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덕성여자대학교 약학대학 명예교수/한국사진작가협회회원 권 순 경늦여름에서 가을에 걸쳐서 꽃을 피우는 국화과 식물 중에 산비장이라는 식물이 있다.
산비장이는 전국의 산이나 들의 풀밭에 자라는 여러해살이식물로서 줄기가 1미터 이상 높이로 크게 자라므로 숲속에서 단연 어떤 식물보다 눈에 잘 띈다. 줄기가 위에서 갈라져 여러 개의 가지가 생겨난다. 잎은 잎자루가 길고 새 깃처럼 깊게 갈라지며 가장자리는 불규칙한 톱니가 있고 뒷면은 회백색이다.
8~9월에 줄기와 가지 끝에 종 모양의 홍자색 꽃이 위를 향하여 핀다. 꽃송이의 밑 부분인 총포는 적갈색이고 포 조각은 6줄로 배열되어 있으며 거미줄 같은 털이 있다. 총포 윗부분은 관 모양의 대롱꽃만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꽃잎이 없다.
먼저 생긴 수술 사이로 암술대가 밖으로 자라 나오고 암술머리는 2개로 갈라져 밑으로 말린다. 총포는 국화과 식물의 꽃에 많은데 꽃받침이 변형되어 형성되며 작은 비늘 같은 포가 기왓장 잇듯이 구성되어 있다.
총포는 매우 견고해서 침입자들이 쉽게 공격할 수 없으며 꽃가루받이에 기여하지 않고 꿀을 훔치려는 침입자들로부터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진화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씨앗은 갈색으로 갓털이 나 있다.
얼핏 보면 꽃송이가 엉겅퀴나 조뱅이꽃을 닮았지만 크기가 엉겅퀴 꽃송이보다 조금 작으며 엉겅퀴는 잎에 거센 가시가 돋아 있으나 산비장이의 잎에는 가시가 없고 매우 부드럽다.
조뱅이의 잎은 잎이 기다란 타원형으로 갈라지지 않는다. 엉겅퀴와 조뱅이는 봄꽃이고 산비장이는 가을 초입에 피므로 산비장이와는 개화 시기도 다르다.
산비장이라는 꽃 이름은 조선조 때 무관 벼슬의 일종인 ‘비장(裨將)’이라는 이름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원님과 같은 지방 장관이나 감사, 절도사 그리고 외국에 파견되는 사신을 수행하면서 신변을 호위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높게 자란 산비장이의 모습이 비장처럼 산에 보초를 서 있는 듯하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라는 것이다. 한편 산비장이의 꽃송이가 조선 시대 무관들이 쓰던 벙거지 모자인 전립(氈笠)의 장식 수술과도 맒은 점이 많다.
속명 세라툴라(Serratula)는 ‘이빨이 톱처럼 생겼다‘는 뜻의 라틴어 세라투스(serratus)에 왔으며 산비장이의 깊게 갈라진 잎을 나타낸다. 종명 코로나타(coronata)는 라틴어에서 ’크라운’의 뜻을 가진 ’코로나투스(coronatus)에서 비롯되었고 산비장이의 꽃송이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산비장이의 어란 잎은 산나물로 먹을 수 있으나 놀랍게도 산비장이의 민간약이나 한약의 용도에 관한 기록은 거의 없다. 식물 자체가 크고 꽃도 아름다워 사람의 눈에 잘 띄어서 접촉이 많았을 것으로 짐작되는데도 어떤 연유로 산비장이가 약으로서의 용도가 발견되지 않았는지 매우 의아스럽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식물이 우리의 식생활과 민간약 또는 의약으로 깊은 관계를 맺고 있어서 활용의 폭이 넓다. 그래서 극히 일부의 독초를 제외한 거의 모든 식물을 산나물로 이용하고 있고 심지어 서양인들이 독초라 하여 접근조차 꺼리는 고사리까지 먹고 있다.
생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삶아서 말리는 과정에서 모든 독성물질이 제거되어 안전하게 이용하는 지혜를 터득했다. 독일 유학 시절 경험한 바이지만 고사리를 뜯어다 말리는 광경을 본 이웃들이 놀라서 모여든 경험도 있다.
또한 식용 이외에도 민간약이나 한약으로 쓰이지 않은 것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잎 추출물에서 항산화 작용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고 아피게닌(apigenin), 루테올린(luteolin), 케르세틴(quercetin)과 같은 플라보노이드가 다수 검출되었다. 좋은 의약으로 개발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