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완성한 현실 동화, ‘웡카’
![]() |
어릴 적, 로알드 달 원작의 ‘찰리와 초콜릿공장’을 읽어 본 사람들이라면 평생 그 상상력을 잊지 못할 것이다. 로알드 달이 창조한 공장은 온갖 신기한 초콜릿과 사탕들이 만들어지는 곳으로, 괴짜 공장장 윌리 웡카와 팔뚝 크기만한 움파룸파족을 만날 수 있는 환상의 세계다. 영화로도 여러 차례 만들어졌는데, 팀 버튼 감독이 연출하고 조니 뎁이 주연을 맡았던 2005년작이 가장 유명하다. 지난 1월 말에 개봉해 33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길게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웡카’(감독 폴 킹)는 원작에 없는 윌리 웡카의 전사(前史)를 창작해 뮤지컬로 구현한 작품이다. 팀 버튼 감독의 영화와도 내용상 이어지는 부분이 거의 없는, 동화 ‘찰리와 초콜릿공장’의 프리퀄이라고 할 수 있다.
웡카는 고아에 빈털터리지만 누구나 반하지 않고는 못 배길 초콜릿을 만들 수 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그는 디저트의 성지인 ‘달콤 백화점’에 자신만의 초콜릿 가게를 열기로 한다. 그러나 사기꾼들에게 휘말려 하룻밤에 빚이 산더미처럼 불어나고, 기성 초콜릿 기업가들이 공무원까지 매수해 가며 웡카의 일에 훼방을 놓자 그는 위기에 빠지고 만다. 그럼에도 늘 긍정적이고 밝은 웡카는 포기하지 않고 꿈을 이룰 방도를 찾아낸다. 동화책을 펼쳐놓은 듯 아기자기한 마을과 뮤지컬 넘버들이 잘 어우러지며 젊은 웡카의 파란만장한 창업 스토리를 완성시킨다.
음악을 맡은 조비 탈보트는 코미디 음악에 일가견이 있는 작곡가로, 깨알 같은 유머부터 블랙코미디까지 ‘웡카’의 다양한 상황들과 그에 따른 인물들의 감정을 음악으로써 탄탄하게 뒷받침해냈다. 특히, 기존의 웡카 캐릭터와 달리 ‘웡카’의 웡카는 순박하고 때묻지 않은 청년이기 때문에 그가 부르는 노래들은 클래식한 코드 진행을 기본으로 하되 현대 악기를 섞어 편곡한 점이 눈에 띈다. 티모시 샬라메의 소년미, 달콤한 목소리와 잘 어울리는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잘 알려진 노래는 중독성 강한 ‘움파룸파 송’일 것이다. 이 노래는 사실 1971년 ‘윌리 웡카와 초콜릿 공장’(감독 멜 스튜어트)의 움파룸파 노래 후렴구의 가사와 멜로디를 활용한 곡인데, 단순한 리듬과 멜로디 때문에 한 번만 들어도 쉽게 따라부를 수 있어 어린 관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출연 분량은 적지만 그 노래를 부르는 휴 그랜트의 코믹한 모습도 티모시 샬라메의 꿈꾸는 듯한 미소만큼이나 인상적이었던 것만큼은 확실하다. 어떤 노래든 한 편의 영화를 오랫동안 기억하게 해준다면 제 몫을 해낸 것이 아닐까.
윤성은의 Pick 무비
현생은 다음 생의 전생, ‘패스트 라이브즈’
![]() |
아카데미 시상식 시즌이 되면서 그간 국내에 개봉되지 않고 있던 후보작들이 하나, 둘 베일을 벗고 있다. ‘기생충’(감독 봉준호, 2019)의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 후, 윤여정 배우가 ‘미나리’(감독 정이삭, 2020)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면서 한국인들에게 아카데미 시상식은 심리적으로 한층 가까워졌다. 그러나 재작년과 작년의 후보작 리스트에서 우리 영화나 영화인들은 찾을 수 없었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2021)이 국제장편영화상 후보에도 오르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할리우드 내부에서도 충격적이라는 반응이 있었지만, 아카데미의 벽이 높다는 사실만 확인했을 뿐이다.
그러나 올해는 한국계 감독들이 두 명이나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라 있다. ‘패스트 라이브즈’(2023)의 셀린 송 감독과 ‘엘리멘탈’(2023)의 피터 손 감독이 그 주인공들이다. ‘엘리멘탈’은 작년 6월에 개봉해 723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바 있지만, ‘패스트 라이브즈’의 한국 개봉은 상당히 늦은 편이다. 작년 초, 선댄스 영화제에서 최초 공개되었을 때부터 극찬을 받은 데다 유럽과 아시아권 몇몇 나라들에서는 이미 개봉했기 때문에 국내 영화팬들의 호기심은 극에 달할 수밖에 없었다. 아카데미 시상식을 코 앞에 두고서야(3월6일 개봉) 극장에 걸린 ‘패스트 라이브즈’는 하나로 규정하기 어려운, 오묘한 빛깔을 가진 영화다.
12살의 ‘해성’(유태오)과 ‘나영’(그레타 리)은 단짝 친구이자 서로의 첫사랑이었다. 그러나 나영의 부모님이 캐나다로의 이민을 결정하면서 두 사람은 기약 없이 헤어지고 만다. 12년 후, 나영은 SNS를 통해 해성이 자신을 찾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에게 메시지를 남긴다. 그 때부터 이들은 자주 영상통화를 하며 서로에 대한 감정을 키운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의 물리적 거리와 현실을 먼저 직시한 나영이 목표에 집중하기 위해 잠시 연락을 끊자고 제안하고, 이들의 관계는 다시 긴 공백기를 맞이한다. 그렇게 또 한 번의 12년이 흐른 어느 날, 해성은 나영을 만나러 뉴욕으로 간다. 나영이 7년 전에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녀와의 재회는 해성의 인생에서 한 번쯤 꼭 필요한 도발이었던 것이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같은 동네에서 자랐던 두 사람이 다른 공간과 문화에 놓이게 되면서 걷게 되는 사뭇 다른 인생을 보여준다. 해성은 군대에 갔다 왔고 대학을 졸업한 후 취업을 했고 아직 부모님과 살고 있다. 노라라는 새 이름이 생긴 나영은 혼자 뉴욕에 정착해 작가 에이전시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을 한다. 서로에 대한 애틋한 마음과 뭔지 모를 아쉬움 이외에 그들이 공유할 수 있는 것은 인연과 전생(past lives)에 대한 관념 뿐이다. 헤어지기 직전에 두 사람은 그들의 관계와 감정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눈다. 나영, 아니 노라의 남편을 바로 옆에 두고 나눈 그 대화가 아슬아슬하면서도 기어이 선을 넘지 못하는 것은 그들 사이에 떨어져 있었던 시간만큼이나 커다란 간극이 있음을 둘 다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성도 노라도 자신이 행복하다는 확신을 갖지 못하는 이유가 첫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아서라고 믿을 정도로 순진하지는 않다.
그러니 할리우드 영화인들에게 어쩌면 이 영화는 MZ세대 버전의 ‘카사블랑카’(감독 마이클 커티즈, 1942)나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1995)로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감히 멜로드라마의 고전들을 복기시킬 만큼 셀린 송 감독은 세련된 감수성으로 세 남녀의 복잡미묘한 시선을 잘 포착해냈다. 8천 겹의 인연이 현생을 결정하는 것처럼, 단선적으로 보이는 내러티브 안에는 여러 층위가 있어 다양한 해석도 가능하다. 아카데미상 수상여부와 관계없이 서정적인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추천하고픈 작품이다.
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윤성은의
인기기사 | 더보기 + |
1 | 코아스템켐온, 루게릭병 신약후보 ‘뉴로나타-알’ 3상 바이오마커 추가 결과 발표 |
2 | 파미셀, 수익성 지표 꾸준히 '우상향'…전년 순이익 63억원 |
3 | 파마리서치바이오,지난해 영업익 매출액 '3/1' 육박 |
4 | 코오롱생명과학, 지난해 순손실 931억원…수익성 회복 '당면 과제' |
5 | 네오켄바이오, 의료용 대마 스타트업 분야 글로벌 9위-아태지역 2위 선정 |
6 | 휴마시스 “ 허위사실 유포 등 법적 대응” |
7 | 다임바이오,120억 규모 시리즈A 투자유치..“항암제•뇌질환 치료제 개발 속도” |
8 | 대원제약, '2025 대한민국 채용박람회‘서 인재 모집 |
9 | 동화약품-다케다, 덱실란트‧란스톤LFDT 국내 독점유통 계약 체결 |
10 | 앱클론,'HLX22' 미국 FDA 3상 진행 중 희귀의약품 지정 |
인터뷰 | 더보기 + |
PEOPLE | 더보기 + |
컬쳐/클래시그널 | 더보기 + |
음악으로 완성한 현실 동화, ‘웡카’
![]() |
어릴 적, 로알드 달 원작의 ‘찰리와 초콜릿공장’을 읽어 본 사람들이라면 평생 그 상상력을 잊지 못할 것이다. 로알드 달이 창조한 공장은 온갖 신기한 초콜릿과 사탕들이 만들어지는 곳으로, 괴짜 공장장 윌리 웡카와 팔뚝 크기만한 움파룸파족을 만날 수 있는 환상의 세계다. 영화로도 여러 차례 만들어졌는데, 팀 버튼 감독이 연출하고 조니 뎁이 주연을 맡았던 2005년작이 가장 유명하다. 지난 1월 말에 개봉해 33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길게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웡카’(감독 폴 킹)는 원작에 없는 윌리 웡카의 전사(前史)를 창작해 뮤지컬로 구현한 작품이다. 팀 버튼 감독의 영화와도 내용상 이어지는 부분이 거의 없는, 동화 ‘찰리와 초콜릿공장’의 프리퀄이라고 할 수 있다.
웡카는 고아에 빈털터리지만 누구나 반하지 않고는 못 배길 초콜릿을 만들 수 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그는 디저트의 성지인 ‘달콤 백화점’에 자신만의 초콜릿 가게를 열기로 한다. 그러나 사기꾼들에게 휘말려 하룻밤에 빚이 산더미처럼 불어나고, 기성 초콜릿 기업가들이 공무원까지 매수해 가며 웡카의 일에 훼방을 놓자 그는 위기에 빠지고 만다. 그럼에도 늘 긍정적이고 밝은 웡카는 포기하지 않고 꿈을 이룰 방도를 찾아낸다. 동화책을 펼쳐놓은 듯 아기자기한 마을과 뮤지컬 넘버들이 잘 어우러지며 젊은 웡카의 파란만장한 창업 스토리를 완성시킨다.
음악을 맡은 조비 탈보트는 코미디 음악에 일가견이 있는 작곡가로, 깨알 같은 유머부터 블랙코미디까지 ‘웡카’의 다양한 상황들과 그에 따른 인물들의 감정을 음악으로써 탄탄하게 뒷받침해냈다. 특히, 기존의 웡카 캐릭터와 달리 ‘웡카’의 웡카는 순박하고 때묻지 않은 청년이기 때문에 그가 부르는 노래들은 클래식한 코드 진행을 기본으로 하되 현대 악기를 섞어 편곡한 점이 눈에 띈다. 티모시 샬라메의 소년미, 달콤한 목소리와 잘 어울리는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잘 알려진 노래는 중독성 강한 ‘움파룸파 송’일 것이다. 이 노래는 사실 1971년 ‘윌리 웡카와 초콜릿 공장’(감독 멜 스튜어트)의 움파룸파 노래 후렴구의 가사와 멜로디를 활용한 곡인데, 단순한 리듬과 멜로디 때문에 한 번만 들어도 쉽게 따라부를 수 있어 어린 관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출연 분량은 적지만 그 노래를 부르는 휴 그랜트의 코믹한 모습도 티모시 샬라메의 꿈꾸는 듯한 미소만큼이나 인상적이었던 것만큼은 확실하다. 어떤 노래든 한 편의 영화를 오랫동안 기억하게 해준다면 제 몫을 해낸 것이 아닐까.
윤성은의 Pick 무비
현생은 다음 생의 전생, ‘패스트 라이브즈’
![]() |
아카데미 시상식 시즌이 되면서 그간 국내에 개봉되지 않고 있던 후보작들이 하나, 둘 베일을 벗고 있다. ‘기생충’(감독 봉준호, 2019)의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 후, 윤여정 배우가 ‘미나리’(감독 정이삭, 2020)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면서 한국인들에게 아카데미 시상식은 심리적으로 한층 가까워졌다. 그러나 재작년과 작년의 후보작 리스트에서 우리 영화나 영화인들은 찾을 수 없었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2021)이 국제장편영화상 후보에도 오르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할리우드 내부에서도 충격적이라는 반응이 있었지만, 아카데미의 벽이 높다는 사실만 확인했을 뿐이다.
그러나 올해는 한국계 감독들이 두 명이나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라 있다. ‘패스트 라이브즈’(2023)의 셀린 송 감독과 ‘엘리멘탈’(2023)의 피터 손 감독이 그 주인공들이다. ‘엘리멘탈’은 작년 6월에 개봉해 723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바 있지만, ‘패스트 라이브즈’의 한국 개봉은 상당히 늦은 편이다. 작년 초, 선댄스 영화제에서 최초 공개되었을 때부터 극찬을 받은 데다 유럽과 아시아권 몇몇 나라들에서는 이미 개봉했기 때문에 국내 영화팬들의 호기심은 극에 달할 수밖에 없었다. 아카데미 시상식을 코 앞에 두고서야(3월6일 개봉) 극장에 걸린 ‘패스트 라이브즈’는 하나로 규정하기 어려운, 오묘한 빛깔을 가진 영화다.
12살의 ‘해성’(유태오)과 ‘나영’(그레타 리)은 단짝 친구이자 서로의 첫사랑이었다. 그러나 나영의 부모님이 캐나다로의 이민을 결정하면서 두 사람은 기약 없이 헤어지고 만다. 12년 후, 나영은 SNS를 통해 해성이 자신을 찾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에게 메시지를 남긴다. 그 때부터 이들은 자주 영상통화를 하며 서로에 대한 감정을 키운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의 물리적 거리와 현실을 먼저 직시한 나영이 목표에 집중하기 위해 잠시 연락을 끊자고 제안하고, 이들의 관계는 다시 긴 공백기를 맞이한다. 그렇게 또 한 번의 12년이 흐른 어느 날, 해성은 나영을 만나러 뉴욕으로 간다. 나영이 7년 전에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녀와의 재회는 해성의 인생에서 한 번쯤 꼭 필요한 도발이었던 것이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같은 동네에서 자랐던 두 사람이 다른 공간과 문화에 놓이게 되면서 걷게 되는 사뭇 다른 인생을 보여준다. 해성은 군대에 갔다 왔고 대학을 졸업한 후 취업을 했고 아직 부모님과 살고 있다. 노라라는 새 이름이 생긴 나영은 혼자 뉴욕에 정착해 작가 에이전시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을 한다. 서로에 대한 애틋한 마음과 뭔지 모를 아쉬움 이외에 그들이 공유할 수 있는 것은 인연과 전생(past lives)에 대한 관념 뿐이다. 헤어지기 직전에 두 사람은 그들의 관계와 감정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눈다. 나영, 아니 노라의 남편을 바로 옆에 두고 나눈 그 대화가 아슬아슬하면서도 기어이 선을 넘지 못하는 것은 그들 사이에 떨어져 있었던 시간만큼이나 커다란 간극이 있음을 둘 다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성도 노라도 자신이 행복하다는 확신을 갖지 못하는 이유가 첫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아서라고 믿을 정도로 순진하지는 않다.
그러니 할리우드 영화인들에게 어쩌면 이 영화는 MZ세대 버전의 ‘카사블랑카’(감독 마이클 커티즈, 1942)나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1995)로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감히 멜로드라마의 고전들을 복기시킬 만큼 셀린 송 감독은 세련된 감수성으로 세 남녀의 복잡미묘한 시선을 잘 포착해냈다. 8천 겹의 인연이 현생을 결정하는 것처럼, 단선적으로 보이는 내러티브 안에는 여러 층위가 있어 다양한 해석도 가능하다. 아카데미상 수상여부와 관계없이 서정적인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추천하고픈 작품이다.
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윤성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