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여러분이 어떤 음악회에 가게 되었는데, 그 음악회에서 연주될 작품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런 경우 보통 두 가지의 선택이 있습니다. 그 작품을 미리 들어보는 등 작품에 대해 알아보고 음악회에 가는 것, 그리고 음악회에서 처음 작품을 접해보는 것이지요. 오늘날에는 유튜브와 같은 웹사이트로 인해, 모르는 작품을 음악회에 가기 전에 미리 들어보고 그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는 일이 참 편해졌습니다.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우리 생활에 자리잡기 전에는, 어느 작품에 대해 알려면 음반과 책을 구입하거나 빌려야 가능했지요.
모르는 작품을 미리 들어보고 음악회에 가는 것의 장점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아무래도 해당 작품에 대한 생소함이 줄어들어 음악회에서의 집중력을 높여주고, 그로 인해 작품 감상의 즐거움을 더할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합니다. 어떤 작품을 자세하게 알지 못해도, 그 작품에 나오는 주요 선율들을 알면, 그 선율들이 나오는 순간을 기대하게 되고, 기대하던 선율이 나오는 순간순간을 즐기게 되지요. 또한 미리 들어볼 때의 연주와 음악회에서 듣는 연주의 차이를 비교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모르는 음악을 음악회에서 처음 접하는 것의 장점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여러 답변들이 있겠지만, 생소하게 들리는 음악의 흐름 속에서 예상치 못한 놀라움의 순간을 만끽할 수 있다는 점도 그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말러(G. Mahler, 1860-1911)의 교향곡 제7번을 처음 들었을 당시의 필자의 경험을 나누어보려 합니다.
필자가 말러의 이 작품을 처음 들었던 때는 2002년 5월이었습니다. 오스트리아 빈에 위치한 무직페어라인(Musikverein)에서 열린 지휘자 아바도(C. Abbado, 1933-2014)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회에서였지요. 젊은 시절 빈에서 지휘 공부를 했고,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자주 지휘했으며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의 상임 지휘자로도 활약했던, 빈이라는 도시와 인연이 깊은 아바도가 상임 지휘자로서는 마지막으로 베를린 필을 지휘하는 공연이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 음악회였습니다. 당시 필자는 말러의 교향곡 제7번이 다섯 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음악회로 향했습니다. 사실, 필자의 관심은 작품보다 아바도에 쏠려 있었지요.
청중석의 높은 열기와 집중력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가운데 시작된 말러의 일곱번째 교향곡은 어느새 한 시간을 넘겨 마지막 부분으로 향했는데, 그 흐름은 매우 명확해서 작품을 모르는 사람이 처음 들어도, ‘이렇게 거대한 클라이막스를 이루며 음악이 마지막으로 향하는구나.’ 하고 느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윽고 마지막 음이 강하게 울리며 작품이 끝나겠다고 예상했던 순간, 예상과는 다른 화음이 울리며 필자를 놀라게 했습니다. 마치, 최후의 일격을 가하려는 순간 멈칫하는 느낌이었지요. 당연히 끝날 것이라 예상했던 순간에 음악이 마무리되지 않자, ‘어? 이게 어떻게 된 것이지? 끝이 아닌가?’ 하고 잠시 의문과 약간의 혼란에 휩싸이던 찰나, 갑자기 폭죽이 터지듯 마지막 음이 짧고 강하게 울리며 음악은 끝났습니다. 그리고, 홀이 떠나갈 듯한 박수와 함성이 뒤를 이었습니다.
말러의 교향곡 제7번이 마무리되던 몇 초 동안의 음악 흐름은 필자에게 너무나 큰 놀라움을 안겨주어 오래도록 생생한 기억으로 남았는데, 시간이 흘러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습니다. 만약, 이 작품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그 음악회에 갔어도 이런 충격을 받을 수 있었을까? 분명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 작품을 미리 들었더라면, ‘아바도는 마지막 부분을 어떻게 지휘할까?’와 같은 해석의 영역에 더욱 관심이 쏠렸겠지요. 20여년 전의 음악회에서 느꼈던 지금도 생생한 놀라움은, 이 작품을 음악회에서 처음 접했던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특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물론, 이 작품을 미리 유튜브 등을 통해 알아보며 처음 들었어도 마지막 부분은 놀라움을 안겨 주었겠지만, 음악이 눈 앞에서 라이브로 생생하게 울려퍼지는 공간에서 느꼈던 놀라움의 강도와는 차이가 있었겠지요. 그 음악회 이후 말러의 교향곡 제7번을 접할 때마다 드는 아쉬움은, 그 어떤 훌륭한 연주를 들어도 마지막 부분에서 20여년 전 그 날의 놀라움과 감탄을 다시는 느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누군가 유튜브에 공유한 그 날의 연주를 다시 들어도 그렇습니다.
테너 도밍고(P. Domingo, 1941- )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가 성악가로서의 경력을 막 시작하던 스무 살 무렵, 푸치니(G. Puccini, 1858-1924)의 오페라 <투란도트>에 조역으로 출연하게 되었는데, 당시 그는 이 오페라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리허설에서 이 작품의 합창곡 <달이 왜 이리 늦게 나오는지>가 울려퍼질 때, 그 순간의 음악이 그에게 더할 수 없이 심오한 감동을 주었으며, 생애 가장 감동적인 경험 중 하나였다고 회고했습니다. 냉정하게 본다면,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실력이 뛰어나지 못한 것이 분명했음에도 말이지요.
모르는 작품을 미리 들어보지 않고 음악회 현장에서 바로 마주하는 것이 늘 이러한 놀라움과 감동을 안겨주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때로 어떤 작품은 지루하게 느껴지며, 별다른 인상을 남기지 못한 채 기억에서 사라지기도 하지요. 모르는 작품을 음악회에 가기 전에 들어보는 것은 많은 장점을 갖고 있음에 분명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몰랐던 작품을 음악회에서 직접 마주해보는 것도 정말 멋진 일이 될 것입니다. 평생 각별하게 기억에 남을 놀라운 순간이 아직 알지 못하는 그 음악의 흐름 속에 숨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추천영상: 본문에 소개되었던 말러의 교향곡 제7번 공연 실황 음원입니다. 2002년 5월 13일 빈의 무직페어라인에서 열렸으며, 아바도가 상임지휘자 자격으로서는 마지막으로 베를린 필을 지휘했던 의미있는 공연입니다. 연주가 시작되기 전부터 박수 소리가 예사롭지 않은데, 뜨거운 관심 속에 열린 음악회임을 짐작하게 합니다. 음질이 최상은 아니고, 영상이 아니어서 무척이나 아쉽지만, 음악회 당시의 열기가 잘 전해지는 음원입니다. 이 음악회가 정식 영상물로 남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게 되네요.
https://www.youtube.com/watch?v=avQuBd_n_68
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만약 여러분이 어떤 음악회에 가게 되었는데, 그 음악회에서 연주될 작품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런 경우 보통 두 가지의 선택이 있습니다. 그 작품을 미리 들어보는 등 작품에 대해 알아보고 음악회에 가는 것, 그리고 음악회에서 처음 작품을 접해보는 것이지요. 오늘날에는 유튜브와 같은 웹사이트로 인해, 모르는 작품을 음악회에 가기 전에 미리 들어보고 그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는 일이 참 편해졌습니다.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우리 생활에 자리잡기 전에는, 어느 작품에 대해 알려면 음반과 책을 구입하거나 빌려야 가능했지요.
모르는 작품을 미리 들어보고 음악회에 가는 것의 장점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아무래도 해당 작품에 대한 생소함이 줄어들어 음악회에서의 집중력을 높여주고, 그로 인해 작품 감상의 즐거움을 더할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합니다. 어떤 작품을 자세하게 알지 못해도, 그 작품에 나오는 주요 선율들을 알면, 그 선율들이 나오는 순간을 기대하게 되고, 기대하던 선율이 나오는 순간순간을 즐기게 되지요. 또한 미리 들어볼 때의 연주와 음악회에서 듣는 연주의 차이를 비교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모르는 음악을 음악회에서 처음 접하는 것의 장점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여러 답변들이 있겠지만, 생소하게 들리는 음악의 흐름 속에서 예상치 못한 놀라움의 순간을 만끽할 수 있다는 점도 그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말러(G. Mahler, 1860-1911)의 교향곡 제7번을 처음 들었을 당시의 필자의 경험을 나누어보려 합니다.
필자가 말러의 이 작품을 처음 들었던 때는 2002년 5월이었습니다. 오스트리아 빈에 위치한 무직페어라인(Musikverein)에서 열린 지휘자 아바도(C. Abbado, 1933-2014)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회에서였지요. 젊은 시절 빈에서 지휘 공부를 했고,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자주 지휘했으며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의 상임 지휘자로도 활약했던, 빈이라는 도시와 인연이 깊은 아바도가 상임 지휘자로서는 마지막으로 베를린 필을 지휘하는 공연이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 음악회였습니다. 당시 필자는 말러의 교향곡 제7번이 다섯 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음악회로 향했습니다. 사실, 필자의 관심은 작품보다 아바도에 쏠려 있었지요.
청중석의 높은 열기와 집중력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가운데 시작된 말러의 일곱번째 교향곡은 어느새 한 시간을 넘겨 마지막 부분으로 향했는데, 그 흐름은 매우 명확해서 작품을 모르는 사람이 처음 들어도, ‘이렇게 거대한 클라이막스를 이루며 음악이 마지막으로 향하는구나.’ 하고 느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윽고 마지막 음이 강하게 울리며 작품이 끝나겠다고 예상했던 순간, 예상과는 다른 화음이 울리며 필자를 놀라게 했습니다. 마치, 최후의 일격을 가하려는 순간 멈칫하는 느낌이었지요. 당연히 끝날 것이라 예상했던 순간에 음악이 마무리되지 않자, ‘어? 이게 어떻게 된 것이지? 끝이 아닌가?’ 하고 잠시 의문과 약간의 혼란에 휩싸이던 찰나, 갑자기 폭죽이 터지듯 마지막 음이 짧고 강하게 울리며 음악은 끝났습니다. 그리고, 홀이 떠나갈 듯한 박수와 함성이 뒤를 이었습니다.
말러의 교향곡 제7번이 마무리되던 몇 초 동안의 음악 흐름은 필자에게 너무나 큰 놀라움을 안겨주어 오래도록 생생한 기억으로 남았는데, 시간이 흘러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습니다. 만약, 이 작품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그 음악회에 갔어도 이런 충격을 받을 수 있었을까? 분명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 작품을 미리 들었더라면, ‘아바도는 마지막 부분을 어떻게 지휘할까?’와 같은 해석의 영역에 더욱 관심이 쏠렸겠지요. 20여년 전의 음악회에서 느꼈던 지금도 생생한 놀라움은, 이 작품을 음악회에서 처음 접했던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특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물론, 이 작품을 미리 유튜브 등을 통해 알아보며 처음 들었어도 마지막 부분은 놀라움을 안겨 주었겠지만, 음악이 눈 앞에서 라이브로 생생하게 울려퍼지는 공간에서 느꼈던 놀라움의 강도와는 차이가 있었겠지요. 그 음악회 이후 말러의 교향곡 제7번을 접할 때마다 드는 아쉬움은, 그 어떤 훌륭한 연주를 들어도 마지막 부분에서 20여년 전 그 날의 놀라움과 감탄을 다시는 느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누군가 유튜브에 공유한 그 날의 연주를 다시 들어도 그렇습니다.
테너 도밍고(P. Domingo, 1941- )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가 성악가로서의 경력을 막 시작하던 스무 살 무렵, 푸치니(G. Puccini, 1858-1924)의 오페라 <투란도트>에 조역으로 출연하게 되었는데, 당시 그는 이 오페라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리허설에서 이 작품의 합창곡 <달이 왜 이리 늦게 나오는지>가 울려퍼질 때, 그 순간의 음악이 그에게 더할 수 없이 심오한 감동을 주었으며, 생애 가장 감동적인 경험 중 하나였다고 회고했습니다. 냉정하게 본다면,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실력이 뛰어나지 못한 것이 분명했음에도 말이지요.
모르는 작품을 미리 들어보지 않고 음악회 현장에서 바로 마주하는 것이 늘 이러한 놀라움과 감동을 안겨주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때로 어떤 작품은 지루하게 느껴지며, 별다른 인상을 남기지 못한 채 기억에서 사라지기도 하지요. 모르는 작품을 음악회에 가기 전에 들어보는 것은 많은 장점을 갖고 있음에 분명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몰랐던 작품을 음악회에서 직접 마주해보는 것도 정말 멋진 일이 될 것입니다. 평생 각별하게 기억에 남을 놀라운 순간이 아직 알지 못하는 그 음악의 흐름 속에 숨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추천영상: 본문에 소개되었던 말러의 교향곡 제7번 공연 실황 음원입니다. 2002년 5월 13일 빈의 무직페어라인에서 열렸으며, 아바도가 상임지휘자 자격으로서는 마지막으로 베를린 필을 지휘했던 의미있는 공연입니다. 연주가 시작되기 전부터 박수 소리가 예사롭지 않은데, 뜨거운 관심 속에 열린 음악회임을 짐작하게 합니다. 음질이 최상은 아니고, 영상이 아니어서 무척이나 아쉽지만, 음악회 당시의 열기가 잘 전해지는 음원입니다. 이 음악회가 정식 영상물로 남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게 되네요.
https://www.youtube.com/watch?v=avQuBd_n_68
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