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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준의 클래스토리

탈락의 이유

편집부

기사입력 2021-07-02 13:08     최종수정 2021-11-29 10:07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초견이 나쁘고, 리듬 감각이 없다.” 

1896년, 당시 21세였던 어느 젊은 바이올리니스트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악장 오디션에 응시하였습니다. 하지만 위와 같은 이러한 평가를 받으며 탈락하고 말았지요. 냉정한 평가를 하며 그를 떨어뜨린 인물은 당시 빈 필의 악장이었던 로제(A. Rosé, 1863-1946)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탈락시킨 이 바이올리니스트의 이름은 바로 크라이슬러(F. Kreisler, 1875-1962). 대단히 뛰어난 연주자이자 ‘사랑의 슬픔(Liebesleid)’ ‘사랑의 기쁨(Liebesfreud)’ 그리고, ‘아름다운 로즈마린(Schön Rosmarin)’ 등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을 남긴 작곡가로서 늘 기억되는 인물이지요.

      크라이슬러(좌) © by Aime Dupont, N.Y./New York Times
      로제 (우) © Österreichische Nationalbibliothek, Bildarchiv

빈 태생의 크라이슬러는 어렸을 때부터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하였습니다. 불과 7세에 빈 음악원에 입학하여 바이올린과 작곡을 배웠고 10세에 우등으로 졸업한 뒤에는 파리로 건너가 파리 음악원에서도 바이올린과 작곡을 배웠지요. 파리 음악원 역시 우등으로 졸업하게 됩니다. 이 때 그의 나이는 겨우 12세였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미국으로 연주 여행을 가서 50여회의 연주회를 소화해내기도 했지요. 비록, 그 이후 6~7년 정도 음악 활동을 하지 않았던 긴 공백 기간이 있기는 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신동으로 각광받았던 그가 오디션에서 위와 같은 평가를 받으며 탈락했다는 사실이 잘 믿어지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로제의 평가는 과연 정당했던 것일까요?

어떤 이들은 로제가 크라이슬러의 뛰어난 연주 실력에 두려움을 느껴 그를 오디션에서 탈락시켰을 것이라 추측하기도 합니다. 오케스트라 안에서 악장으로서 같이 연주하다보면 크라이슬러와 로제의 실력이 비교되는 상황이 자연스레 올 것이고 이것이 로제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추측이지요. 어쩌면 조금은 사실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비록 오늘날 로제보다 크라이슬러가 더 유명하다고는 해도 불과 17세의 나이에 빈 필의 악장으로 발탁될만큼 대단한 실력을 지녔던 로제가 단순히 경쟁자 제거 차원에서 크라이슬러를 떨어뜨렸다는 추측은 설득력이 부족해 보입니다.

크라이슬러가 탈락한 것에 대한 보다 설득력 있는 견해는 두 사람의 연주 스타일 차이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음을 아래 위로 떨어 아름답게 울리게 하는 비브라토(Vibrato) 주법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지요. 로제가 연주에 있어 비브라토를 상당히 억제하는 방식을 취한 반면, 크라이슬러는 비브라토를 보다 풍부하게 구사하였습니다. 

악장과 그가 속한 오케스트라의 현악기 파트의 연주 스타일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음을 고려하면 이는 단순히 개인간의 연주 스타일 차이를 넘어서는 문제였습니다. 더군다나 크라이슬러가 오디션을 보았던 때는 로제가 악장으로 취임한 지 이미 15년 정도가 흘렀을 때였습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사회는 오늘날과 같이 세계화된 것이 아니어서 각 오케스트라가 지닌 고유의 소리가 더 잘 살아있었음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요. 이를 고려해보면 로제의 연주 스타일은 당시 빈 필 현악 주자들의 스타일을 대변한다고도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한편, 비브라토를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로제의 스타일은 1930년대 말까지 이어진 그의 긴 악장 재임 시절 내내 지속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1920년대에 있었던 오디션에서 어느 바이올린 연주자가 비브라토를 풍부하게 구사하자 즉시 “염소가 우는 것 같은 소리를 내지 말라”고 말했던 일화에서도 실감할 수 있지요. 

결국, 크라이슬러가 뛰어난 기량을 지녔음은 분명하지만 그의 연주 스타일이 당시 빈 필이라는 오케스트라와는 맞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그의 오디션 탈락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설명은 오늘날에도 명성있는 오케스트라에 지원하는 뛰어난 연주자들에게 종종 적용되고 있기도 하지요.

각자가 지닌 고유의 소리를 지켰다는 점에서, 크라이슬러의 빈 필 오디션 탈락은 결과적으로 서로에게 윈윈이 되었습니다. 오디션에서 떨어진 지 2년이 지난 1898년, 크라이슬러는 다시 빈 필 단원들 앞에 섰습니다. 이번에는 오디션 지원자로서가 아니었습니다. 브루흐(M. Bruch, 1838-1920)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협연하기 위해서였지요. 이듬해에 베를린 필과도 처음으로 연주한 그는 점차 자신의 커리어를 넓혀나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위대한 음악가로서 여전히 기억되고 있습니다.

추천영상: 바흐(J. S. Bach, 1685-1750)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1번 중 아다지오 악장을 로제와 크라이슬러 그리고 시게티(J. Szigeti, 1892-1973)가 연주한 음원입니다. 로제와 크라이슬러 사이의 스타일 차이를 분명하게 알 수 있지요. 간결한 로제의 소리와 풍부한 크라이슬러의 소리를 비교해가며 들어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6S7pBpUaLu4


<필자소개>
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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