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트의 교향시 3번 <전주곡>에 대하여
빈 국립음대 지휘과를 졸업할 무렵, 빈 신년음악회가 개최되는 무직페라인 황금홀에서 개최될 졸업 연주회의 레퍼토리를 교수님과논의하던 시점이었다. 기대되고 설레는 무대인 만큼 선곡에 각별히 신경 쓸 수밖에. 10분에서 20분 남짓 할당된 시간에 맞는곡을 선곡하는데 리스트의 교향시 3번 '전주곡(Les Preludes)'은 길이도 적당하고 오케스트라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줄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자주 물망에 올랐다. 하지만 교수님들은 그 곡은 되도록 피했으면 한다는 언급을 하셨던 기억이 난다.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이 흐른 후, 이 작품을 공부하게 되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 작품이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러시아 침공시기에 나치 프로파간다 음악으로 쓰였던 것이다.
리스트의 교향시 13개 중에 단연 명곡으로 손꼽히는 교향시 3번 전주곡. 삶과 죽음에 대한 그의 진지한 철학이 녹아있는 이 작품은 리스트 사후, 작곡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나치 선전의 수단으로 전락했으며 종전 이후 금지곡으로 지정되는 수모까지 겪었다. 전쟁의 여파가 아니었다면 현재 교향시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남지 않았을까. 유럽에서는 현재까지도 연주되는 빈도수가 작품의 놀라운 완성도에 비해 높지 않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시벨리우스 등 기라성 같은 후배 작곡가들의 교향시가 압도적으로 많이 연주된다는 건 주지의 사실.
교향곡(Symphony)은 익숙하지만 교향시(Symphonic Poem)라는 개념에 대해 짚어보자. 리스트가 창시한 교향시는 단악장 형태로 주로 회화적·시적 내용을 음악으로 묘사한, 제목이 붙은 표제음악이다. 형식의 구애 없이 표제를 주제 삼아 관념을 악상으로 묘사하는 작곡방식을 따른다. 교향시 3번의 <전주곡>이라는 표제는 프랑스의 시인 라마르틴의 쓴 <시적 명상>에 나오는 시구 한 문장 "인생은 죽음에서 비롯된 미지의 찬가에 대한 전주곡들’에서 발췌했다. 한마디로 우리의 삶이 죽음을 향한 전주곡이라는 것이다.
리스트는 이 작품을 '사랑', ' 시련', ' 안식', '투쟁'이라는 4개의 에피소드로 나누어 구성하여 인생의 여정을 그려냈다. 도입부는 숙연함이 서린 피치카토로 시작하여 전체를 관통하는 '세 음'으로 이루어진 모티브를 제시하고 곧이어 첼로와 호른의 선율이 주도하여 1부의 주제인 사랑을 노래한다.
몰아치는 인생의 격량을 표현한 알레그로 템포의 2부에 이어 목관악기가 목가적 분위기를 자아내고 서서히 현악기와 합을 이루며 축제 분위기로 고조되는 기쁨의 안식을 노래한 3부가 펼쳐진다. 영웅적인 분위기의 4부는 금관 팡파르와 함께 인생의 고난에 굴하지 않고 항거하며 전진하는 인간승리의 위대함을 담은 행진곡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결과적으로 이 교향시의 가장 큰 매력 꼽자면 단악장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각각 주제가 명확한 다악장성을 띄고 있다는 것이다. 20분이 채 안 되는 교향시 안에 4가지 삶의 주제를 서사적으로 풀어낸다는 건 쉽지 않은 과제일 터.
잘못하면 음악이 중구난방으로 부산 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곡가 리스트의 대가다움을 엿볼 수 있는 그의 핵심역량은 오직 '세 음'으로 이루어진 모티브 하나를 사용하여 다양한 선율로 변주해 나가며 곡 전체를 관통하는 통일성을 부여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곡의러닝타임이 길지 않고 군더더기 없는 낭만적인 음악적 서사를 경험해 볼 수 있으니 현대인이 듣기엔 안성맞춤이다.
독일 나치가 러시아 진격을 위한 프로파간다 음악으로 이 작품의 모티브를 사용했다는 사실을 리스트가 안다면 경악할 일이다. 이 작품을 독일 무대에 다시 세운 유태계 지휘자 바렌보임은 "전쟁을 알리는 팡파르로 쓰였던 리스트의 명곡, 교향시 3번 전주곡>의 훼손된 가치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인생에 대한 고찰이 담겨있는 명곡을 전쟁의 선전도구로 둔갑시키는 전쟁. 전쟁은 늘 나쁘다.
* 유튜브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jb2bkVQwtBs
<필자소개>
아드리엘 김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와 바이올린을 전공, 졸업(석사)했으며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 부지휘자와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역임한바 있다, 현재는 지휘자, 작곡가,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인기기사 | 더보기 + |
1 | 제노포커스,김의중-김도연 각자대표 체제 돌입- 상호도 변경 |
2 | 이변 낳은 온라인투표, 젊은 藥心 선택 '권영희'..첫 여성 대한약사회장 '등극' |
3 | 대약-서울-경기 非중앙대 약사회장 포진...'동문 선거' 탈피 |
4 | “그럼에도 CAR-T” 글로벌 기업 철수에도 큐로셀 '림카토주' 주목받는 이유 |
5 | 제약바이오 3Q 누적 해외매출 톱5 삼바∙셀트리온∙한미약품∙SK바이오팜∙GC녹십자 |
6 | 34대 경기도약사회장에 연제덕 당선...득표율 58.3% |
7 | 건보 추진,'더' 탄력받는 비만치료제 ‘GLP-1’..트럼프 행정부 선택은 ? |
8 | 디앤디파마텍 중국 파트너사 살루브리스, 비만치료제 'DD01' 중국 임상 IND 승인 |
9 | 2025 뷰티 시장은 민첩함과의 싸움 |
10 | 엑셀세라퓨틱스, 중국 블루메이지와 면역세포 배지 공급 계약 체결 |
인터뷰 | 더보기 + |
PEOPLE | 더보기 + |
컬쳐/클래시그널 | 더보기 + |
리스트의 교향시 3번 <전주곡>에 대하여
빈 국립음대 지휘과를 졸업할 무렵, 빈 신년음악회가 개최되는 무직페라인 황금홀에서 개최될 졸업 연주회의 레퍼토리를 교수님과논의하던 시점이었다. 기대되고 설레는 무대인 만큼 선곡에 각별히 신경 쓸 수밖에. 10분에서 20분 남짓 할당된 시간에 맞는곡을 선곡하는데 리스트의 교향시 3번 '전주곡(Les Preludes)'은 길이도 적당하고 오케스트라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줄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자주 물망에 올랐다. 하지만 교수님들은 그 곡은 되도록 피했으면 한다는 언급을 하셨던 기억이 난다.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이 흐른 후, 이 작품을 공부하게 되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 작품이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러시아 침공시기에 나치 프로파간다 음악으로 쓰였던 것이다.
리스트의 교향시 13개 중에 단연 명곡으로 손꼽히는 교향시 3번 전주곡. 삶과 죽음에 대한 그의 진지한 철학이 녹아있는 이 작품은 리스트 사후, 작곡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나치 선전의 수단으로 전락했으며 종전 이후 금지곡으로 지정되는 수모까지 겪었다. 전쟁의 여파가 아니었다면 현재 교향시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남지 않았을까. 유럽에서는 현재까지도 연주되는 빈도수가 작품의 놀라운 완성도에 비해 높지 않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시벨리우스 등 기라성 같은 후배 작곡가들의 교향시가 압도적으로 많이 연주된다는 건 주지의 사실.
교향곡(Symphony)은 익숙하지만 교향시(Symphonic Poem)라는 개념에 대해 짚어보자. 리스트가 창시한 교향시는 단악장 형태로 주로 회화적·시적 내용을 음악으로 묘사한, 제목이 붙은 표제음악이다. 형식의 구애 없이 표제를 주제 삼아 관념을 악상으로 묘사하는 작곡방식을 따른다. 교향시 3번의 <전주곡>이라는 표제는 프랑스의 시인 라마르틴의 쓴 <시적 명상>에 나오는 시구 한 문장 "인생은 죽음에서 비롯된 미지의 찬가에 대한 전주곡들’에서 발췌했다. 한마디로 우리의 삶이 죽음을 향한 전주곡이라는 것이다.
리스트는 이 작품을 '사랑', ' 시련', ' 안식', '투쟁'이라는 4개의 에피소드로 나누어 구성하여 인생의 여정을 그려냈다. 도입부는 숙연함이 서린 피치카토로 시작하여 전체를 관통하는 '세 음'으로 이루어진 모티브를 제시하고 곧이어 첼로와 호른의 선율이 주도하여 1부의 주제인 사랑을 노래한다.
몰아치는 인생의 격량을 표현한 알레그로 템포의 2부에 이어 목관악기가 목가적 분위기를 자아내고 서서히 현악기와 합을 이루며 축제 분위기로 고조되는 기쁨의 안식을 노래한 3부가 펼쳐진다. 영웅적인 분위기의 4부는 금관 팡파르와 함께 인생의 고난에 굴하지 않고 항거하며 전진하는 인간승리의 위대함을 담은 행진곡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결과적으로 이 교향시의 가장 큰 매력 꼽자면 단악장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각각 주제가 명확한 다악장성을 띄고 있다는 것이다. 20분이 채 안 되는 교향시 안에 4가지 삶의 주제를 서사적으로 풀어낸다는 건 쉽지 않은 과제일 터.
잘못하면 음악이 중구난방으로 부산 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곡가 리스트의 대가다움을 엿볼 수 있는 그의 핵심역량은 오직 '세 음'으로 이루어진 모티브 하나를 사용하여 다양한 선율로 변주해 나가며 곡 전체를 관통하는 통일성을 부여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곡의러닝타임이 길지 않고 군더더기 없는 낭만적인 음악적 서사를 경험해 볼 수 있으니 현대인이 듣기엔 안성맞춤이다.
독일 나치가 러시아 진격을 위한 프로파간다 음악으로 이 작품의 모티브를 사용했다는 사실을 리스트가 안다면 경악할 일이다. 이 작품을 독일 무대에 다시 세운 유태계 지휘자 바렌보임은 "전쟁을 알리는 팡파르로 쓰였던 리스트의 명곡, 교향시 3번 전주곡>의 훼손된 가치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인생에 대한 고찰이 담겨있는 명곡을 전쟁의 선전도구로 둔갑시키는 전쟁. 전쟁은 늘 나쁘다.
* 유튜브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jb2bkVQwtBs
<필자소개>
아드리엘 김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와 바이올린을 전공, 졸업(석사)했으며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 부지휘자와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역임한바 있다, 현재는 지휘자, 작곡가,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