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이리 오너라’와 ‘스미마셍’의 차이

사람을 두려워하는 나라 일본 (2)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기자 | @     기사입력 2010-12-08 10:06     최종수정 2010-12-08 10:12

우리나라 사람은 남을 부를 때 “여보세요”라고 부른다. 아마 ‘여기 좀 보세요’라는 의미가 아닌가 한다. 일본 사람은 뭐라고 부를까? 답은 ‘스미마셍’이다. ‘미안합니다’라는 뜻이다. 일본에서는 남을 부르는 것이 미안한 일인 것이다. 왜 그럴까? 내 생각엔 일본인들이 칼을 차고 살았기 때문인 것 같다. 칼을 차고 가는 사람을 불러 세운다고 생각해 보라. 어찌 겁이 나지 않겠는가? 그래서 부를 때 ‘미안합니다’ 소리가 저절로 나오는 것이다. 그것도 기어들어가는 듯한 낮은 목소리로. 

우리나라 사람은 예컨대 선생님을 댁으로 찾아 뵙고 싶을 때, “선생님, 조만간 한번 찾아 뵙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일본에서는 어떻게 말할까? “우깡아와세떼 이따다끼마쓰” 또는 “오자마사세떼 이따다끼마쓰”라고 말한다. “저로 하여금 찾아 뵙게 해 주십시오” 또는 “저로 하여금 폐를 끼치게 해 주십시오” 라는 뜻이다. 한국식으로 ‘찾아 뵙겠다’는 직설적인 표현은 일본에서는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들 우려가 있는 일방적이고 도전적인 표현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아무도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상대방이 불쾌하지 않도록 ‘돌려서’ 말하는 것이다.

일본 음식점은 예컨대 3일간 쉴 경우, 우리처럼 ‘3일간 휴업’이라는 대담한 글귀를 입구에 써 붙이지 못한다. 대신, ‘3일간 쉬게 해 주십시오’라고 써 붙인다. 여름 휴가철에 일본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이를 본 한국 사람은 대개 ‘자기가 쉬려면 그냥 쉬면 되지, 꼭 손님 허락을 받아야 쉴 것처럼 저렇게 위선적인 글귀를 써 붙이나’ 하며 못마땅해 한다.

남의 집을 방문해서 문간에서 주인을 부르는 말도 우리와 너무 다르다. 일본에서는 “시츠레이시마쓰” 이다. ‘실례합니다’란 표현이다. 문을 열어주어 집안에 들어 갈 때에도 ‘오소레이리마쓰’, 즉 ‘황송합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일본에서는 남의 집에 들어 가는 일이 ‘실례’이며 ‘황송한’ 일이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어떠했는가? 조선시대에는 남의 집 대문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쳤다. ‘이리오너라’ 라고. 조금 배포가 약한 사람은 ‘계십니까?’ 라고 외쳤다. 어떻게 남의 집 문 앞에서 소리를 칠 수 있는가? 그것은 그만큼 조선이 안전한 나라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어렸을 적에 저녁에 우리 집으로 마실을 오는 동네 사람들은 아무도 “실례합니다” 따위의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어이 참 달도 밝다’ 라든지 ‘비가 오시려나’ 라든지, 아니면 ‘저놈의 개는 왜 괜히 짖고 지랄이야’ 라고 큰 소리를 내거나, 그도 아니면 그냥 헛기침을 몇 번 하면서 불쑥 들어 왔다. 우리 집에 개를 빼고는 그들을 해칠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일본과 엄청나게 다른 대목이다.

일본어의 또 하나의 특징은 유난히 수동태를 많이 쓴다는 것이다. ‘선생님 언제 학교에 나오십니까?’ 라고 묻는 대신, ‘언제 학교에 보이십니까 (이쯔 오미에니 나리마쓰까?’ 라고 여쭙는다. 감히 선생님 보고 언제 학교에 ‘오시냐?’고 직설적으로 묻지 못하고. ‘내 눈에 언제 보이시게 되느냐’고 간접적으로 겨우 묻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생각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것 같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는 직설적인 표현보다는, ‘나는’ 이라는 주어는 슬며시 빼고 그냥 ‘이렇게 생각된다 (오모와레루)’는 수동태적인 표현을 훨씬 많이 쓴다. 역시 직설적인 표현이 상대방을 자극할까 두려워 하는 모습이다.  

우리말과 일본어는 달리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비슷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리 오너라’와 ‘스미마셍’, ‘직설적으로 말하기와 돌려말하기’, 그리고 ‘능동태로 말하기와 수동태로 말하기’ 같은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것은, 과거에 일본은 칼을 차고 사는 불안한 나라이었던 반면,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나라이었음에 비롯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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