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는 남녀 구분없이 작곡가라는 타이틀을 걸고 활동하지만 19세기의 여성 작곡가들은 음악활동에 있어 제약이 많았다. 남성 중심의 사회적 통념이 지배적이었던 시대였던 터. 독일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곡가 멘델스존의 누나 '파니 멘델스존'이 대표적인 예다. 어릴 적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괴테의 찬사를 받았던 그녀였지만 아버지로부터 동생의 장래를 위해 음악의 길을 포기하도록 강요받았으며 작품 출판을 금지시키기도 했다. 결국 그녀가 작곡한 가곡집은 동생 펠릭스 멘델스존의 이름으로 출판되기도 했다니 직업인으로서 인정받지 못했던 당시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파니 멘델스존보다 반세기 후에 활동했던 작곡가 샤미나드의 경우는 좀 달랐다. 1857년 파리 출생으로 마찬가지로 '연주 금지령'을 내릴 정도로 완강했던 아버지를 두었던 그녀. 하지만 샤미나드는 반대에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의 길을 고집했고 400여곡에 이르는 방대한 작품을 작곡했으며 대부분이 출판되었다는 사실. 그녀는 결국 프랑스와 영국을 오가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무엇보다도 살롱음악의 대중화에 앞장섰으며 1908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공연으로 미국에서 높은 인기를 구가했고 당시로서는 드물게 글로벌하게 성공을 거둔 작곡가였던 것이다. 1913년에 여성 작곡가 최초로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녀가 소규모의 가곡과 피아노 소품이 주를 이루는 살롱음악에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남성이 좌지우지하던 대규모 콘서트장과 달리 살롱은 여성이 주도적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음악은 섬세한 감성과 우아한 서정성이 돋보인다. 여성취향이라는 세간의 평이 음악적 한계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오히려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성이 공감을 자아내며 대중을 매료시켰다. 당시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그녀의 팬이었을 정도로 프랑스와 영국에 걸쳐 큰 인기를 끌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했다. 샤미나드의 작품을 녹음한 바 있는 메조소프라노 안네 소피 폰 오터는 한 인터뷰에서 "혁신적이진 않지만 높은 퀄리티의 음악으로 뛰어난 악상이 매력적이면서도 자연스럽다"라고 평했다.
아쉽게도 그녀의 작품들은 20세기 중반을 지나 대부분 잊혀졌지만 현재 그녀의 소품 피아노곡과 가곡들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최근 영국의 가디언지는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프랑스 여성 작곡가들을 조명하면서 다시 리사이틀 무대에 오르고 있는 작곡가 샤미나드의 가곡들을 조명한 바 있다. 작곡분야에 있어 남성이 독점하다시피 했던 당시 시대적 한계를 극복해냈던 그녀의 진가는 인정받아 마땅하다.
그녀의 플루트 협주곡 D Major (Flute Concertino in D Op.107)는 샤미나드라는 이름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게 도와준 유일한 작품으로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1902년 파리 음악원 콩쿠르를 위한 작품으로 의뢰를 받아 탄생한 이 곡은 고도의 테크닉을 요하는 곡으로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갖고 있다. 플루티스트였던 남자친구가 자신을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해버리자 복수심을 담아 일부러 연주하기 어렵도록 높은 난이도의 곡을 썼다는 것이다. 현재는 플루티스트들 사이에서 콩쿠르, 입시곡으로 널리 알려진 곡이기도 하다. 10분이 채 안되는 짧은 곡 안에 샤미나드 특유의 다채롭고 우아한 프랑스 감성과 화려한 플루트의 기교가 조화롭게 녹아있는 작품으로 짙어가는 이 가을에 꼭 들어보길 권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Lnr5XD5dj_0
아드리엘 김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와 바이올린을 전공, 졸업(석사)했으며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 부지휘자와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역임한바 있다, 현재는 지휘자, 작곡가,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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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남녀 구분없이 작곡가라는 타이틀을 걸고 활동하지만 19세기의 여성 작곡가들은 음악활동에 있어 제약이 많았다. 남성 중심의 사회적 통념이 지배적이었던 시대였던 터. 독일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곡가 멘델스존의 누나 '파니 멘델스존'이 대표적인 예다. 어릴 적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괴테의 찬사를 받았던 그녀였지만 아버지로부터 동생의 장래를 위해 음악의 길을 포기하도록 강요받았으며 작품 출판을 금지시키기도 했다. 결국 그녀가 작곡한 가곡집은 동생 펠릭스 멘델스존의 이름으로 출판되기도 했다니 직업인으로서 인정받지 못했던 당시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파니 멘델스존보다 반세기 후에 활동했던 작곡가 샤미나드의 경우는 좀 달랐다. 1857년 파리 출생으로 마찬가지로 '연주 금지령'을 내릴 정도로 완강했던 아버지를 두었던 그녀. 하지만 샤미나드는 반대에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의 길을 고집했고 400여곡에 이르는 방대한 작품을 작곡했으며 대부분이 출판되었다는 사실. 그녀는 결국 프랑스와 영국을 오가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무엇보다도 살롱음악의 대중화에 앞장섰으며 1908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공연으로 미국에서 높은 인기를 구가했고 당시로서는 드물게 글로벌하게 성공을 거둔 작곡가였던 것이다. 1913년에 여성 작곡가 최초로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녀가 소규모의 가곡과 피아노 소품이 주를 이루는 살롱음악에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남성이 좌지우지하던 대규모 콘서트장과 달리 살롱은 여성이 주도적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음악은 섬세한 감성과 우아한 서정성이 돋보인다. 여성취향이라는 세간의 평이 음악적 한계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오히려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성이 공감을 자아내며 대중을 매료시켰다. 당시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그녀의 팬이었을 정도로 프랑스와 영국에 걸쳐 큰 인기를 끌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했다. 샤미나드의 작품을 녹음한 바 있는 메조소프라노 안네 소피 폰 오터는 한 인터뷰에서 "혁신적이진 않지만 높은 퀄리티의 음악으로 뛰어난 악상이 매력적이면서도 자연스럽다"라고 평했다.
아쉽게도 그녀의 작품들은 20세기 중반을 지나 대부분 잊혀졌지만 현재 그녀의 소품 피아노곡과 가곡들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최근 영국의 가디언지는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프랑스 여성 작곡가들을 조명하면서 다시 리사이틀 무대에 오르고 있는 작곡가 샤미나드의 가곡들을 조명한 바 있다. 작곡분야에 있어 남성이 독점하다시피 했던 당시 시대적 한계를 극복해냈던 그녀의 진가는 인정받아 마땅하다.
그녀의 플루트 협주곡 D Major (Flute Concertino in D Op.107)는 샤미나드라는 이름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게 도와준 유일한 작품으로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1902년 파리 음악원 콩쿠르를 위한 작품으로 의뢰를 받아 탄생한 이 곡은 고도의 테크닉을 요하는 곡으로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갖고 있다. 플루티스트였던 남자친구가 자신을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해버리자 복수심을 담아 일부러 연주하기 어렵도록 높은 난이도의 곡을 썼다는 것이다. 현재는 플루티스트들 사이에서 콩쿠르, 입시곡으로 널리 알려진 곡이기도 하다. 10분이 채 안되는 짧은 곡 안에 샤미나드 특유의 다채롭고 우아한 프랑스 감성과 화려한 플루트의 기교가 조화롭게 녹아있는 작품으로 짙어가는 이 가을에 꼭 들어보길 권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Lnr5XD5dj_0
아드리엘 김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와 바이올린을 전공, 졸업(석사)했으며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 부지휘자와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역임한바 있다, 현재는 지휘자, 작곡가,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