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읽는 재미가 소극장의 매력으로 완성되다 /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
뮤지컬하면 으레 대극장의 화려한 무대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 화려한 궁중 무도회에 드레스를 차려입은 배우들이 우아한 사교춤을 추는 장면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것이 뮤지컬의 전부는 물론 아니다. 많은 배우가 나오지 않지만 대중들로부터 사랑받는 뮤지컬들도 적지 않다. 바로 소극장 뮤지컬이다. 우리나라에선 객석수 500석 남짓이면 중극장, 200~300석 규모거나 그보다 작으면 소극장이라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객석 수가 적으니 수익성도 소규모일 것이라 착각할 수도 있다. 절반만 맞고 절반은 틀리다. 공연의 매출은 한 회에 얼마나 많은 관객을 동원할 수 있는가와 이를 얼마나 오래 지속할 수 있는가에 따라 매출이나 수익 규모가 달라진다. 소극장 뮤지컬이라 해도 장기적으로 혹은 안정적으로 공연될 수 있다면 규모의 경제를 구현하는 것이 불가능하진 않다. 게다가 소규모이니 대형 세트나 비주얼 효과를 위한 장비를 설치할 수 없고 등장인물도 적은 경우가 대부분이라 인건비 측면에서도 장점이 있다. 몸집이 가벼우니 지역으로 공연을 이어가는 투어 프로덕션을 꾸리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작품만 좋다면 오래 공연되며 매출도 안정적으로 기록할 수도 있는 ‘효자’ 콘텐츠가 될 수 있다.
출연 배우가 적다는 말은 그만큼 집중이 잘 된다는 의미기도 하다. 아무래도 여러 명이 꾸미는 무대가 아니기 때문에 역으로 관객의 시선을 모으기에 더 유리하다. 무대 장치나 세트, 비주얼 효과에 대한 의존보다 배우 자체의 역할과 기능, 그리고 그를 향한 관객이 시선이 더 강렬하다. 대부분 이런 부류의 작품들에서는 “어떻게 저 많은 대사와 상황을 숙지할까?” 싶을 만큼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대사, 몇 안 되는 배우들의 찰떡같은 호흡에 감탄을 금하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만큼 무대에 오롯이 집중하기 좋고, 이야기의 내면과 깊이를 따라가기 용이한 형식이라는 방증이다.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는 바로 그런 재미가 담긴 작품이다. 출발점은 물론 유명한 베스트셀러로부터 비롯됐다. 제루샤 애벗이라는 고아 소녀가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후원자 ‘스미스’씨의 도움을 받아 대학에 진학한 후 꿋꿋하게 자신이 원하는 일과 사랑을 찾아가는 인생의 여정을 만나게 된다. 후원의 조건은 일상을 담은 편지를 써서 정기적으로 보내야 하는 것이었는데, 먼발치에서 그림자만 보고 키다리 아저씨(영어 소설의 원제목은 다리가 긴 아저씨란 의미의 Daddy long-legs이다)란 별명을 생각해냈던 제루샤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자신의 경험은 물론 시시콜콜한 일상 속 체험까지 모두 스미스씨에게 적어보낸다. 귀엽고 아기자기한 고아 소녀의 대학생활 적응기는 때로는 흐뭇하고 또 때로는 안쓰러운 그러나 시종일관 밝고 희망 넘치는 열정을 보여줘 미소짓게 만든다. 전형적인 성장 스토리인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독자들은 키다리 아저씨의 존재를 알지만 여주인공은 그 정체를 알지 못하는, 그래서 전지적 작가 시점에 있는 독자들이 오히려 발을 동동 구르며 아쉽고 안타깝게 되는 재미가 무엇보다 매력적이라는 점이다. 뮤지컬 무대에서는 소설의 재미를 소극장 뮤지컬답게 2인극의 형식적 틀을 이용해 효과적이고 집중력있게 구현해내는데, 편지를 쓰는 제류샤와 그 편지를 읽는 제르비스의 묘한 뉘앙스와 말투의 변화, 그리고 질투하고 사랑하고 감동받는 극 전개가 흐뭇한 미소를 떠올리게 한다.
원작 소설은 미국의 여류 소설가인 진 웹스터의 작품이다. 1912년 세상에 첫 선을 보였는데,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여성 독자들에게 가슴 설레는 첫사랑의 대리체험으로 사랑받고 있다. 사실 원작 소설은 2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 ‘우울한 수요일’에서는 어둡고 우울한 고아원에서의 생활이, 2부 ‘키다리 아저씨 스미스 씨에게 보낸 제루샤 애벗 양의 편지들’은 고아원을 벗어나 대학이라는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것들을 배워가고 우정을 키워가는 제루샤의 일상과 그 속에서 성장해 가는 모습들이 담겨 있다. 뮤지컬에서는 주로 2부의 내용들이 등장한다. 서간체 소설을 무대용 뮤지컬로 꾸몄다는 면에서는 창작 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도 다소 일맥상통한 특징이 있지만 정말 편지의 형식적 틀을 적극 활용한다는 면에서는 구성이나 형식적 측면에서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1인칭으로 노래하는 제루샤와 그녀의 이야기를 3인칭으로 읽어가는 키다리 아저씨의 묘한 화음은 이 작품을 관통하는 형식적 틀이자 동시에 두 사람의 교감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만드는 매력이기 때문이다. 물론 키다리 아저씨의 정체가 밝혀지는 과정과 그 속에서 드러나는 로맨스 역시 무대에서는 더 할 나위 없이 감미로운 구성과 음악들로 실감나게 펼쳐진다.
뮤지컬을 처음 세상에 선보인 것은 2009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벤츄라 카운티에 있는 루비콘 극장이다. 작품의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아 미국의 여러 지역에서 미완의 트라이 아웃 프로덕션을 선보이며 업그레이드의 과정을 거쳐 결국 대서양 건너 영국 런던의 세인트 제임스 극장에서 2012년 본격적인 막을 올렸다. 이후 2015년 오프 브로드웨이의 데븐포트 극장에서 개막돼 마침내 뉴욕 입성을 이뤄냈다. 영국과 미국을 오가며 완성도를 더해왔지만 늘 여주인공 제류샤 역으로는 메간 맥기니스라는 배우가 출연했다는 부분도 독특하다. 그녀는 ‘레 미제라블’에서 에포닌 역으로 브로드웨이 무대에 섰었던 촉망받던 실력파 뮤지컬 배우였는데 작품의 초기 개발단계서부터 매료돼 제작과정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제루샤는 누구보다 메간”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인기 배우가 이렇듯 초기 개발단계부터 참여해 본인의 예술가적 이미지와 배우로서의 완성도, 작품에서의 역할을 효과적으로 표현해내는 경우를 사실 영미권이나 브로드웨이 공연가에선 심심찮게 만날 수 있는 경우다. 우리 시장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라 아쉽고 또 부럽다.
중장년층이라면 TV용 일본산 만화영화로 기억하는 추억의 콘텐츠도 있겠지만, 무대용 뮤지컬에선 그때 그 시절의 이미지보다 젊고 풋풋한 느낌이 강조된, 그래서 요즘 세대들에게 더욱 잘 어필할 것 같은 캐스팅과 해석이 더해졌다고 볼 수 있다. 흔히 말하는 남녀의 ‘케미’와 ‘썸’타는 이야기가 간질간질한 재미를 만끽하게 한다. 책만큼이나 재미있는 무대다.
원종원씨는 한국외대 재학 시절, 영국을 여행하다가 만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활동을 시작했다. 뮤지컬 저변을 확대하고자 국내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를 결성, 관극운동을 펼쳤다. TV의 프로듀서와 일간지 기자,특파원을 거쳤으며, 현재 일간지와 경제지 등 여러 매체에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대학(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 강단에 서고 있는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컬 마니아이자 전문 평론가로 지면과 방송 등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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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읽는 재미가 소극장의 매력으로 완성되다 /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
뮤지컬하면 으레 대극장의 화려한 무대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 화려한 궁중 무도회에 드레스를 차려입은 배우들이 우아한 사교춤을 추는 장면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것이 뮤지컬의 전부는 물론 아니다. 많은 배우가 나오지 않지만 대중들로부터 사랑받는 뮤지컬들도 적지 않다. 바로 소극장 뮤지컬이다. 우리나라에선 객석수 500석 남짓이면 중극장, 200~300석 규모거나 그보다 작으면 소극장이라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객석 수가 적으니 수익성도 소규모일 것이라 착각할 수도 있다. 절반만 맞고 절반은 틀리다. 공연의 매출은 한 회에 얼마나 많은 관객을 동원할 수 있는가와 이를 얼마나 오래 지속할 수 있는가에 따라 매출이나 수익 규모가 달라진다. 소극장 뮤지컬이라 해도 장기적으로 혹은 안정적으로 공연될 수 있다면 규모의 경제를 구현하는 것이 불가능하진 않다. 게다가 소규모이니 대형 세트나 비주얼 효과를 위한 장비를 설치할 수 없고 등장인물도 적은 경우가 대부분이라 인건비 측면에서도 장점이 있다. 몸집이 가벼우니 지역으로 공연을 이어가는 투어 프로덕션을 꾸리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작품만 좋다면 오래 공연되며 매출도 안정적으로 기록할 수도 있는 ‘효자’ 콘텐츠가 될 수 있다.
출연 배우가 적다는 말은 그만큼 집중이 잘 된다는 의미기도 하다. 아무래도 여러 명이 꾸미는 무대가 아니기 때문에 역으로 관객의 시선을 모으기에 더 유리하다. 무대 장치나 세트, 비주얼 효과에 대한 의존보다 배우 자체의 역할과 기능, 그리고 그를 향한 관객이 시선이 더 강렬하다. 대부분 이런 부류의 작품들에서는 “어떻게 저 많은 대사와 상황을 숙지할까?” 싶을 만큼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대사, 몇 안 되는 배우들의 찰떡같은 호흡에 감탄을 금하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만큼 무대에 오롯이 집중하기 좋고, 이야기의 내면과 깊이를 따라가기 용이한 형식이라는 방증이다.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는 바로 그런 재미가 담긴 작품이다. 출발점은 물론 유명한 베스트셀러로부터 비롯됐다. 제루샤 애벗이라는 고아 소녀가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후원자 ‘스미스’씨의 도움을 받아 대학에 진학한 후 꿋꿋하게 자신이 원하는 일과 사랑을 찾아가는 인생의 여정을 만나게 된다. 후원의 조건은 일상을 담은 편지를 써서 정기적으로 보내야 하는 것이었는데, 먼발치에서 그림자만 보고 키다리 아저씨(영어 소설의 원제목은 다리가 긴 아저씨란 의미의 Daddy long-legs이다)란 별명을 생각해냈던 제루샤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자신의 경험은 물론 시시콜콜한 일상 속 체험까지 모두 스미스씨에게 적어보낸다. 귀엽고 아기자기한 고아 소녀의 대학생활 적응기는 때로는 흐뭇하고 또 때로는 안쓰러운 그러나 시종일관 밝고 희망 넘치는 열정을 보여줘 미소짓게 만든다. 전형적인 성장 스토리인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독자들은 키다리 아저씨의 존재를 알지만 여주인공은 그 정체를 알지 못하는, 그래서 전지적 작가 시점에 있는 독자들이 오히려 발을 동동 구르며 아쉽고 안타깝게 되는 재미가 무엇보다 매력적이라는 점이다. 뮤지컬 무대에서는 소설의 재미를 소극장 뮤지컬답게 2인극의 형식적 틀을 이용해 효과적이고 집중력있게 구현해내는데, 편지를 쓰는 제류샤와 그 편지를 읽는 제르비스의 묘한 뉘앙스와 말투의 변화, 그리고 질투하고 사랑하고 감동받는 극 전개가 흐뭇한 미소를 떠올리게 한다.
원작 소설은 미국의 여류 소설가인 진 웹스터의 작품이다. 1912년 세상에 첫 선을 보였는데,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여성 독자들에게 가슴 설레는 첫사랑의 대리체험으로 사랑받고 있다. 사실 원작 소설은 2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 ‘우울한 수요일’에서는 어둡고 우울한 고아원에서의 생활이, 2부 ‘키다리 아저씨 스미스 씨에게 보낸 제루샤 애벗 양의 편지들’은 고아원을 벗어나 대학이라는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것들을 배워가고 우정을 키워가는 제루샤의 일상과 그 속에서 성장해 가는 모습들이 담겨 있다. 뮤지컬에서는 주로 2부의 내용들이 등장한다. 서간체 소설을 무대용 뮤지컬로 꾸몄다는 면에서는 창작 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도 다소 일맥상통한 특징이 있지만 정말 편지의 형식적 틀을 적극 활용한다는 면에서는 구성이나 형식적 측면에서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1인칭으로 노래하는 제루샤와 그녀의 이야기를 3인칭으로 읽어가는 키다리 아저씨의 묘한 화음은 이 작품을 관통하는 형식적 틀이자 동시에 두 사람의 교감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만드는 매력이기 때문이다. 물론 키다리 아저씨의 정체가 밝혀지는 과정과 그 속에서 드러나는 로맨스 역시 무대에서는 더 할 나위 없이 감미로운 구성과 음악들로 실감나게 펼쳐진다.
뮤지컬을 처음 세상에 선보인 것은 2009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벤츄라 카운티에 있는 루비콘 극장이다. 작품의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아 미국의 여러 지역에서 미완의 트라이 아웃 프로덕션을 선보이며 업그레이드의 과정을 거쳐 결국 대서양 건너 영국 런던의 세인트 제임스 극장에서 2012년 본격적인 막을 올렸다. 이후 2015년 오프 브로드웨이의 데븐포트 극장에서 개막돼 마침내 뉴욕 입성을 이뤄냈다. 영국과 미국을 오가며 완성도를 더해왔지만 늘 여주인공 제류샤 역으로는 메간 맥기니스라는 배우가 출연했다는 부분도 독특하다. 그녀는 ‘레 미제라블’에서 에포닌 역으로 브로드웨이 무대에 섰었던 촉망받던 실력파 뮤지컬 배우였는데 작품의 초기 개발단계서부터 매료돼 제작과정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제루샤는 누구보다 메간”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인기 배우가 이렇듯 초기 개발단계부터 참여해 본인의 예술가적 이미지와 배우로서의 완성도, 작품에서의 역할을 효과적으로 표현해내는 경우를 사실 영미권이나 브로드웨이 공연가에선 심심찮게 만날 수 있는 경우다. 우리 시장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라 아쉽고 또 부럽다.
중장년층이라면 TV용 일본산 만화영화로 기억하는 추억의 콘텐츠도 있겠지만, 무대용 뮤지컬에선 그때 그 시절의 이미지보다 젊고 풋풋한 느낌이 강조된, 그래서 요즘 세대들에게 더욱 잘 어필할 것 같은 캐스팅과 해석이 더해졌다고 볼 수 있다. 흔히 말하는 남녀의 ‘케미’와 ‘썸’타는 이야기가 간질간질한 재미를 만끽하게 한다. 책만큼이나 재미있는 무대다.
원종원씨는 한국외대 재학 시절, 영국을 여행하다가 만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활동을 시작했다. 뮤지컬 저변을 확대하고자 국내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를 결성, 관극운동을 펼쳤다. TV의 프로듀서와 일간지 기자,특파원을 거쳤으며, 현재 일간지와 경제지 등 여러 매체에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대학(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 강단에 서고 있는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컬 마니아이자 전문 평론가로 지면과 방송 등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