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리히터의 음악과 만난 무라카미 하루키
현재 클래식의 연금술사로 불리며 현대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로 슈퍼스타급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막스 리히터.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한 클래식이라는 '비발디 사계'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비발디 사계 리콤포즈드>가 2012년 앨범으로 발매되어 22개국 클래식 차트 1위를 석권하며 막스 리히터라는 이름을 클래식계에 확실히 각인시켰다. 루핑, 리듬의 변칙적 구성 등 비발디 사계 리콤포즈드에 담긴 참신한 작곡 기법 외에 그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중요한 작곡 기법이 있는데 낭독조의 육성과 현악 체임버 사운드를 결합한 것이다. 가디언지가 선정한 '21세기 최고의 클래식 앨범'으로 잘 알려진 <The Blue Notebooks> 속에 실존주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를 낭독하는 여배우 틸다 스윈튼의 목소리, 9번째 앨범<Voices> 속에 등장하는 세계인권선언문에 등장하는 다양한 언어의 목소리들. 막스 리히터 특유의 일렉트로닉 요소들이 가미된 현악 앙상블과 조화를 이루며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육성과 음악을 조합시킨 작곡 기법으로 궤를 함께하는 음반으로서 비교적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앨범이 하나 있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텍스트를 담은 그의 세 번째 앨범으로 타이틀은 <Songs from before>. 하루키의 세계관을 닮은 막스 리히터의 면모가 엿보이는 음반이다.
영국 작곡가 막스 리히터와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연결고리가 선뜻 와 닿지 않을 수 있는데 막스 리히터는 평소에 지인들로부터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정보를 많이 접했다고 한다. 마침 막스 리히터가 공연차 일본을 방문했을 때 하루키의 소설책 하나를 구입하는데 그 책의 제목이 하루키의 대표작 <노르웨이의 숲>이다. 하루키와의 첫 만남인 셈. 막스 리히터는 한 인터뷰에서 "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하루키의 세계관에 반했으며 자신에게 영감을 주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해변의 카프카, 스푸트니크의 연인, 1Q84 등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들을 하나씩 탐구해 나아갔는데, 막스 리히터의 미니멀리즘에 대한 안목이 있다면 하루키의 문학이 막스 리히터가 추구하는 음악과 정서에 부합한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하루키 특유의 문체는 소박하지만 강렬하게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다는 점이 포스트 미니멀리스트 막스 리히터의 음악과 매우 닮아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 우아하지만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으며 작은 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하루키의 철학이 와닿는다"라고 했다. "현재의 문화 트렌드는 '더 큰 스케일, 더 큰 소리, 더 많이'로 요약될 수 있는데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덧붙임과 함께.
세 번째 음반 <Song from before>에서 그는 노르웨이의 숲, 태엽 감는 새 연대기 등 하루키의 소설에서 텍스트를 추출하여 음악 속에 배치했고, 막스 리히터와 절친한 뮤지션이었던 로버트 와이엇이 낭독을 맡았다. 영국 주요 평단으로 부터 영국배우 틸다 스윈튼이 참여했던 <The Blue Notebooks>의 작곡 양식을 이어받아 텍스트와 음악이 조화롭다는 호평을 받았는데 특히 절제된 구성 속에 음악적 긴장감을 유도하는 서사적 흐름이 놀랍다.
예를 들어 두번째 트랙 'Flowers for Yulia'의 도입부는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는 라디오 노이즈 효과음을 바탕으로 하루키의 소설 <댄스 댄스 댄스>의 텍스트가 낭독된다. "I'd venture into the city with the first gray of dawn and...". 텍스트가 묘사하는 동틀 무렵 도시 속의 적막한 기운이 일렉트로닉 사운드로 묘사되고 있고 이어 등장하는 다소 스산한 바이올린의 고음(高音)이 텀을 두고 반복을 거듭하며 몰입감을 더하는데 멀리 비현실적으로 들렸던 사운드가 말미에 바로 앞에서 실연으로 들리듯 선명한 사운드로 전환되는 효과가 압권이다.
하루키의 대표적인 세계관인 비현실과 현실의 '모호함'이 음악 속에 드러난 게 아닐까. 음악과 텍스트 낭독의 조합은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작곡 양식이지만 소박함 속에 거장다움이 서린 창작물을 내놓는 두 창작자의 닮은꼴이 앨범 <Song from before> 속의 음악에 특별함을 더한다. 분야를 막론하고 끊임없이 동시대 문화와 소통하며 시류를 반영하여 작품 속에 녹여내는 막스 리히터의 행보에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한다.
<필자소개>
아드리엘 김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와 바이올린을 전공, 졸업(석사)했으며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 부지휘자와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역임한바 있다, 현재는 지휘자, 작곡가,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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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리히터의 음악과 만난 무라카미 하루키
현재 클래식의 연금술사로 불리며 현대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로 슈퍼스타급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막스 리히터.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한 클래식이라는 '비발디 사계'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비발디 사계 리콤포즈드>가 2012년 앨범으로 발매되어 22개국 클래식 차트 1위를 석권하며 막스 리히터라는 이름을 클래식계에 확실히 각인시켰다. 루핑, 리듬의 변칙적 구성 등 비발디 사계 리콤포즈드에 담긴 참신한 작곡 기법 외에 그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중요한 작곡 기법이 있는데 낭독조의 육성과 현악 체임버 사운드를 결합한 것이다. 가디언지가 선정한 '21세기 최고의 클래식 앨범'으로 잘 알려진 <The Blue Notebooks> 속에 실존주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를 낭독하는 여배우 틸다 스윈튼의 목소리, 9번째 앨범<Voices> 속에 등장하는 세계인권선언문에 등장하는 다양한 언어의 목소리들. 막스 리히터 특유의 일렉트로닉 요소들이 가미된 현악 앙상블과 조화를 이루며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육성과 음악을 조합시킨 작곡 기법으로 궤를 함께하는 음반으로서 비교적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앨범이 하나 있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텍스트를 담은 그의 세 번째 앨범으로 타이틀은 <Songs from before>. 하루키의 세계관을 닮은 막스 리히터의 면모가 엿보이는 음반이다.
영국 작곡가 막스 리히터와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연결고리가 선뜻 와 닿지 않을 수 있는데 막스 리히터는 평소에 지인들로부터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정보를 많이 접했다고 한다. 마침 막스 리히터가 공연차 일본을 방문했을 때 하루키의 소설책 하나를 구입하는데 그 책의 제목이 하루키의 대표작 <노르웨이의 숲>이다. 하루키와의 첫 만남인 셈. 막스 리히터는 한 인터뷰에서 "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하루키의 세계관에 반했으며 자신에게 영감을 주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해변의 카프카, 스푸트니크의 연인, 1Q84 등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들을 하나씩 탐구해 나아갔는데, 막스 리히터의 미니멀리즘에 대한 안목이 있다면 하루키의 문학이 막스 리히터가 추구하는 음악과 정서에 부합한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하루키 특유의 문체는 소박하지만 강렬하게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다는 점이 포스트 미니멀리스트 막스 리히터의 음악과 매우 닮아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 우아하지만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으며 작은 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하루키의 철학이 와닿는다"라고 했다. "현재의 문화 트렌드는 '더 큰 스케일, 더 큰 소리, 더 많이'로 요약될 수 있는데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덧붙임과 함께.
세 번째 음반 <Song from before>에서 그는 노르웨이의 숲, 태엽 감는 새 연대기 등 하루키의 소설에서 텍스트를 추출하여 음악 속에 배치했고, 막스 리히터와 절친한 뮤지션이었던 로버트 와이엇이 낭독을 맡았다. 영국 주요 평단으로 부터 영국배우 틸다 스윈튼이 참여했던 <The Blue Notebooks>의 작곡 양식을 이어받아 텍스트와 음악이 조화롭다는 호평을 받았는데 특히 절제된 구성 속에 음악적 긴장감을 유도하는 서사적 흐름이 놀랍다.
예를 들어 두번째 트랙 'Flowers for Yulia'의 도입부는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는 라디오 노이즈 효과음을 바탕으로 하루키의 소설 <댄스 댄스 댄스>의 텍스트가 낭독된다. "I'd venture into the city with the first gray of dawn and...". 텍스트가 묘사하는 동틀 무렵 도시 속의 적막한 기운이 일렉트로닉 사운드로 묘사되고 있고 이어 등장하는 다소 스산한 바이올린의 고음(高音)이 텀을 두고 반복을 거듭하며 몰입감을 더하는데 멀리 비현실적으로 들렸던 사운드가 말미에 바로 앞에서 실연으로 들리듯 선명한 사운드로 전환되는 효과가 압권이다.
하루키의 대표적인 세계관인 비현실과 현실의 '모호함'이 음악 속에 드러난 게 아닐까. 음악과 텍스트 낭독의 조합은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작곡 양식이지만 소박함 속에 거장다움이 서린 창작물을 내놓는 두 창작자의 닮은꼴이 앨범 <Song from before> 속의 음악에 특별함을 더한다. 분야를 막론하고 끊임없이 동시대 문화와 소통하며 시류를 반영하여 작품 속에 녹여내는 막스 리히터의 행보에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한다.
<필자소개>
아드리엘 김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와 바이올린을 전공, 졸업(석사)했으며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 부지휘자와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역임한바 있다, 현재는 지휘자, 작곡가,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