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졸음 방지약
학교 다닐 때 약물학 시간, 식욕억제제에 관해 배울 때였다. 옆에 앉아 있던 뚱뚱한 선배가 갑자기 나에게 물었다. 너 가장 좋은 식욕억제제가 뭔지 알아? 내 대답은 배운대로 그야 메트 암페타민류? 그 선배 왈, 놉!, 가장 좋은 식욕억제제는 밥이야, 임마.
하하, 그런식이라면 가장 좋은 졸음 방지약은 잠이 되겠다. 하지만 잠을 잘 수 없다면? 아니면 째째 파리 (사실은 원음이 tsetse이므로 체체 파리가 맞는 발음이겠지만 웬지 째째파리가 더 익숙하다) 에 물린 것처럼 낮이고 밤이고 잠만 잔다면?
잠을 쫓기 위해 우린 커피를 마신다. 몇 잔이고 마시지만 안타깝게도 그렇게 쫓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 쏟아지는 게 잠이다.
낮에 일을 해야 하는데도 쏟아지는 잠 때문에 일을 못하는 사람이 있다. 미스타 존스가 그런 사람이다. 밤에 잠을 못 자고 일해야 하는 사람도 있다. 미스 앤더슨이 그런 사람이다. 그녀는 워싱턴 DC에 있는 Children’s Hospital의 간호사로 근무한다. 간호사는 보통 3 교대로 근무를 하므로 3주에 한 주는 꼭 야간 근무를 해야 한단다.
이런 분들이 먹는 약이 있다. 상품명이 Provigil이고 성분은 modafinil인데 이 약물은 소위 뇌를 각성시키는 작용이 있다. 이 약을 먹고 64시간을 말짱히 깨어 있었다는 기록도 있고 헬리콥터 운전병이 이 약을 먹고 40시간을 아무런 장애 없이 비행물체를 작동했다고도 한다.
째째 파리는 중앙 아프리카에만 서식하는데 이 째째 파리에 물리면 몇 일간 잠을 자다가 결국은 죽는다 한다. 사실 말이 잠자는 거지 혼수 상태에 빠져서 죽는 거다. 수면병이라 불리는 이것은 아주 무서운 질병으로 째째 파리가 옮기는 trypanosome라는 적혈구 만한 크기의 기생충에 의해 야기되는 질병이다. 이 무서운 질병 때문에 다른 아프리카의 나라들과 달리 중앙 아프리카의 나라들이 서구 열강들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다는 믿거나 말거나한 이야기도 있다. 대단한 째째 파리의 힘이다.
물론 Provigil이 째째파리에 물린 사람에게 효과가 있진 않다. 이 수면병에는 아직도 좋은 약은 없는데 병의 진척도에 따라 pentamidine, melarsoprol, suramin 등의 약물이 쓰인다.
Provigil은 가짜로 자는 게 아니라 진짜로 졸리운 데 쓰는 약이다. 미스터 존스도 그렇고 미스 앤더슨도 이 약의 효과는 정말 탁월하다고 한다. 간호사인 미스 앤더슨은 밤 근무 할 때 카페인 제제를 복용하곤 했는데 효과가 탁월하지 않아 간혹 졸음도 오거니와 부작용 때문에 가슴도 떨리고 소변이 자주 마려워 불편했었다 한다. 하지만 Provigil을 복용하기 시작하곤 밤새워 근무해도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못하고 정신도 말짱해서 일을 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한편, 미스터 존스는 정말 이상하게 째째파리에 물린 것처럼 하루 종일 졸렸었는데 이 약을 먹으면서 졸음 증상은 사라지고 정신이 맑아져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한다.
한국에서 회사를 다닐 때다. 본사에 회의를 가면 항상 조는 선배가 있었다. 과도한 밤 문화(?)를 즐기느라 그런 듯도 하고 그 분의 업무자체가 반 강제로 밤 문화를 즐겨야 하는 직업이기도 했다. 내가 과장일 때 그 선배는 차장이었는데 브리핑이 시작되면 졸기 시작하다가도 디스커션할 때 되면 신기하게도 일어나 질문하고 하는 그런 분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내가 회사를 이직한 후 그 선배가 결국은 해고되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게 회의 때 마다 졸아대니 안 짤릴 수 있나 하는 생각도 든다. Provigil을 복용했으면 정신이 바짝 들면서 그렇게 허망하게 짤리지는 않았을텐데… 하지만 과도한 한국의 밤 문화에는 이 특효약도 전혀 안 들었을 거 같은 생각도 같이 든다.
이 곳 워싱턴 약국에도 점심 후면 째째 파리떼(?)가 극성이라 나도 몰래 꼭 한 두 번은 물리곤 한다. 유사 째째 파리에 의한 급성 수면병(?)에는 잠이 최고지만 약국에서 잠을 잘 순 없으니 나도 Provigil의 복용을 한 번 고려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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