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 ‘미션’(1986), ‘시네마천국’(1988), ‘러브 어페어’(1994)… 분명 더 있을 것이다. 당신이 흥얼거릴 수 있는 엔니오 모리꼬네의 스코어들이. 그래서 한스 짐머는 그를 ‘우리 인생의 사운드트랙’이라고 말한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그가 영화음악가로서 성공적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그의 음악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수많은 작곡가들이 엔니오 모리꼬네를 모델로 영화음악을 시작했고 수많은 관객들이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을 듣기 위해 영화를 보았다.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쥬세페 토르나토레, 2023)는 지난 2020년 여름에 타계한 위대한 음악가, 엔니오 모리꼬네를 향한 열정적 헌사다.
156분에 달하는 이 다큐멘터리는 엔니오 모리꼬네가 트럼펫을 불던 음악학교 시절부터 차근차근 그의 인생을 반추한다. 덕분에 대중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그의 이력들, 음악의 뒷 이야기들이 밝혀진다. 가령, 그가 학창시절 초반에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던가, 그의 스승인 고프레도 페트라시는 모리꼬네의 재능을 인정하면서도 영화음악 작곡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을 보였다는 이야기는 흥미롭다. 클래식 작곡가들에게 영화음악은 예술이 아니라 기술이었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모리꼬네는 훌륭한 순수음악 작곡가이기도 해서 틈틈이 실험적인 프로젝트에 도전하기도 했다. 존 바에즈의 ‘Here’s to you’를 작곡했다는 사실도, 스탠리 큐브릭과 함께 일할 뻔 했지만 무산된 사연도 새롭다. 이 다큐에는 모리꼬네의 영화음악들이 끊임없이 흐르고 쟁쟁한 감독과 음악가들이 그의 작업을 평가해주기 때문에 영화사적인 관점에서의 의미도 큰 작품이다. 출연자들의 리스트를 보지 않고 영화부터 감상하면 뒤로 갈수록 더 쟁쟁하고 우리에게도 익숙한 인터뷰이들의 등장에 감동하게 될 것이다.
연출은 엔니오 모리꼬네와 30년 이상의 세월을 함께 하며 명화들을 합작해온 쥬세페 토르나토레가 맡았다.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대표작은 끝까지 ‘시네마천국’으로 남을지 모르지만 그의 걸작 리스트에는 이 다큐멘터리도 포함되어야 마땅하다. 아무런 기교 없이 엄선된 자료들과 뛰어난 구성만으로 모리꼬네의 명성에 걸맞는 영화가 완성됐다. 영화팬들이라면 필람해야 할 작품이다.
전설이여, 안녕!,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
그가 돌아왔다. 액션 어드벤쳐 장르의 대명사가 된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다섯 번째 작품,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제임스 맨골드, 2023)에는 막 퇴임을 맞은 교수, 인디아나 존스(이하 ‘인디)가 역사를 바꾸고자 하는 나치 일당과 마주치면서 떠나게 되는 모험담이 담겨 있다. 4편격인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스티븐 스필버그, 2008) 이후 15년 만이다. 세월이 무색하게도 인디는 저 익숙한 중절모에 가죽 재킷을 입은 채 세계 곳곳을 누빈다. 바다로 뛰어들고, 동굴 암벽을 기어오르고, 채찍을 휘두르는 그의 모습에서는 젊은 시절 못지 않은 열정과 집념을 발견할 수 있다. 80대가 된 해리슨 포드의 액션이나 5편의 전반적인 퀄리티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도 있지만, 사실 스케일과 아기자기한 볼거리들은 현대 블록버스터 못지 않다. 일례로, ‘미션 임파서블: 코드 레코닝 Part1’(크리스토퍼 맥쿼리, 2023)과 견주어 보면 기차 액션신, 도시 안 카레이싱 신 등이 거의 유사하게 짜여져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고대 유물에 새겨진 비밀코드와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세련된 느낌이 덜한 것은 1969년을 배경으로 했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어쩌면 실망감 또한 해리슨 포드의 40대, 스티븐 스필버그의 40대, 그 어떤 유사한 경쟁작도 없이 참신하기만 했던 초기 3부작과 비교했을 때 드는 감정일 것이다. 그만큼 ‘인디아나 존스’의 경쟁상대는 ‘인디아나 존스’ 밖에 없다.
1981년, ‘레이더스’부터 시작된 인디의 모험은 42년이라는 세월을 거치며 ‘전설’이 되었다. ‘인디아나 존스’ 4편의 시리즈로 6개의 오스카상을 거머쥐었으며, 인디는 엠파이어지가 선정한 ‘가장 위대한 영화 캐릭터’에서 쟁쟁한 슈퍼히어로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존 윌리엄스가 작곡한 ‘레이더스 마치’는 모험을 떠나는 인디의 모습과 함께 각인되어 중장년층이라면 전주만 들어도 아는 몇 안되는 스코어(score) 중 하나다. 관객들에게 미친 영향력은 훨씬 지대하다. 유년 시절 인디를 보고 자란 이들은 한 번쯤 고고학자를 꿈꿨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상상력, 모험심을 갖게 되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단 5편 밖에 제작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대단한 아우라다.
‘운명의 다이얼’은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최종편으로 팬서비스 차원의 성격이 강하다. 조지 루카스, 스티븐 스필버그 공동제작에 존 윌리엄스 음악이라는 크레딧만으로 설렐 수밖에 없는데, 전편들을 다 합친 것 이상의 막대한 제작비를 들여 액션 시퀀스를 늘렸고, 존 라이스 데이비스(살라), 카렌 알렌(마리온) 등 기존 시리즈의 등장인물을 소환해 추억을 돋운다. 달라진 점이라면 종교성이 강한 유물을 찾았던 기존 시리즈와 달리 고대 그리스 수학자 아르키메데스가 만든 다이얼을 찾아간다는 점이다. 시간의 순환과 여행이라는 소재는 동시대 블록버스터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 시리즈의 과거를 돌아본다는 의미도 들어있다. 인디는 그가 동경해왔던 아르키메데스의 시대에 머물고 싶어하지만 그럴 수 없다. 인디가 현실에서 그를 사랑하고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여생을 보낸다는 결말은 따뜻하면서 먹먹하다. 이로써 인디, 그리고 해리슨 포드는 그와 함께 나이들어 온 중장년의 관객들을 향해 완벽한 이별의 인사를 한 셈이다. 아쉽지만 크레딧이 다 올라가면 관객들도 그를 보내줘야 한다. 그러나 전설에 대한 찬사를 멈출 수는 없다. 그것이야말로 동시대 영화 비평가에게 남아있는 마지막 역할이 아닌가 싶다.
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
인기기사 | 더보기 + |
1 | 2023년 상반기 영업이익 톱5 삼바∙셀트리온∙한미약품∙종근당∙대웅제약 |
2 | 2023년 상반기 순이익 톱5 삼바∙셀트리온∙종근당∙한미약품∙대웅제약 |
3 | 여전히 대세 'CAR-T'㊦ 큐로셀이 끌고 유틸렉스가 밀고 |
4 | 나이벡 "제제기술 발달…펩타이드 신약 성공 가능성 증가" |
5 | 노보 노디스크, 2대 1 비율 주식분할 단행 결정 |
6 | 메디톡스, 2Q 매출 518억원…국내서 80% |
7 | 또 하나의 '서울 바이오 클러스터' 탄생…문정동 바이오헬스 기업 총출동 |
8 | 여전히 대세 'CAR-T'㊤ 글로벌 임상 900건 육박…고형암 도전 확대 |
9 | 백내장 보험금 지급 분쟁..."입원보험금 지급하라" 환자 최종 '승소' |
10 | "창동상계 신경제지구, 전국 클러스터 콘트롤타워 가능" |
인터뷰 | 더보기 + |
PEOPLE | 더보기 + |
클래시그널 | 더보기 + |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 ‘미션’(1986), ‘시네마천국’(1988), ‘러브 어페어’(1994)… 분명 더 있을 것이다. 당신이 흥얼거릴 수 있는 엔니오 모리꼬네의 스코어들이. 그래서 한스 짐머는 그를 ‘우리 인생의 사운드트랙’이라고 말한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그가 영화음악가로서 성공적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그의 음악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수많은 작곡가들이 엔니오 모리꼬네를 모델로 영화음악을 시작했고 수많은 관객들이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을 듣기 위해 영화를 보았다.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쥬세페 토르나토레, 2023)는 지난 2020년 여름에 타계한 위대한 음악가, 엔니오 모리꼬네를 향한 열정적 헌사다.
156분에 달하는 이 다큐멘터리는 엔니오 모리꼬네가 트럼펫을 불던 음악학교 시절부터 차근차근 그의 인생을 반추한다. 덕분에 대중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그의 이력들, 음악의 뒷 이야기들이 밝혀진다. 가령, 그가 학창시절 초반에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던가, 그의 스승인 고프레도 페트라시는 모리꼬네의 재능을 인정하면서도 영화음악 작곡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을 보였다는 이야기는 흥미롭다. 클래식 작곡가들에게 영화음악은 예술이 아니라 기술이었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모리꼬네는 훌륭한 순수음악 작곡가이기도 해서 틈틈이 실험적인 프로젝트에 도전하기도 했다. 존 바에즈의 ‘Here’s to you’를 작곡했다는 사실도, 스탠리 큐브릭과 함께 일할 뻔 했지만 무산된 사연도 새롭다. 이 다큐에는 모리꼬네의 영화음악들이 끊임없이 흐르고 쟁쟁한 감독과 음악가들이 그의 작업을 평가해주기 때문에 영화사적인 관점에서의 의미도 큰 작품이다. 출연자들의 리스트를 보지 않고 영화부터 감상하면 뒤로 갈수록 더 쟁쟁하고 우리에게도 익숙한 인터뷰이들의 등장에 감동하게 될 것이다.
연출은 엔니오 모리꼬네와 30년 이상의 세월을 함께 하며 명화들을 합작해온 쥬세페 토르나토레가 맡았다.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대표작은 끝까지 ‘시네마천국’으로 남을지 모르지만 그의 걸작 리스트에는 이 다큐멘터리도 포함되어야 마땅하다. 아무런 기교 없이 엄선된 자료들과 뛰어난 구성만으로 모리꼬네의 명성에 걸맞는 영화가 완성됐다. 영화팬들이라면 필람해야 할 작품이다.
전설이여, 안녕!,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
그가 돌아왔다. 액션 어드벤쳐 장르의 대명사가 된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다섯 번째 작품,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제임스 맨골드, 2023)에는 막 퇴임을 맞은 교수, 인디아나 존스(이하 ‘인디)가 역사를 바꾸고자 하는 나치 일당과 마주치면서 떠나게 되는 모험담이 담겨 있다. 4편격인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스티븐 스필버그, 2008) 이후 15년 만이다. 세월이 무색하게도 인디는 저 익숙한 중절모에 가죽 재킷을 입은 채 세계 곳곳을 누빈다. 바다로 뛰어들고, 동굴 암벽을 기어오르고, 채찍을 휘두르는 그의 모습에서는 젊은 시절 못지 않은 열정과 집념을 발견할 수 있다. 80대가 된 해리슨 포드의 액션이나 5편의 전반적인 퀄리티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도 있지만, 사실 스케일과 아기자기한 볼거리들은 현대 블록버스터 못지 않다. 일례로, ‘미션 임파서블: 코드 레코닝 Part1’(크리스토퍼 맥쿼리, 2023)과 견주어 보면 기차 액션신, 도시 안 카레이싱 신 등이 거의 유사하게 짜여져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고대 유물에 새겨진 비밀코드와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세련된 느낌이 덜한 것은 1969년을 배경으로 했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어쩌면 실망감 또한 해리슨 포드의 40대, 스티븐 스필버그의 40대, 그 어떤 유사한 경쟁작도 없이 참신하기만 했던 초기 3부작과 비교했을 때 드는 감정일 것이다. 그만큼 ‘인디아나 존스’의 경쟁상대는 ‘인디아나 존스’ 밖에 없다.
1981년, ‘레이더스’부터 시작된 인디의 모험은 42년이라는 세월을 거치며 ‘전설’이 되었다. ‘인디아나 존스’ 4편의 시리즈로 6개의 오스카상을 거머쥐었으며, 인디는 엠파이어지가 선정한 ‘가장 위대한 영화 캐릭터’에서 쟁쟁한 슈퍼히어로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존 윌리엄스가 작곡한 ‘레이더스 마치’는 모험을 떠나는 인디의 모습과 함께 각인되어 중장년층이라면 전주만 들어도 아는 몇 안되는 스코어(score) 중 하나다. 관객들에게 미친 영향력은 훨씬 지대하다. 유년 시절 인디를 보고 자란 이들은 한 번쯤 고고학자를 꿈꿨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상상력, 모험심을 갖게 되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단 5편 밖에 제작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대단한 아우라다.
‘운명의 다이얼’은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최종편으로 팬서비스 차원의 성격이 강하다. 조지 루카스, 스티븐 스필버그 공동제작에 존 윌리엄스 음악이라는 크레딧만으로 설렐 수밖에 없는데, 전편들을 다 합친 것 이상의 막대한 제작비를 들여 액션 시퀀스를 늘렸고, 존 라이스 데이비스(살라), 카렌 알렌(마리온) 등 기존 시리즈의 등장인물을 소환해 추억을 돋운다. 달라진 점이라면 종교성이 강한 유물을 찾았던 기존 시리즈와 달리 고대 그리스 수학자 아르키메데스가 만든 다이얼을 찾아간다는 점이다. 시간의 순환과 여행이라는 소재는 동시대 블록버스터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 시리즈의 과거를 돌아본다는 의미도 들어있다. 인디는 그가 동경해왔던 아르키메데스의 시대에 머물고 싶어하지만 그럴 수 없다. 인디가 현실에서 그를 사랑하고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여생을 보낸다는 결말은 따뜻하면서 먹먹하다. 이로써 인디, 그리고 해리슨 포드는 그와 함께 나이들어 온 중장년의 관객들을 향해 완벽한 이별의 인사를 한 셈이다. 아쉽지만 크레딧이 다 올라가면 관객들도 그를 보내줘야 한다. 그러나 전설에 대한 찬사를 멈출 수는 없다. 그것이야말로 동시대 영화 비평가에게 남아있는 마지막 역할이 아닌가 싶다.
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