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007’이나 ‘미션 임파서블’에는 있고, 이 영화에는 아직 없는 게 있으니, 바로 메인 테마 곡이다. 악당을 때려눕히는 마석도(마동석)의 강펀치가 시원한 타격감으로 관객들을 흥분시킬 때, 흘러나와야 할 친숙한 음악이 진작 있어야 했다. 그런데 ‘범죄도시4’에 드디어 그런 음악으로 기대할 만한 스코어가 등장했다. 영화의 마지막 액션 신에서 마석도가 두 명의 악당을 때려잡느라 일등석을 초토화시킬 때 나왔던 ‘파이널 퍼니쉬먼트’(final Punishment)는 강한 비트의 드럼에 일렉트릭 기타의 멜로디가 소리지르듯 얹히면서 귀에 강렬하게 박히는 곡이다. ‘범죄도시4’의 음악을 담당한 윤일상 감독은 김범수의 ‘보고싶다’, 이은미의 ‘애인 있어요’ 등 인기가요를 다수 만들어온 대중음악 작곡가로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본인의 밴드를 만들어 음반도 내고 있으며, 단편영화에도 참여하는 등 전방위적 음악가로서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상업영화 음악감독으로는 ‘안시성’(감독 김광식, 2018)으로 데뷔해 544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데 일조했다. 노래곡과 영화음악은 완전히 다른 공정으로 만들어짐에도 불구하고 윤일상 감독은 데뷔작부터 남다른 퍼포먼스를 보여주면서 그의 비범한 음악적 재능과 센스를 계속 입증하고 있다. 대부분의 영화나 드라마 작곡가들이 팀으로 일하는데 반해, 작곡부터 믹싱까지 혼자 해결하는 작업 방식도 놀랍다.
‘범죄도시 4’의 음악이 인상적이었다면, 디즈니 플러스의 오리지널 시리즈, ‘카지노’(연출 강윤성, 2022)의 음악도 다시 들어보시길 권한다. 이미 좋은 평가가 많았던 인트로 음악 뿐 아니라 장면마다의 분위기를 뒷받침하고 고조시키는데 사용된 90여곡의 음악들이 하나하나 얼마나 공들여 만들어졌는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영화, ‘미지수’
독립영화계에서 잔뼈가 굵은 이돈구 감독이 신작을 냈다. 그가 300만원으로 만든 첫 장편 데뷔작, ‘가시꽃’(2012)은 베를린영화제에 초대되어 영화는 돈이 아니라 이야기로 말한다는 사실을 새삼 곱씹게 하기도 했다. 물론, 그 다음 작품은 100배 이상의 예산으로 김영애, 도지원, 송일국 등 중견 배우들을 캐스팅해 만들 수 있었고(‘현기증’), 재작년에는 손현주 배우가 주연을 맡은 ‘봄날’이 개봉되기도 했다. ‘미지수’는 벌써 데뷔 10년이 넘은 이돈구 감독의 다섯 번째 장편이자 첫 멜로 영화다.
다섯 번째 장편이라면 이제 기성 감독의 냄새가 풍길 만도 한데, ‘미지수’에는 그런 게 없다. 신인 감독이 찍어 놓은 것처럼 다소 어설프게 느껴지는 신들도 보인다. 오히려 ‘현기증’(2014)이나 ‘봄날’이 더 매끄러웠던 걸 보면 의도한 느낌도 있다. 그런게 아니라면 첫 멜로드라마라는 부담감 때문이었을까, 애초에 이 장르가 감독과는 잘 맞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런데 이 영화가 멜로드라마가 맞기는 한걸까. 이 69분짜리 영화를 보는 동안 떠오르는 단상들은 영화의 구조만큼이나 계속 꼬이고 헝클어진다. 영화가 시작한 지 50분이 지날 때까지 ‘미지수’에는 연인은 등장하지만 연인에 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다시 말해, 영화의 중심에는 그들의 로맨스가 아니라 현실과 환상의 중간계쯤에서 일어난 듯한 사고와 죽음이 놓여 있다. 그리고 또 다른 공간에서는 이들과 무슨 관계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치킨집 부부가 등장한다. 아내는 비만 오면 배달 사고 걱정으로 히스테릭해지는 남편 때문에 골머리를 썩는다. 남편에게 심각한 트라우마가 있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지만 영화는 끝나기 20분 전까지 별다른 단서를 주지 않고 두 부부의 갈등만 묘사한다. 작은 실마리가 있다면 연인 중 남자의 이름이 ‘우주’고, 남편이 우주 발사체 소식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네 사람과 두 개의 플롯을 연결시킬지 미지수로 진행되던 영화는 결말부에서 이들을 꽤 자연스럽게 봉합시키며 진한 감정을 끌어내는데 성공한다. 치킨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던 우주는 비가 많이 오던 날 배달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그의 연인이었던 ‘지수’와 치킨집 부부, 그리고 우주의 엄마는 마음 속에서 우주를 완전히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위성 사진과 달리 붉은 빛이 강한 우주를 배경으로 우주인 한 명이 외롭게 떠다니는 영상이 오프닝을 비롯해 여러 번 삽입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미지수의 우주를 묘사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순식간에 최루성 멜로드라마가 된다. 그러나 불의의 사고와 남겨진 사람들의 죄책감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해석은 계속 확장될 수 있다. 그러므로 영화가 다소 헐겁다는 느낌이 들었던 이유는 영화 전체가 스스로 명확하게 규정되기를 망설이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로맨스 자체 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과 기억이라는 보다 광범위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감독의 의지가 잘 보일 때까지, ‘미지수’는 끝나지 않는 영화다.
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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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007’이나 ‘미션 임파서블’에는 있고, 이 영화에는 아직 없는 게 있으니, 바로 메인 테마 곡이다. 악당을 때려눕히는 마석도(마동석)의 강펀치가 시원한 타격감으로 관객들을 흥분시킬 때, 흘러나와야 할 친숙한 음악이 진작 있어야 했다. 그런데 ‘범죄도시4’에 드디어 그런 음악으로 기대할 만한 스코어가 등장했다. 영화의 마지막 액션 신에서 마석도가 두 명의 악당을 때려잡느라 일등석을 초토화시킬 때 나왔던 ‘파이널 퍼니쉬먼트’(final Punishment)는 강한 비트의 드럼에 일렉트릭 기타의 멜로디가 소리지르듯 얹히면서 귀에 강렬하게 박히는 곡이다. ‘범죄도시4’의 음악을 담당한 윤일상 감독은 김범수의 ‘보고싶다’, 이은미의 ‘애인 있어요’ 등 인기가요를 다수 만들어온 대중음악 작곡가로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본인의 밴드를 만들어 음반도 내고 있으며, 단편영화에도 참여하는 등 전방위적 음악가로서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상업영화 음악감독으로는 ‘안시성’(감독 김광식, 2018)으로 데뷔해 544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데 일조했다. 노래곡과 영화음악은 완전히 다른 공정으로 만들어짐에도 불구하고 윤일상 감독은 데뷔작부터 남다른 퍼포먼스를 보여주면서 그의 비범한 음악적 재능과 센스를 계속 입증하고 있다. 대부분의 영화나 드라마 작곡가들이 팀으로 일하는데 반해, 작곡부터 믹싱까지 혼자 해결하는 작업 방식도 놀랍다.
‘범죄도시 4’의 음악이 인상적이었다면, 디즈니 플러스의 오리지널 시리즈, ‘카지노’(연출 강윤성, 2022)의 음악도 다시 들어보시길 권한다. 이미 좋은 평가가 많았던 인트로 음악 뿐 아니라 장면마다의 분위기를 뒷받침하고 고조시키는데 사용된 90여곡의 음악들이 하나하나 얼마나 공들여 만들어졌는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영화, ‘미지수’
독립영화계에서 잔뼈가 굵은 이돈구 감독이 신작을 냈다. 그가 300만원으로 만든 첫 장편 데뷔작, ‘가시꽃’(2012)은 베를린영화제에 초대되어 영화는 돈이 아니라 이야기로 말한다는 사실을 새삼 곱씹게 하기도 했다. 물론, 그 다음 작품은 100배 이상의 예산으로 김영애, 도지원, 송일국 등 중견 배우들을 캐스팅해 만들 수 있었고(‘현기증’), 재작년에는 손현주 배우가 주연을 맡은 ‘봄날’이 개봉되기도 했다. ‘미지수’는 벌써 데뷔 10년이 넘은 이돈구 감독의 다섯 번째 장편이자 첫 멜로 영화다.
다섯 번째 장편이라면 이제 기성 감독의 냄새가 풍길 만도 한데, ‘미지수’에는 그런 게 없다. 신인 감독이 찍어 놓은 것처럼 다소 어설프게 느껴지는 신들도 보인다. 오히려 ‘현기증’(2014)이나 ‘봄날’이 더 매끄러웠던 걸 보면 의도한 느낌도 있다. 그런게 아니라면 첫 멜로드라마라는 부담감 때문이었을까, 애초에 이 장르가 감독과는 잘 맞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런데 이 영화가 멜로드라마가 맞기는 한걸까. 이 69분짜리 영화를 보는 동안 떠오르는 단상들은 영화의 구조만큼이나 계속 꼬이고 헝클어진다. 영화가 시작한 지 50분이 지날 때까지 ‘미지수’에는 연인은 등장하지만 연인에 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다시 말해, 영화의 중심에는 그들의 로맨스가 아니라 현실과 환상의 중간계쯤에서 일어난 듯한 사고와 죽음이 놓여 있다. 그리고 또 다른 공간에서는 이들과 무슨 관계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치킨집 부부가 등장한다. 아내는 비만 오면 배달 사고 걱정으로 히스테릭해지는 남편 때문에 골머리를 썩는다. 남편에게 심각한 트라우마가 있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지만 영화는 끝나기 20분 전까지 별다른 단서를 주지 않고 두 부부의 갈등만 묘사한다. 작은 실마리가 있다면 연인 중 남자의 이름이 ‘우주’고, 남편이 우주 발사체 소식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네 사람과 두 개의 플롯을 연결시킬지 미지수로 진행되던 영화는 결말부에서 이들을 꽤 자연스럽게 봉합시키며 진한 감정을 끌어내는데 성공한다. 치킨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던 우주는 비가 많이 오던 날 배달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그의 연인이었던 ‘지수’와 치킨집 부부, 그리고 우주의 엄마는 마음 속에서 우주를 완전히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위성 사진과 달리 붉은 빛이 강한 우주를 배경으로 우주인 한 명이 외롭게 떠다니는 영상이 오프닝을 비롯해 여러 번 삽입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미지수의 우주를 묘사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순식간에 최루성 멜로드라마가 된다. 그러나 불의의 사고와 남겨진 사람들의 죄책감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해석은 계속 확장될 수 있다. 그러므로 영화가 다소 헐겁다는 느낌이 들었던 이유는 영화 전체가 스스로 명확하게 규정되기를 망설이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로맨스 자체 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과 기억이라는 보다 광범위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감독의 의지가 잘 보일 때까지, ‘미지수’는 끝나지 않는 영화다.
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