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포는 근대 이후 사천군 삼천포면, 사천군 삼천포읍을 거쳐 삼천포시로 승격하였으나 1995년 사천군과 통합되면서 현재의 경상남도 사천시가 되었다. 삼천포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삼천포항, 삼천포대교 그리고 진주삼천포농악에는 옛 지명 ‘삼천포’가 남아있다.
진주삼천포농악의 연희 순서는 1차 오방진풀이, 2차 얼림굿, 3차 덧배기 벅구놀음, 4차 길군악, 5차 영산다드래기, 6차 멋벅구놀음(먹벅구), 7차 등맞이굿, 8차 앉은 벅구놀음, 9차 호호굿놀이(점호굿), 10차 개인 영산놀이, 11차 별굿놀이(별달거리), 12차 흩음굿(허튼굿)까지 이어진다. 12차로 구성되어 문화재 지정 당시 '농악12차'라 이름했던 것을 '진주농악12차', '진주농악'으로 바꾸어 불렀고, 1993년 삼천포에 전수교육관을 지으며 '진주삼천포농악'으로 바뀐 명칭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국가무형문화재를 지정하는 경우 해당 문화재의 보유자 또는 보유단체를 인정해야 한다. 보유자와 보유단체는 해당 문화재의 기능과 예능 등을 전형(典型)대로 체득, 실현하는 주체가 된다. 우리가 흔히 판소리 인간문화재, 서도소리 보유자, 처용무 예능보유자 등으로 부르는 이들이 보유자이며, 사단법인 형태의 보존회들이 보유단체에 속한다. 아리랑처럼 특정 보유자나 보유단체를 인정하지 않는 무형문화재도 있다. 이는 '공동체 종목'이라 부른다.
기․예능을 보유한 보유자나 보유단체 등은 문화재의 보전과 진흥을 위해 전수교육을 실시할 의무가 있다. 이 교육 과정을 수료하고, 심사에 통과해 이수증을 받은 사람을 ‘이수자’로 인정한다. 이수자 중 심의를 거쳐 보유자나 보유단체와 함께 전수교육을 담당하는 사람을 ‘전승교육사’라 한다. ‘전승자’는 이수자와 전승교육사, 보유자 등을 모두 아울러 지칭하는 말이다.
진주삼천포농악으로 바꿔 말하면, 진주삼천포농악의 보유자와 전승교육사, 보유단체인 (사)진주삼천포농악 보존회 등이 주축이 되어 농악을 이어가기 위한 전수교육을 실시하는데 소정의 교육 과정을 수료하고 심사 과정을 거쳐 이수증을 받은 이들이 바로 이수자들이다.
오는 2월 17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는 진주삼천포농악 이수자들의 공연 <늙은 이수자전 – 붉은꽃>이 열릴 예정이다. 이수자들 가운데에서도 만 45세 이상의 중견 예인들이 무대에 선다. 누리집에 공연의 상세 내용은 게재되어 있지 않지만 '농악에 청춘을 불태웠던 지난날로 회귀하여 다시금 그 뜨거웠던 열정과 신명으로 푸진 한 판을 만들어 보려 한다.'고 공연의 목적을 밝히고 있다.
진주삼천포농악은 흰 바지저고리에 행전을 치고, 삼색 띠를 두른다. 참여자 전원이 전립을 쓰고 채상이나 부포를 돌리는 것은 다른 지역 농악과의 차별점이다. 전립은 주로 조선 시대 군사들이 썼던 모자를 가리키는데, 진주에서 전해오는 진주검무, 진주삼천포농악에서 모두 전립을 갖추어 쓴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장단이 빠르고 군악(軍樂)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 점, 연희의 동작이 힘차고 화려한 무예의 동작을 닮았다는 점 역시 왜구의 침입이 잦았던 남해안의 삼천포, 임진왜란 격전지였던 진주의 지정학적 위치와 역사적 맥락을 함께 짚어야 이해할 수 있다.
해가 바뀌었지만 새해 벽두부터 세상은 여전히 전쟁 중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각자 치러야 할 전쟁에 돌입했는지도 모르겠다. 물려받은 가락을 온전히 몸에 새기느라 치열했을, 늙은 이수자들의 공연에 한 자리 끼어 앉아보면 전쟁 같은 삶을 다독이는 법을, 혹은 예술까지는 아니더라도 웃음과 신명으로 승화시키는 법을 조금은 깨닫게 되지는 않을까. 오랜 세월 열정과 신명을 체화한 그들의 푸진 한 판이 점점 궁금해진다.
<필자소개>
김보람 씨는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영상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를 졸업했으며, 국립국악원에서 소식지 국악누리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
삼천포는 근대 이후 사천군 삼천포면, 사천군 삼천포읍을 거쳐 삼천포시로 승격하였으나 1995년 사천군과 통합되면서 현재의 경상남도 사천시가 되었다. 삼천포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삼천포항, 삼천포대교 그리고 진주삼천포농악에는 옛 지명 ‘삼천포’가 남아있다.
진주삼천포농악의 연희 순서는 1차 오방진풀이, 2차 얼림굿, 3차 덧배기 벅구놀음, 4차 길군악, 5차 영산다드래기, 6차 멋벅구놀음(먹벅구), 7차 등맞이굿, 8차 앉은 벅구놀음, 9차 호호굿놀이(점호굿), 10차 개인 영산놀이, 11차 별굿놀이(별달거리), 12차 흩음굿(허튼굿)까지 이어진다. 12차로 구성되어 문화재 지정 당시 '농악12차'라 이름했던 것을 '진주농악12차', '진주농악'으로 바꾸어 불렀고, 1993년 삼천포에 전수교육관을 지으며 '진주삼천포농악'으로 바뀐 명칭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국가무형문화재를 지정하는 경우 해당 문화재의 보유자 또는 보유단체를 인정해야 한다. 보유자와 보유단체는 해당 문화재의 기능과 예능 등을 전형(典型)대로 체득, 실현하는 주체가 된다. 우리가 흔히 판소리 인간문화재, 서도소리 보유자, 처용무 예능보유자 등으로 부르는 이들이 보유자이며, 사단법인 형태의 보존회들이 보유단체에 속한다. 아리랑처럼 특정 보유자나 보유단체를 인정하지 않는 무형문화재도 있다. 이는 '공동체 종목'이라 부른다.
기․예능을 보유한 보유자나 보유단체 등은 문화재의 보전과 진흥을 위해 전수교육을 실시할 의무가 있다. 이 교육 과정을 수료하고, 심사에 통과해 이수증을 받은 사람을 ‘이수자’로 인정한다. 이수자 중 심의를 거쳐 보유자나 보유단체와 함께 전수교육을 담당하는 사람을 ‘전승교육사’라 한다. ‘전승자’는 이수자와 전승교육사, 보유자 등을 모두 아울러 지칭하는 말이다.
진주삼천포농악으로 바꿔 말하면, 진주삼천포농악의 보유자와 전승교육사, 보유단체인 (사)진주삼천포농악 보존회 등이 주축이 되어 농악을 이어가기 위한 전수교육을 실시하는데 소정의 교육 과정을 수료하고 심사 과정을 거쳐 이수증을 받은 이들이 바로 이수자들이다.
오는 2월 17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는 진주삼천포농악 이수자들의 공연 <늙은 이수자전 – 붉은꽃>이 열릴 예정이다. 이수자들 가운데에서도 만 45세 이상의 중견 예인들이 무대에 선다. 누리집에 공연의 상세 내용은 게재되어 있지 않지만 '농악에 청춘을 불태웠던 지난날로 회귀하여 다시금 그 뜨거웠던 열정과 신명으로 푸진 한 판을 만들어 보려 한다.'고 공연의 목적을 밝히고 있다.
진주삼천포농악은 흰 바지저고리에 행전을 치고, 삼색 띠를 두른다. 참여자 전원이 전립을 쓰고 채상이나 부포를 돌리는 것은 다른 지역 농악과의 차별점이다. 전립은 주로 조선 시대 군사들이 썼던 모자를 가리키는데, 진주에서 전해오는 진주검무, 진주삼천포농악에서 모두 전립을 갖추어 쓴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장단이 빠르고 군악(軍樂)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 점, 연희의 동작이 힘차고 화려한 무예의 동작을 닮았다는 점 역시 왜구의 침입이 잦았던 남해안의 삼천포, 임진왜란 격전지였던 진주의 지정학적 위치와 역사적 맥락을 함께 짚어야 이해할 수 있다.
해가 바뀌었지만 새해 벽두부터 세상은 여전히 전쟁 중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각자 치러야 할 전쟁에 돌입했는지도 모르겠다. 물려받은 가락을 온전히 몸에 새기느라 치열했을, 늙은 이수자들의 공연에 한 자리 끼어 앉아보면 전쟁 같은 삶을 다독이는 법을, 혹은 예술까지는 아니더라도 웃음과 신명으로 승화시키는 법을 조금은 깨닫게 되지는 않을까. 오랜 세월 열정과 신명을 체화한 그들의 푸진 한 판이 점점 궁금해진다.
<필자소개>
김보람 씨는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영상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를 졸업했으며, 국립국악원에서 소식지 국악누리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