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웅의 시대에도 영원한, ‘ 오빠, 남진’
가수 임영웅의 월드컵경기장 공연 실황을 담은 ‘임영웅 | 아임 히어로 더 스타디움’(감독 정현철, 조우영)이 개봉한 지 일주일만에 약 18만 명의 관객수를 기록하며 46억 원 이상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이는 임영웅의 고척스카이돔 공연 실황을 담은 ‘아임 히어로 더 파이널’(감독 오윤동, 2023)의 13만 명, 32억 원의 매출액을 훌쩍 넘어선 기록이다. 극장가 침체 상황에서도 한 가수를 향한 팬덤은 이처럼 위력적이다. 그 위대한 팬덤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누가 있을까. 60~7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들이라면 응당 ‘남진’을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오빠, 남진’(감독 정인성)은 우리 대중음악사에서 최초로 ‘오빠’라고 불렸던 전설적 가수 남진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영화는 남진이 밴드와 함께 히트곡을 부르는 공연실황 장면과 본인 인터뷰, 그리고 선후배 및 동료들의 인터뷰가 교차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흥미로운 것은 데뷔 60주년을 맞은 남진의 역사는 곧 우리 대중음악사, 나아가 한국 현대사와 맞물린다는 점이다. 영화는 여러 대중음악 전문가들을 통해 1920년대 대중가요가 처음 등장했던 시기부터 우리나라에 어떻게 대중가수가 탄생했는지 훑어준다.
실력 있는 가수들이 미8군 무대에 모이기 시작했던 시절, 남진은 엘비스 프레슬리, 앤디 윌리엄스, 냇 킹 콜 등 서구 가수들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고, 오아시스 레코드사에서 앨범을 내며 본격적으로 대중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중, ‘울려고 내가 왔나’라는 곡은 당시 고향을 떠나 도시로 왔던 노동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으며 히트를 쳤고, 이후 남진은 당대 최고의 작곡가 박춘석 사단에 편입되면서 명실공히 스타의 자리에 올랐다. ‘가슴 아프게’는 그가 박춘석과 합작한 대표곡이다.
가수와 영화배우를 오가며 활발히 활동하던 그는 해병대에 입대해 월남전에서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긴다. 제대 후 공백기를 딛고 TBC 방송국의 ‘쇼쇼쇼’에 출연하며 재기에 성공했으며 새롭게 부상한 스타 나훈아와 라이벌 구도를 이루기도 했다. 이 시기 발표한 ‘님과 함께’는 남진 최고의 히트곡으로써 그에게 가히 폭발적인 인기를 가져다주었던 곡이다.
그러나 그의 큰 성공 뒤에는 그림자도 짙게 깔려 있었다. 남진은 나훈아 피습사건의 배후로 누명을 쓰기도 했으며 신군부 정권하에서 좌파로 낙인 찍혀 방송출연을 금지당했고 조폭에게 허벅지를 찔리는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타고난 긍정적 성격과 음악이었다. 다큐 속 음악계 관계자들은 앞다투어 남진의 철저한 자기 관리와 음악에 대한 사랑을 증언한다.
그래서일까. 다큐멘터리 전반에 삽입된 남진의 공연실황에는 여전히 호소력과 에너지가 넘치는 그의 목소리가 잘 담겨 있다. 장윤정, 송가인, 박현빈 등 후배 가수들은 남진의 마지막 무대를 아직 상상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임영웅의 시대에도 오빠 남진의 무대는 현재진행형이다.
윤성은의 Pick 무비
행복이란 과대평가된 단어, ‘한국이 싫어서’
장강명 작가의 베스트셀러, ‘한국이 싫어서’(2015)가 스크린에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그러나 흥행 추이는 원작 출간 당시의 반향에 비하면 다소 실망스럽다. 스크린을 많이 잡지 못한 이유도 있고, 선선해진 계절탓도 있을 것이다. 영화관보다는 야외가 매력적인 날씨니까. 혹자는 원작의 날카로움이 무뎌진 점을 지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 ‘한국이 싫어서’(감독 장건재)는 원작과 다른 시선과 톤앤매너로 만들어진 작품이고 나름대로의 미덕이 충분하다.
사실 소설은 ‘헬조선’이라는 말이 난무하던 시대에 쓰였기 때문에 제목만으로 공감을 얻었지만 K-콘텐츠가 부상하면서 전세계인들이 한국으로 몰려들고 있는 현시점에 ‘한국이 싫어서’라는 말은 아리송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영화는 소설과 달리 한국 사회의 부정적 모습보다는 ‘계나’(고아성)라는 캐릭터가 가진 특수성에 더 주목한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계나는 인천에서 강남까지 편도 2시간씩 출퇴근을 하는 직장인이다. 재건축 아파트의 완공을 기다리느라 좁은 집에서 네 식구가 복닥거리며 사는데 유독 추위를 못 견디는 계나는 고장난 보일러도 고치지 않는 엄마가 원망스럽다. 한 술 더 떠서 엄마는 계나가 열심히 부어온 적금까지 아파트 입주금에 보태라고 종용한다. 남자친구의 부모님을 만나던 날 계나는 복잡한 심정을 정리하면서 이민을 결심한다.
뉴질랜드로 간 계나는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며 점차 현지에 적응해 나간다. 한국에서 롱패딩을 입고도 벌벌 떨던 계나가 민소매에 짧은 바지를 입고 활보하는 모습은 그녀가 심리적인 안정과 자유를 얻었음을 암시한다. 뉴질랜드에도 사기꾼들이 있고 잦은 만남과 이별이 교차하지만 계나에게는 안정된 남자친구와 가족이 있는 한국보다 따뜻한 날만 계속되는 이 곳에서의 삶이 더 ‘행복’하다. 그렇게 영화는 ‘한국이 싫어서’라는 제목의 오해를 스스로 풀어낸다. 한국이 문제가 아니라, 한국을 벗어나야 행복해질 수 있어서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행복의 의미는 다르기에 떠나는 사람도 있는 거라고. ‘행복이란 단어는 과대평가 된 것 같다’는 계나의 대사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가 맞춤형 행복의 안내서 같은 역할을 해줄 것이다.
<필자소개>
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
임영웅의 시대에도 영원한, ‘ 오빠, 남진’
가수 임영웅의 월드컵경기장 공연 실황을 담은 ‘임영웅 | 아임 히어로 더 스타디움’(감독 정현철, 조우영)이 개봉한 지 일주일만에 약 18만 명의 관객수를 기록하며 46억 원 이상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이는 임영웅의 고척스카이돔 공연 실황을 담은 ‘아임 히어로 더 파이널’(감독 오윤동, 2023)의 13만 명, 32억 원의 매출액을 훌쩍 넘어선 기록이다. 극장가 침체 상황에서도 한 가수를 향한 팬덤은 이처럼 위력적이다. 그 위대한 팬덤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누가 있을까. 60~7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들이라면 응당 ‘남진’을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오빠, 남진’(감독 정인성)은 우리 대중음악사에서 최초로 ‘오빠’라고 불렸던 전설적 가수 남진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영화는 남진이 밴드와 함께 히트곡을 부르는 공연실황 장면과 본인 인터뷰, 그리고 선후배 및 동료들의 인터뷰가 교차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흥미로운 것은 데뷔 60주년을 맞은 남진의 역사는 곧 우리 대중음악사, 나아가 한국 현대사와 맞물린다는 점이다. 영화는 여러 대중음악 전문가들을 통해 1920년대 대중가요가 처음 등장했던 시기부터 우리나라에 어떻게 대중가수가 탄생했는지 훑어준다.
실력 있는 가수들이 미8군 무대에 모이기 시작했던 시절, 남진은 엘비스 프레슬리, 앤디 윌리엄스, 냇 킹 콜 등 서구 가수들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고, 오아시스 레코드사에서 앨범을 내며 본격적으로 대중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중, ‘울려고 내가 왔나’라는 곡은 당시 고향을 떠나 도시로 왔던 노동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으며 히트를 쳤고, 이후 남진은 당대 최고의 작곡가 박춘석 사단에 편입되면서 명실공히 스타의 자리에 올랐다. ‘가슴 아프게’는 그가 박춘석과 합작한 대표곡이다.
가수와 영화배우를 오가며 활발히 활동하던 그는 해병대에 입대해 월남전에서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긴다. 제대 후 공백기를 딛고 TBC 방송국의 ‘쇼쇼쇼’에 출연하며 재기에 성공했으며 새롭게 부상한 스타 나훈아와 라이벌 구도를 이루기도 했다. 이 시기 발표한 ‘님과 함께’는 남진 최고의 히트곡으로써 그에게 가히 폭발적인 인기를 가져다주었던 곡이다.
그러나 그의 큰 성공 뒤에는 그림자도 짙게 깔려 있었다. 남진은 나훈아 피습사건의 배후로 누명을 쓰기도 했으며 신군부 정권하에서 좌파로 낙인 찍혀 방송출연을 금지당했고 조폭에게 허벅지를 찔리는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타고난 긍정적 성격과 음악이었다. 다큐 속 음악계 관계자들은 앞다투어 남진의 철저한 자기 관리와 음악에 대한 사랑을 증언한다.
그래서일까. 다큐멘터리 전반에 삽입된 남진의 공연실황에는 여전히 호소력과 에너지가 넘치는 그의 목소리가 잘 담겨 있다. 장윤정, 송가인, 박현빈 등 후배 가수들은 남진의 마지막 무대를 아직 상상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임영웅의 시대에도 오빠 남진의 무대는 현재진행형이다.
윤성은의 Pick 무비
행복이란 과대평가된 단어, ‘한국이 싫어서’
장강명 작가의 베스트셀러, ‘한국이 싫어서’(2015)가 스크린에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그러나 흥행 추이는 원작 출간 당시의 반향에 비하면 다소 실망스럽다. 스크린을 많이 잡지 못한 이유도 있고, 선선해진 계절탓도 있을 것이다. 영화관보다는 야외가 매력적인 날씨니까. 혹자는 원작의 날카로움이 무뎌진 점을 지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 ‘한국이 싫어서’(감독 장건재)는 원작과 다른 시선과 톤앤매너로 만들어진 작품이고 나름대로의 미덕이 충분하다.
사실 소설은 ‘헬조선’이라는 말이 난무하던 시대에 쓰였기 때문에 제목만으로 공감을 얻었지만 K-콘텐츠가 부상하면서 전세계인들이 한국으로 몰려들고 있는 현시점에 ‘한국이 싫어서’라는 말은 아리송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영화는 소설과 달리 한국 사회의 부정적 모습보다는 ‘계나’(고아성)라는 캐릭터가 가진 특수성에 더 주목한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계나는 인천에서 강남까지 편도 2시간씩 출퇴근을 하는 직장인이다. 재건축 아파트의 완공을 기다리느라 좁은 집에서 네 식구가 복닥거리며 사는데 유독 추위를 못 견디는 계나는 고장난 보일러도 고치지 않는 엄마가 원망스럽다. 한 술 더 떠서 엄마는 계나가 열심히 부어온 적금까지 아파트 입주금에 보태라고 종용한다. 남자친구의 부모님을 만나던 날 계나는 복잡한 심정을 정리하면서 이민을 결심한다.
뉴질랜드로 간 계나는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며 점차 현지에 적응해 나간다. 한국에서 롱패딩을 입고도 벌벌 떨던 계나가 민소매에 짧은 바지를 입고 활보하는 모습은 그녀가 심리적인 안정과 자유를 얻었음을 암시한다. 뉴질랜드에도 사기꾼들이 있고 잦은 만남과 이별이 교차하지만 계나에게는 안정된 남자친구와 가족이 있는 한국보다 따뜻한 날만 계속되는 이 곳에서의 삶이 더 ‘행복’하다. 그렇게 영화는 ‘한국이 싫어서’라는 제목의 오해를 스스로 풀어낸다. 한국이 문제가 아니라, 한국을 벗어나야 행복해질 수 있어서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행복의 의미는 다르기에 떠나는 사람도 있는 거라고. ‘행복이란 단어는 과대평가 된 것 같다’는 계나의 대사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가 맞춤형 행복의 안내서 같은 역할을 해줄 것이다.
<필자소개>
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