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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수’(감독 류승완)를 보고 나오면서 흥얼거리게 되는 곡, 박경희의 ‘머무는 곳 그 어딜지 몰라도’의 일부다. ‘춘자’(김혜수)와 ‘진숙’(염정아) 일행이 통쾌한 승리를 거둔 후 흘러나오는 시원한 박경희의 목소리가 바다 풍경에 청량감을 더한다.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밀수’에는 이 곡 뿐 아니라 신중현, 산울림을 비롯해 그 시절 우리 대중음악사에 큰 족적을 남긴 뮤지션들의 음악이 다수 삽입되어 있다. ‘앵두’(최헌), ‘하루아침’(한대수), ‘연안부두’(김트리오), ‘님아’(펄시스터즈), ‘무인도’(김추자), ‘바람’(김정미),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김추자),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산울림) 등 당대의 인기가요들이 곳곳에 흘러나오면서 감칠맛을 내니, 이 정도면 감독이 주크박스 영화를 의도한 것이 아닌가 싶다. 류승완 감독이 각본 단계에서 이미 삽입곡들을 정해놓았었다는 사실이 이러한 추측을 뒷받침한다.
대중음악의 삽입은 영화의 배경에 대한 정보를 주고, 그 시절의 정서를 소환하는데 유용하다. 또한, 소위 ‘OO의 테마’ 대신 중장년층에게 익숙한 곡들로 캐릭터 또는 그 신의 감정선을 표현하기 때문에 훨씬 직설적인 반면 관객들의 상상을 제한할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 ‘밀수’는 류승완 감독 특유의 유머감각과 통통 튀는 리듬감이 도드라지는 영화이니만큼 삽입곡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춘자와 진숙의 정서적 유대감을 대변하는 ‘앵두’, ‘권상사’(조인성) 캐릭터를 그대로 묘사한 듯한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도 적절했지만 잔인한 칼부림 신에서 흘러나오는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와 두 차례 다른 편곡으로 들을 수 있는 ‘무인도’가 가장 인상적이다.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가 의외의 장면에 삽입되어 대위법적 효과를 준다면 ‘무인도’는 마치 이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곡인 것처럼 영상과 밀착되어 있다. 방식은 달라도 두 곡 모두 스코어의 기능은 다하고 있는 셈이다.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뮤지션 장기하는 처음 영화음악을 맡아 삽입곡들 사이의 스코어 작곡 및 전체적인 연출을 맡았다. 이번 작업도 만만치 않았겠지만 개성이 분명한 뮤지션이니만큼 다음 영화음악 작업에서는 좀 더 그의 색깔을 많이 볼 수 있길 바란다.
윤성은의 Pick 무비 / 현실 공포가 온다, ‘타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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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혜선, 김성균이 주연을 맡은 ‘타겟’(감독 박희곤)은 중고거래 사기를 소재로 하고 있어 더 오싹하다. 전국민이 중고거래 앱 하나쯤은 이용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중고거래는 우리의 일상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온라인을 통한 중고거래는 같은 동네 주민 혹은 온라인 커뮤니티의 일원으로서 ‘신용’을 기반으로 한다. 비대면 거래의 경우 선입금 후배송 시스템이 대부분이고 대면 거래는 얼굴을 알게 되는데다 만남의 효율성을 위해 연락처를 교환하는 경우도 많으므로 신변노출의 위험성을 다분히 안고 있는 것이다. 이런 빈틈을 이용한 사기 범죄 건수와 금액은 점점 더 증가하고 있는 추세로 2022년 기준 경찰에 신고된 것만 하루 평균 228건에 달한다. 그러니 현실적으로 피의자를 찾아 처벌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타겟’의 ‘수현’은 중고거래 사기를 당한 후 경찰에 신고하지만 대응이 미흡한 것을 보고 혼자 인터넷을 뒤져 사기범의 행적을 알아낸다. 수현이 그가 남긴 게시물에 댓글을 달며 잠재적 고객들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응징하자 사기범은 수현에게 시키지 않은 음식 배달을 시작으로 사생활 침해까지 점점 더 심하게 수현을 압박해 온다. 수현이 저항하면 할수록 범행은 악랄해지고 물리적 위협까지 느낀 수현은 분노보다 공포에 떨기 시작한다. 사안의 심각성을 느낀 경찰이 수사를 맡지만 늘 한 발짝 늦게 범인의 그림자만 좇을 뿐이다.
영화는 초반에 이것이 누구에게나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라는 점을 각인시킨다. 나에게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일이라는 위기감은 관객들을 이 영화에 몰입시키는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범인이 단순한 사기꾼이 아니라 살벌한 살인마임이 밝혀지는 중반부부터 ‘내 이야기’라는 흡입력은 다소 떨어진다. 물론, 묻지마 살인이 횡행한 지금, 어떤 범죄든 ‘남의 일’로 치부할 수 있는 안전지대는 없겠지만 말이다.
치안이 닿지 못하는 영역들, 혼자 사는 여성들에게 닥칠 수 있는 공포 등을 대리 체험하고 나면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그러나 적어도 약 100분간의 러닝타임에서 느슨해지는 부분은 발견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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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수’(감독 류승완)를 보고 나오면서 흥얼거리게 되는 곡, 박경희의 ‘머무는 곳 그 어딜지 몰라도’의 일부다. ‘춘자’(김혜수)와 ‘진숙’(염정아) 일행이 통쾌한 승리를 거둔 후 흘러나오는 시원한 박경희의 목소리가 바다 풍경에 청량감을 더한다.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밀수’에는 이 곡 뿐 아니라 신중현, 산울림을 비롯해 그 시절 우리 대중음악사에 큰 족적을 남긴 뮤지션들의 음악이 다수 삽입되어 있다. ‘앵두’(최헌), ‘하루아침’(한대수), ‘연안부두’(김트리오), ‘님아’(펄시스터즈), ‘무인도’(김추자), ‘바람’(김정미),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김추자),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산울림) 등 당대의 인기가요들이 곳곳에 흘러나오면서 감칠맛을 내니, 이 정도면 감독이 주크박스 영화를 의도한 것이 아닌가 싶다. 류승완 감독이 각본 단계에서 이미 삽입곡들을 정해놓았었다는 사실이 이러한 추측을 뒷받침한다.
대중음악의 삽입은 영화의 배경에 대한 정보를 주고, 그 시절의 정서를 소환하는데 유용하다. 또한, 소위 ‘OO의 테마’ 대신 중장년층에게 익숙한 곡들로 캐릭터 또는 그 신의 감정선을 표현하기 때문에 훨씬 직설적인 반면 관객들의 상상을 제한할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 ‘밀수’는 류승완 감독 특유의 유머감각과 통통 튀는 리듬감이 도드라지는 영화이니만큼 삽입곡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춘자와 진숙의 정서적 유대감을 대변하는 ‘앵두’, ‘권상사’(조인성) 캐릭터를 그대로 묘사한 듯한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도 적절했지만 잔인한 칼부림 신에서 흘러나오는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와 두 차례 다른 편곡으로 들을 수 있는 ‘무인도’가 가장 인상적이다.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가 의외의 장면에 삽입되어 대위법적 효과를 준다면 ‘무인도’는 마치 이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곡인 것처럼 영상과 밀착되어 있다. 방식은 달라도 두 곡 모두 스코어의 기능은 다하고 있는 셈이다.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뮤지션 장기하는 처음 영화음악을 맡아 삽입곡들 사이의 스코어 작곡 및 전체적인 연출을 맡았다. 이번 작업도 만만치 않았겠지만 개성이 분명한 뮤지션이니만큼 다음 영화음악 작업에서는 좀 더 그의 색깔을 많이 볼 수 있길 바란다.
윤성은의 Pick 무비 / 현실 공포가 온다, ‘타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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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혜선, 김성균이 주연을 맡은 ‘타겟’(감독 박희곤)은 중고거래 사기를 소재로 하고 있어 더 오싹하다. 전국민이 중고거래 앱 하나쯤은 이용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중고거래는 우리의 일상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온라인을 통한 중고거래는 같은 동네 주민 혹은 온라인 커뮤니티의 일원으로서 ‘신용’을 기반으로 한다. 비대면 거래의 경우 선입금 후배송 시스템이 대부분이고 대면 거래는 얼굴을 알게 되는데다 만남의 효율성을 위해 연락처를 교환하는 경우도 많으므로 신변노출의 위험성을 다분히 안고 있는 것이다. 이런 빈틈을 이용한 사기 범죄 건수와 금액은 점점 더 증가하고 있는 추세로 2022년 기준 경찰에 신고된 것만 하루 평균 228건에 달한다. 그러니 현실적으로 피의자를 찾아 처벌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타겟’의 ‘수현’은 중고거래 사기를 당한 후 경찰에 신고하지만 대응이 미흡한 것을 보고 혼자 인터넷을 뒤져 사기범의 행적을 알아낸다. 수현이 그가 남긴 게시물에 댓글을 달며 잠재적 고객들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응징하자 사기범은 수현에게 시키지 않은 음식 배달을 시작으로 사생활 침해까지 점점 더 심하게 수현을 압박해 온다. 수현이 저항하면 할수록 범행은 악랄해지고 물리적 위협까지 느낀 수현은 분노보다 공포에 떨기 시작한다. 사안의 심각성을 느낀 경찰이 수사를 맡지만 늘 한 발짝 늦게 범인의 그림자만 좇을 뿐이다.
영화는 초반에 이것이 누구에게나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라는 점을 각인시킨다. 나에게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일이라는 위기감은 관객들을 이 영화에 몰입시키는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범인이 단순한 사기꾼이 아니라 살벌한 살인마임이 밝혀지는 중반부부터 ‘내 이야기’라는 흡입력은 다소 떨어진다. 물론, 묻지마 살인이 횡행한 지금, 어떤 범죄든 ‘남의 일’로 치부할 수 있는 안전지대는 없겠지만 말이다.
치안이 닿지 못하는 영역들, 혼자 사는 여성들에게 닥칠 수 있는 공포 등을 대리 체험하고 나면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그러나 적어도 약 100분간의 러닝타임에서 느슨해지는 부분은 발견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