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들려주는 마지막 연주, ‘류이치 사카모토 : 오퍼스’
작년 3월 28일 세상을 떠난 세계적인 음악가, 류이치 사카모토가 연주를 통해 관객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감독 소라 네오)는 암 투병 중이던 그가 자신이 작곡한 곡 중 20곡을 엄선하여 녹음하는 장면을 오롯이 담아낸 다큐멘터리다. 공연 실황과 달리 조명과 카메라, 마이크만 설치된 적막한 스튜디오에서 그는 그랜드 피아노 한 대와 마주해 있다. 피아노 선율뿐 아니라 그의 힘겨운 숨소리, 페달 소리까지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하나의 음악이 된다.
투병기간동안 공연을 거의 갖지 못했던 그는 마지막 연주에 그의 인생을 담았다. 블랙 앤 화이트의 영상 안에서 진중하게 건반 하나하나를 눌러가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클래식 전공자에서 테크노 그룹의 리더로, 영화음악 작곡가로, 실험적 음악을 선보이는 아티스트로 활동하며 쉬지 않고 달려온 거장의 생애가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진다. 원전 반대, 환경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사회 활동가로서의 면모까지 합쳐지면 그의 일대기는 더욱 입체적이 된다.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듯 웅장하게 다가오는 피아노 소리, 그토록 완벽하면서도 따뜻함과 겸손함이 묻어나는 그의 연주에 점점 머리가 숙여진다.
류이치 사카모토가 직접 기획한 이 특별한 콘서트 영상은 일본에서 가장 좋은 소리를 낸다는 스튜디오, NHK 509에서 2022년 9월에 8일 동안 촬영했고, 하루 3곡 정도를 2~3번의 테이크를 거쳐 완성해 냈다. 병마와 사투를 벌이면서도 예술은 인간의 운명을 넘어선다는 진리를 말해주듯 류이치 사카모토는 침착하고 정확하다. 혹자는 그에게 최초의 동양인 아카데미 음악상 수상자라는 타이틀을 안겨주었던 ‘마지막 황제’(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1987)의 ‘레인(Rain)’이 연주 리스트에 없다는 걸 아쉬워할지 모르겠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어쩌면 그는 자신의 음악과 인생이 다큐멘터리 밖에도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아무리 훌륭해도 고작 스무 곡일 뿐이다. 그의 이야기를 하려면 100분의 공연은 짧아도 너무 짧다.
윤성은의 Pick 무비
앞으로의 100년을 향한 디즈니의 첫 작품, ‘위시’
모든 국민들이 행복한 나라가 있다. ‘로사스’ 왕국에 사는 이들은 그들 모두를 만족시킬 만큼 훌륭한 나라를 건설한 ‘매그니피코’왕을 존경하고 있으며, 이곳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도 로사스의 자랑을 멈추지 않는다. 사실, 여기까지만 들어도 뭔가 이상하다. 모든 국민이 행복해하며 사는 나라가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그것도 지도자에 대한 불만 하나 없이? 혹시 아이들용 애니메이션이나 동화 속 나라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오랫동안 보수적인 가치관으로 이상향을 실현시켜 왔던 디즈니사의 작품이라면 어떨까. 놀랍게도 월트 디즈니 컴퍼니에서 100주년을 기념해 만든 ‘위시’(감독 크리스 벅, 폰 비라선손)는 바로 이런 편견에 정면으로 맞선다. 21세기 들어 용감한 왕자가 미인을 차지하는 이야기에서 탈피해 PC주의(Political Correctness)를 추구하는 줄은 알았지만 이처럼 급진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다니, 이 기업의 또 다른 방향성과 가능성을 본 것 같아 앞으로의 행보가 더 기대된다.
매그니피코 왕(크리스 파인)은 열여덟 살이 되는 국민들에게 소원 하나를 받아 비밀의 방에 저장해 둔다. 그리고 왕국의 기념일마다 비눗방울처럼 떠다니며 방을 가득 메우고 있는 그 소원들 중 하나를 이루어준다. 총명하고 용감한 ‘아샤’(아리아나 데보스)는 왕의 비서로 발탁돼 그 방에 들어가는 행운을 얻게 된다. 그러나 아샤는 왕이 선택적으로 꿈을 이루어 준다는 사실, 그 기준은 왕국이나 왕의 존재에 조금이라도 위협이 되지 않는 것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는다. 예쁘게만 보였던 수 많은 꿈방울들은 국민들의 잊혀진 꿈이자 대부분은 이루어지지 않을 꿈이었던 것이다. 그 동안 매그니피코 왕을 동경해왔던 아샤는 태도를 바꿔 그에게 도전장을 낸다. 국민들이 자신의 꿈을 되찾아 각자 이루어 가게 하는 것이 그녀의 목표다. 이른바, ‘꿈의 해방’을 위해 아샤와 그녀의 친구들, 마법의 별 등이 뭉쳐 위험천만한 모험을 감행한다.
소원을 이루어 주는 마녀를 찾아가 그 대가로 목소리를 바쳐야만 했던 인어공주는 ‘위시’에서 소원을 빌고 나면 통치자가 그것을 이루어주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로사스의 국민으로 바뀌어 있다. 그들은 진정 원하던 것이 무엇인지 잊었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살 수 있고, 꿈을 되찾게 해줄 유일한 존재를 찬양한다. ‘위시’는 매그니피코 왕을 전체주의적 통치자와 동일시하면서 그런 왕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민중의 각성과 봉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것은 여성들의 각성이 평등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바비’(감독 그레타 거윅, 2023)의 중심내용과도 상통한다. 이처럼 최근 할리우드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듯한 주제의식도 강렬하지만 100주년 기념작인 만큼 그림체도 음악도 역대급이다. 수 많은 꿈들이 부유하는 신이나 별들이 밤하늘을 밝히는 신은 환상적이고, 어둠의 마법을 쓰는 왕이 타인의 꿈을 하나씩 삼킬 때마다 더 막강한 힘을 갖게 되는 장면은 공포물처럼 연출되었으며, 국민들이 함께 저항하는 장면에서는 감동의 전율이 느껴진다.
동시대에 디즈니사의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어떤 가치관을 갖고 어떤 꿈을 꾸며 살아가게 될까. PC주의의 폐해는 계속 지적되고 있고, 어쩌면 ‘위시’가 말하는 정의도 논쟁적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작품을 보면서 부디 기성세대보다는 기존의 가치관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며, 보다 열린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소망한다.
<필자소개>
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
삶을 들려주는 마지막 연주, ‘류이치 사카모토 : 오퍼스’
작년 3월 28일 세상을 떠난 세계적인 음악가, 류이치 사카모토가 연주를 통해 관객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감독 소라 네오)는 암 투병 중이던 그가 자신이 작곡한 곡 중 20곡을 엄선하여 녹음하는 장면을 오롯이 담아낸 다큐멘터리다. 공연 실황과 달리 조명과 카메라, 마이크만 설치된 적막한 스튜디오에서 그는 그랜드 피아노 한 대와 마주해 있다. 피아노 선율뿐 아니라 그의 힘겨운 숨소리, 페달 소리까지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하나의 음악이 된다.
투병기간동안 공연을 거의 갖지 못했던 그는 마지막 연주에 그의 인생을 담았다. 블랙 앤 화이트의 영상 안에서 진중하게 건반 하나하나를 눌러가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클래식 전공자에서 테크노 그룹의 리더로, 영화음악 작곡가로, 실험적 음악을 선보이는 아티스트로 활동하며 쉬지 않고 달려온 거장의 생애가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진다. 원전 반대, 환경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사회 활동가로서의 면모까지 합쳐지면 그의 일대기는 더욱 입체적이 된다.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듯 웅장하게 다가오는 피아노 소리, 그토록 완벽하면서도 따뜻함과 겸손함이 묻어나는 그의 연주에 점점 머리가 숙여진다.
류이치 사카모토가 직접 기획한 이 특별한 콘서트 영상은 일본에서 가장 좋은 소리를 낸다는 스튜디오, NHK 509에서 2022년 9월에 8일 동안 촬영했고, 하루 3곡 정도를 2~3번의 테이크를 거쳐 완성해 냈다. 병마와 사투를 벌이면서도 예술은 인간의 운명을 넘어선다는 진리를 말해주듯 류이치 사카모토는 침착하고 정확하다. 혹자는 그에게 최초의 동양인 아카데미 음악상 수상자라는 타이틀을 안겨주었던 ‘마지막 황제’(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1987)의 ‘레인(Rain)’이 연주 리스트에 없다는 걸 아쉬워할지 모르겠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어쩌면 그는 자신의 음악과 인생이 다큐멘터리 밖에도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아무리 훌륭해도 고작 스무 곡일 뿐이다. 그의 이야기를 하려면 100분의 공연은 짧아도 너무 짧다.
윤성은의 Pick 무비
앞으로의 100년을 향한 디즈니의 첫 작품, ‘위시’
모든 국민들이 행복한 나라가 있다. ‘로사스’ 왕국에 사는 이들은 그들 모두를 만족시킬 만큼 훌륭한 나라를 건설한 ‘매그니피코’왕을 존경하고 있으며, 이곳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도 로사스의 자랑을 멈추지 않는다. 사실, 여기까지만 들어도 뭔가 이상하다. 모든 국민이 행복해하며 사는 나라가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그것도 지도자에 대한 불만 하나 없이? 혹시 아이들용 애니메이션이나 동화 속 나라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오랫동안 보수적인 가치관으로 이상향을 실현시켜 왔던 디즈니사의 작품이라면 어떨까. 놀랍게도 월트 디즈니 컴퍼니에서 100주년을 기념해 만든 ‘위시’(감독 크리스 벅, 폰 비라선손)는 바로 이런 편견에 정면으로 맞선다. 21세기 들어 용감한 왕자가 미인을 차지하는 이야기에서 탈피해 PC주의(Political Correctness)를 추구하는 줄은 알았지만 이처럼 급진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다니, 이 기업의 또 다른 방향성과 가능성을 본 것 같아 앞으로의 행보가 더 기대된다.
매그니피코 왕(크리스 파인)은 열여덟 살이 되는 국민들에게 소원 하나를 받아 비밀의 방에 저장해 둔다. 그리고 왕국의 기념일마다 비눗방울처럼 떠다니며 방을 가득 메우고 있는 그 소원들 중 하나를 이루어준다. 총명하고 용감한 ‘아샤’(아리아나 데보스)는 왕의 비서로 발탁돼 그 방에 들어가는 행운을 얻게 된다. 그러나 아샤는 왕이 선택적으로 꿈을 이루어 준다는 사실, 그 기준은 왕국이나 왕의 존재에 조금이라도 위협이 되지 않는 것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는다. 예쁘게만 보였던 수 많은 꿈방울들은 국민들의 잊혀진 꿈이자 대부분은 이루어지지 않을 꿈이었던 것이다. 그 동안 매그니피코 왕을 동경해왔던 아샤는 태도를 바꿔 그에게 도전장을 낸다. 국민들이 자신의 꿈을 되찾아 각자 이루어 가게 하는 것이 그녀의 목표다. 이른바, ‘꿈의 해방’을 위해 아샤와 그녀의 친구들, 마법의 별 등이 뭉쳐 위험천만한 모험을 감행한다.
소원을 이루어 주는 마녀를 찾아가 그 대가로 목소리를 바쳐야만 했던 인어공주는 ‘위시’에서 소원을 빌고 나면 통치자가 그것을 이루어주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로사스의 국민으로 바뀌어 있다. 그들은 진정 원하던 것이 무엇인지 잊었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살 수 있고, 꿈을 되찾게 해줄 유일한 존재를 찬양한다. ‘위시’는 매그니피코 왕을 전체주의적 통치자와 동일시하면서 그런 왕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민중의 각성과 봉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것은 여성들의 각성이 평등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바비’(감독 그레타 거윅, 2023)의 중심내용과도 상통한다. 이처럼 최근 할리우드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듯한 주제의식도 강렬하지만 100주년 기념작인 만큼 그림체도 음악도 역대급이다. 수 많은 꿈들이 부유하는 신이나 별들이 밤하늘을 밝히는 신은 환상적이고, 어둠의 마법을 쓰는 왕이 타인의 꿈을 하나씩 삼킬 때마다 더 막강한 힘을 갖게 되는 장면은 공포물처럼 연출되었으며, 국민들이 함께 저항하는 장면에서는 감동의 전율이 느껴진다.
동시대에 디즈니사의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어떤 가치관을 갖고 어떤 꿈을 꾸며 살아가게 될까. PC주의의 폐해는 계속 지적되고 있고, 어쩌면 ‘위시’가 말하는 정의도 논쟁적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작품을 보면서 부디 기성세대보다는 기존의 가치관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며, 보다 열린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소망한다.
<필자소개>
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