적으로라도 지원해주는 일은 없다. 보험약가 심사기준, 사용상에 있어서의 편의성, 보험약가 적용 기준 등에서의 엄격함은 추상(秋霜)과 같다. 하물며 일선 병·의원에서의 우선 선택 등의 꿈은 기대하기도 힘든 현실이다(이를 좀더 적극적으로 본다면 확실한 경쟁력을 스스로 키워야 한다는 공정경쟁의 토양이 될 수도 있다).
한국 현실에 맞는 신약개발 전략
신약개발 자체와 한국 현실을 살펴보더라도 어느 구석에도 가능성이나 유리한 점은 없다. 한국에서의 신약 개발은 꿈인가? 아니다. 생존하기 위해서 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너 자신을 알라.
의약품 시장만큼 대체제가 많은 시장은 없다. 즉 다양한 질환도 질환이지만 환자마다 가진 특이성, 의·약사마다 가진 자신의 기호, 거기에다 여러 제약회사의 다양한 마케팅 활동으로 의약품 시장은 다양하고 복잡하다.
이것은 결국 기회도 그만큼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즉 개별기업이 자신있는 분야에서 신약개발을 해 성공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가장 시장성이 높은 분야가 무엇인가를 끝없이 고민할 것이 아니고 어느 분야에 자신의 핵심 경쟁력이 존재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분야가 아닌 자신의 강점이 존재하는 분야, 그 분야에서 R&D를 시작해야 한다. 자기 기업의 핵심 경쟁력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것이 신약개발의 첫걸음이다.
둘째, 남을 인정하라.
R&D 연구원들의 가장 강점이자 약점은 자신이 최고라는 인식과 남의 능력을 어떻게든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개별기업이 신약개발의 전 과정을 독자적으로 수행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세계적인 다국적 제약기업들도 자체 신약의 50~60%는 라이센싱 인(licensing in)에 의존하고 있다.
남들의 아이디어를 경청하고 이를 활용하라.
앞으로 기업의 신약개발에 있어서의 R&D center는 R&D Coordination Headquarter가 돼야 할 것이다. 외부 능력을 아웃소싱하고 네트워킹하여 신약개발을 추진하는, 남들의 능력을 인정하는 그러한 조직이 돼야 할 것이다.
셋째, 사고를 바꿔라.
바이오테크놀로지가 최근에 새롭게 각광받기 전까지 신약이라 하면 당연히 NCE 개발방법만을 생각해왔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상업성이 있는 우수한 NCE의 개발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힘들게 개발해 놓고도 특허에 문제가 있어 포기하는 경우는 허다하게 겪는 일이다. 왜 NCE만 목표로 해야 하는가? NF의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이미 안전성이 확보된 물질의 새로운 용도의 개발(용도특허)은 안되는 것일까?
제약 산업은 R&D와 마케팅의 두 축으로 형성된 산업이다. 두 분야 모두의 진입 장벽은 엄청나게 높다. 다른 산업에 비해 산업의 power shifting이 극히 느리다는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강자들끼리의 경쟁과 담합, 이것이 제약산업의 현상이다. 따라서 그들 강자들이 가는 길을 그냥 따라 간다는 것은 우리만의 성공의 길이 아니다. 그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분야, 그들의 경쟁력이 존재하지 않는 분야에 대해 고민하라(Nich Market).
넷째, 목표수준을 높여라.
신약 개발을 함에 있어서 R&D 수준을 적당히 타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경우 결국은 스스로를 괴롭히는 결과를 초래한다.
목표수준을 높여 세계적 수준(Global Level)을 요구해야 한다.
처음부터 수준을 낮게 설정해서는 2·3류밖에 가지 못한다. 미래 시대에는 2·3류는 존재할 수 없다. 신약허가를 담당하는 기관을 비롯해 고객 모두에게 세계적 수준이 요구된다.
이미 이야기한 바와 같이 시장은 냉정하다. 따라서 수준 낮은 제품과 수준 낮은 자료는 시장에서 인정하지 않는다.
낮은 수준을 목표로 할 것인지, 높은 수준을 목표로 할 것인지 스스로 물어 봐라.
그러나 R&D의 목표수준을 높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따라서 이를 이끌어야 하는 경영층들의 이해가 가장 중요하다. R&D의 세계적 수준을 이해하고 이를 R&D에 요청하라.
다섯째, 도전하라. 그리고 습관화하라.
신약개발은 어려운 일이다. 정말 엄청난 인내가 요구되는 긴 여정의 길이다. 그러나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해본 자만이 늘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그러한 일인 것이다. 한번 해보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그냥 일상사(?)와 같은 일이 될 수 있다. 감히 단언 하고자 한다. 신약개발은 습관이다.
마지막으로
한국 현실에 맞는 신약개발 전략이라는 별도의 전략이 있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필자의 결론은 `그러한 전략은 없다'이다. 신약개발이라는 대명제는 세계 어느 제약기업에게나 동일한 숙제이며 국가별로 기준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모두가 일원화되어 가는 과정에 있다.
따라서 국가별 적합한 전략이 아닌 개별기업의 능력과 처지에 적합한 전략만이 존재할 수 있다. 즉, 자기 자신을 알고(Core Competence), 남과 더불어(Out sourcing&Networking) 남과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세계적 수준을 목표로 도전하는 길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