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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준의 클래스토리
이종운
입력 2023-06-08 13:45 수정 최종수정 2023-06-12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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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 없는 오케스트라

만약 오케스트라를 모르는 누군가에게 오케스트라에 대해 설명하려 한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오케스트라의 역사에 대해 설명할 수도 있고 유명한 오케스트라 작품들을 소개하며 듣는 이의 관심을 유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많은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설명은 역시 오케스트라 악기 구성에 대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오케스트라 안에 어떤 악기들이 있고 또 그 악기들은 어떤 음색을 지니고 있는지 설명하는 것이지요. 이 설명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악기는 무엇일까요? 십중팔구 바이올린일 것입니다. 바이올린은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악기이고 작품의 주요 선율을 연주하며 오케스트라 전면에 배치되어 청중의 시야에 가장 가까우니 다양한 오케스트라 악기들 중에서 가장 먼저 소개하기에 안성맞춤입니다.

이런 바이올린이 오케스트라 편성에서 빠진다면 어떨까요? 다른 악기도 아닌 바이올린이 없는 오케스트라의 풍경은 무척 생경하게 다가옵니다. 많지는 않지만 바이올린이 빠진 편성으로 이루어진 명곡들을 소개할까 합니다. 첫 번째 소개할 작품은 바로 브람스(J. Brahms, 1833-1897)가 작곡한 <독일 레퀴엠 (Ein deutsches Requiem, Op. 45)>입니다. 죽은 이를 위한 미사곡인 레퀴엠에 통상적으로 사용되던 라틴어 텍스트 대신 브람스가 성서에서 직접 고른 독일어 텍스트를 사용하여 <독일 레퀴엠>이라 불리우는 이 작품은 1861년부터 1868년까지 작곡되었으며 총 7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오케스트라 편성의 측면에서 가장 독특하며 주목할 만한 악장은 바로 바이올린이 빠져있는 1악장입니다. 사실 이 작품의 전체 편성 중에서 클라리넷, 트럼펫, 그리고 팀파니도 첫 악장에 등장하지 않지만 바이올린이 빠진 것만큼의 관심을 받지는 못합니다.

바이올린이 제외된 음색의 매력을 가장 여실히 느낄 수 있는 부분은 1악장 중에서도 시작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합창이 처음 등장하기 전까지 첫 14마디를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게 되는데, 선율은 더블베이스의 아주 낮은 음부터 시작하여 비올라의 중음까지 서서히 쌓아 올라가다가 이내 점차 하강합니다. 두 대의 호른이 긴 음가로 조용하고 부드럽게 현악기들을 감싸는 가운데 세심하게 배분된 더블베이스, 첼로, 그리고 비올라 성부에서 울리는 선율은 먹먹한 슬픔과 따뜻함을 동시에 담고 있지요. 이 선율이 잦아들면 합창이 고요하게 이 작품의 첫 텍스트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 (Selig sind, die da Leid tragen, denn sie sollen getröstet werden)”를 노래하기 시작합니다. 슬퍼하는 이에게 전하는 위로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음악에서 바이올린의 높은 음역에서 파생될 수 있는 화사함이나 화려함, 혹은 강렬함이 방해가 된다고 브람스는 생각했던 것일까요? <독일 레퀴엠>의 첫 악장, 특히 첫머리를 들을 때마다 바이올린을 배제한 브람스의 선택이 얼마나 탁월한 것이었는지 감탄하게 됩니다.

<독일 레퀴엠> 이전에도 브람스는 바이올린이 없는 편성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 작품은 1850년대 후반에 작곡한 <세레나데 2번 (Serenade No. 2, Op. 16)>으로, 피콜로,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 그리고 호른이 포함된 관악기에 비올라와 첼로, 그리고 더블베이스로 이루어진 현악기가 어우러진 편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밝고 온화한 인상을 주는 이 작품에서는 목관악기들의 따스함과 싱그러움이 유난히 돋보이는데 만약 바이올린이 함께 연주되었다면 이렇게 목관악기들의 음색이 잘 살아날 수 있었을까 싶습니다.

브람스 이전에도 바이올린이 제외된 편성의 작품을 남긴 작곡가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바흐 (J. S. Bach, 1685-1750)는 그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6번 (Brandenburg Concerto, No. 6, BWV 1051)>에서 바이올린을 제외하였지요. 괴테(J. W. v. Goethe, 1749-1832)의 시 <물 위의 정령들의 노래 (Gesang der Geister über den Wassern)>에 음악을 붙인 슈베르트(F. Schubert, 1797-1828)의 남성 합창곡(D. 714)은 다섯 성부(비올라2+첼로2+더블베이스1)로 이루어진 중저음 현악 앙상블의 반주로 중후한 매력을 더했습니다.

바이올린 없는 오케스트라 편성을 이야기할 때 늘 등장하는 작곡가 브람스(좌)와 포레(우)
(출처: 브람스-britannica.com/포레-wikipedia.org)

바이올린이 빠진 오케스트라 편성이라는 측면에서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과 함께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은 포레(G. Fauré, 1845~1924)가 작곡한 <레퀴엠 (Requiem, Op. 48)>일 것입니다. 온화한 분위기로 유명한 이 작품은 1888년 처음 완성되었고 1893년과 1900년에 걸쳐 개정이 이루어졌는데 개정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악기 편성의 변화였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편성이었지만 두 차례의 개정을 거치며 편성은 커졌는데 처음부터 계속 존재했던 파트는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 하프 그리고 오르간이었지요. 처음에는 3악장 <상투스(Sanctus)>에서 솔로가 나오는 것 외에는 등장하지 않던 바이올린은 편성이 가장 확대된 1900년 판본에서도 총 7개의 악장 중 4개 악장에만 등장합니다.

독특한 점은 이 4개 악장에서 바이올린이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도록 설계되었다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비올라 파트 1의 음들을 같이 연주하도록 되어 있고, 다른 음들을 연주하더라도 비올라가 연주하는 음역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유일하게 독자적인 선율을 연주하는 악장은 3악장 <상투스>인데, 1900년 이전 판본에서 높은 음역대에서 연주되던 솔로 선율은 1900년 판본에서는 대부분 한 옥타브 아래에서 바이올린 연주자들이 함께 연주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부드러움은 더해졌지만, 이전 판본에서 볼 수 있었던 바이올린의 고음역에서 느껴지는 빛나는 아름다움은 줄어들었지요.

사실, 1900년에 이루어진 개정을 정말 포레가 의도한 것인지에 대해 논란이 있어서, 개정판에서도 존재감이 약한 바이올린 파트가 작곡가의 계획이라고 100% 확신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이 처음 탄생될 때부터 바이올린 파트가 거의 없었고 작품에서 부드럽고 온화한 정서가 강조되고 있음을 고려해보면 존재감이 약한 바이올린 파트는 이 작품 특유의 정서를 위한 포레의 의도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오케스트라에서 중심이 되는 악기라고 누구나 떠올리기 마련인 바이올린을 배제하면서도 매력있는 음색과 정서를 창조해낸 작곡가들과 작품들이 존재합니다. 바이올린이 없는 오케스트라 편성 뿐 아니라, 흔하지 않은 이색적인 편성으로 이루어진 작품들을 찾아 들어보며 그 독특한 음색을 음미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추천영상: 하이팅크가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과 합창단을 지휘한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 공연 실황입니다. 명곡들이 그러하듯이 <독일 레퀴엠>의 모든 악장이 참 훌륭한데 먹먹함 가운데 따뜻하고 깊은 위로를 전해주는 듯한 첫 악장의 느낌은 정말 각별합니다. 차분하게 그 위로를 전해주는 하이팅크의 지휘로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을 감상해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Hwm2PEL2bno&t=265s


<필자소개>
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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