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결한 대비에 담긴 깊이, 뮤지컬 ‘데스노트’
![]() |
‘정의(正義)’란 무엇인가를 정의(定義)하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그동안 수많은 석학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이 이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했지만,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혼란스러운 사회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과연 무엇이 진정한 의미의 정의인지 아득해지게 마련이다. 이때, ‘정의는 어디에’를 부르짖던 한 청년의 모습이 불현듯 떠오른다. ‘법은 인간 사회의 기준이며, 법이 없다면 정의를 지킬 수 없다’라던 선생님에게 ‘권력은 단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일 뿐, 이론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 고등학생은 우연히 주운 데스노트를 손에 쥐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한다. 단죄 대상은 법이 제대로 심판하지 못한 범죄자였으나, 결국 그도 점차 중심을 잃고 만다. ‘새로운 세상의 신이 되겠다’던 그가 실현하고자 했던 ‘시대의 정의’란 과연 무엇이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뮤지컬 ‘데스노트’가 변함없는 인기에 힘입어 앙코르 공연을 이어간다. 올 초 제7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4관왕을 차지한 뒤 지난 3월 28일부터 서울 샤롯데씨어터 앙코르 공연을 시작한 뮤지컬 ‘데스노트’는 2022년 공연 당시 주연을 맡은 홍광호, 김준수, 고은성, 김성철과 더불어 뉴 캐스트 이영미, 김용수, 장지후 등과 함께 또다시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워낙 평이 좋은 데다, 마니아도 많은 작품이라 좀처럼 잔여 티켓을 구하기가 쉽지 않지만 오는 6월 18일 서울 공연이 마무리되면 6월 30일부터 대구에서 새로운 여정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하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뮤지컬 ‘데스노트’는 만화 ‘데스노트’를 원작으로 탄생한 작품이다.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시리즈물로 제작된 동명 영화로도 상당히 유명해서 대중에게 꽤 익숙한 콘텐츠이기도 하다. ‘데스노트에 이름이 쓰인 자는 죽는다’란 조건 아래, 세상을 정의롭게 바꾸고 싶은 고등학생 야가미 라이토(이하 라이토)와 정체를 숨기고 활약하는 명탐정 엘(L)의 대결이 팽팽하게 이뤄지는 극으로, 무대 위에 펼쳐진 한 편의 체스 게임과도 같은 전개가 무척 흥미롭다. 물론 원작과 다른 결말 때문에 이에 대한 반응은 다소 갈리는 편이나 무엇보다도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명확하고 좋은 넘버가 많은데다, 남다른 실력을 지닌 배우들의 작품 해석과 소화력이 대단해서 더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뮤지컬이다.
화려한 무대장치와 소품 대신 영상미를 충분히 활용한 무대도 몰입감을 높이는 데 주된 역할을 한다. 사실 ‘데스노트’의 무대는 무척 단순하다. 공간 벽과 천장, 바닥을 LED 패널로 채워 신과 인간세계를 넘나들면서 초현실적 분위기를 연출하는 방식이다. 공연장에 들어서면 온통 검게 물든 빈 무대를 배경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시계 초침이 제각각 돌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이 시계 초침은 사신의 시각에서 바라본 인간의 수명을 의미한다. 데스노트에 이름이 적힌 자는 40초 만에 사망하게 된다는 극 중 설정에 따라 시간을 맞춰 움직인다고 하는데, 그러다 공연 시작이 다가오면 이 초침들이 어지러이 돌아가다가 일시에 멈추면서 전부 사라진다.
![]() |
캐릭터 성격을 반영해 색상으로 구분한 것 역시 재미있다. 먼저 라이토와 엘은 서로 완전히 다른 성격을 지닌 인물이다. 엄밀히 보면 두 사람 모두 정의롭다고 평가하기는 어려운 캐릭터다. 그릇된 정의를 실현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방향성을 잃어버린 라이토나, 사건 해결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고 쓰는 엘 모두 결코 바람직하게 행동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대비적 설정을 뚜렷하게 나타내기 위해 작품은 라이토에게 어둠을, 엘에게는 상대적으로 밝은 빛을 부여했다. 그래서 라이토가 입은 의상 색상이나 방에 쓰이는 색은 어둡고 따뜻한 컬러, 반대로 엘의 의상과 방 꾸밈에는 눈부시게 하얗고 차가운 컬러가 쓰였다. 이름에 빛(Light)을 담은 주인공 라이토에게 반대 설정이 들어간 점도 눈에 띈다. 사신 류크와 렘 역시 마찬가지다. 단지 재미를 위해 인간 세상에 데스노트를 떨어뜨려 막대한 혼란을 초래한 류크는 검은색, 오랜 관찰 끝에 존재의 가치를 깨달은 사신 렘은 흰색 옷을 입는다.
여기에 더해 작품에서는 선이 중요한 의미를 담는다. 장면을 전환할 때 검은 배경 위로 선이 그어지며 공간을 구분하는 장면이 자주 나타나는데, 이때 라이토와 엘은 서슴없이 그 선을 넘나드는 반면 다른 등장인물들의 경우 주어진 공간 안에서만 머무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각 캐릭터가 가진 신념이나 가치관을 어떻게 여기고 따르는지 파악할 수 있는 중요 단서다. 또 직선으로 표현되는 류크의 공허한 내면과 달리 따스한 렘의 마음은 곡선으로 나타난다. 이 같은 모습은 렘이 미사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기 시작하는 2막에서 두드러져 보인다. 그리고 라이토를 사이에 둔 채 위아래로 그어진 선에 맞춰 서서 애틋한 마음을 담아 ‘나의 히어로’를 노래하는 사유와 미사의 무대도 주인공의 내적 갈등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다.
이처럼 뮤지컬 ‘데스노트’는 흥미로운 소재만큼이나 재미있는 볼거리, 여러모로 의미 있게 생각해볼 만한 주제를 바탕으로 풍성한 감상을 선사한다. 덧없는 싸움 끝에 남은 것은 결국 포용과 용서의 메시지다. 남은 기간, 뮤지컬 ‘데스노트’가 제시한 물음표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직접 경험해보기를 바란다.
최윤영씨는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와 경인방송 라디오 리포터 등 방송 활동과 더불어 문화예술공연 전문 진행자로 다양한 무대에 선바 있다. 현재는 미디어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담당하고 있으며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후 공연 칼럼니스트로서 칼럼을 기고해왔고,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채널을 운영중이다.
인기기사 | 더보기 + |
1 | “기업의 국제 공중보건 기여, 사회적 가치와 이윤추구간 균형 찾았다” |
2 | 제약바이오 산업 전망…올해 하락하고 내년부터 회복? |
3 | 크리스탈지노믹스, 최대주주 변경…‘3대 경영혁신’ 발표 |
4 | 씨엔알리서치 "첨단바이오의약품 개발 성공, 협력·소통이 답" |
5 | 감기 증상 소아에 정신과약,남성에 사후피임약...처방오류 '심각' |
6 | [인터뷰] "최고 피임률 '피하 이식형 피임제', 편리성·안전성 두루 갖춰" |
7 | "새 의약품유통협회장, 강한 협회 만들고 중소업체 목소리 들을 수 있어야" |
8 | 파마리서치, 케이메디허브와 MOU 체결 |
9 | 노바티스 ‘키스칼리’ 유방암 재발 위험 25% ↓ |
10 | 요양병원 평가결과 공개...'질지원금' 첫 적용해 7월 보상 |
인터뷰 | 더보기 + |
PEOPLE | 더보기 + |
클래시그널 | 더보기 + |
간결한 대비에 담긴 깊이, 뮤지컬 ‘데스노트’
![]() |
‘정의(正義)’란 무엇인가를 정의(定義)하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그동안 수많은 석학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이 이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했지만,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혼란스러운 사회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과연 무엇이 진정한 의미의 정의인지 아득해지게 마련이다. 이때, ‘정의는 어디에’를 부르짖던 한 청년의 모습이 불현듯 떠오른다. ‘법은 인간 사회의 기준이며, 법이 없다면 정의를 지킬 수 없다’라던 선생님에게 ‘권력은 단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일 뿐, 이론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 고등학생은 우연히 주운 데스노트를 손에 쥐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한다. 단죄 대상은 법이 제대로 심판하지 못한 범죄자였으나, 결국 그도 점차 중심을 잃고 만다. ‘새로운 세상의 신이 되겠다’던 그가 실현하고자 했던 ‘시대의 정의’란 과연 무엇이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뮤지컬 ‘데스노트’가 변함없는 인기에 힘입어 앙코르 공연을 이어간다. 올 초 제7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4관왕을 차지한 뒤 지난 3월 28일부터 서울 샤롯데씨어터 앙코르 공연을 시작한 뮤지컬 ‘데스노트’는 2022년 공연 당시 주연을 맡은 홍광호, 김준수, 고은성, 김성철과 더불어 뉴 캐스트 이영미, 김용수, 장지후 등과 함께 또다시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워낙 평이 좋은 데다, 마니아도 많은 작품이라 좀처럼 잔여 티켓을 구하기가 쉽지 않지만 오는 6월 18일 서울 공연이 마무리되면 6월 30일부터 대구에서 새로운 여정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하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뮤지컬 ‘데스노트’는 만화 ‘데스노트’를 원작으로 탄생한 작품이다.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시리즈물로 제작된 동명 영화로도 상당히 유명해서 대중에게 꽤 익숙한 콘텐츠이기도 하다. ‘데스노트에 이름이 쓰인 자는 죽는다’란 조건 아래, 세상을 정의롭게 바꾸고 싶은 고등학생 야가미 라이토(이하 라이토)와 정체를 숨기고 활약하는 명탐정 엘(L)의 대결이 팽팽하게 이뤄지는 극으로, 무대 위에 펼쳐진 한 편의 체스 게임과도 같은 전개가 무척 흥미롭다. 물론 원작과 다른 결말 때문에 이에 대한 반응은 다소 갈리는 편이나 무엇보다도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명확하고 좋은 넘버가 많은데다, 남다른 실력을 지닌 배우들의 작품 해석과 소화력이 대단해서 더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뮤지컬이다.
화려한 무대장치와 소품 대신 영상미를 충분히 활용한 무대도 몰입감을 높이는 데 주된 역할을 한다. 사실 ‘데스노트’의 무대는 무척 단순하다. 공간 벽과 천장, 바닥을 LED 패널로 채워 신과 인간세계를 넘나들면서 초현실적 분위기를 연출하는 방식이다. 공연장에 들어서면 온통 검게 물든 빈 무대를 배경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시계 초침이 제각각 돌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이 시계 초침은 사신의 시각에서 바라본 인간의 수명을 의미한다. 데스노트에 이름이 적힌 자는 40초 만에 사망하게 된다는 극 중 설정에 따라 시간을 맞춰 움직인다고 하는데, 그러다 공연 시작이 다가오면 이 초침들이 어지러이 돌아가다가 일시에 멈추면서 전부 사라진다.
![]() |
캐릭터 성격을 반영해 색상으로 구분한 것 역시 재미있다. 먼저 라이토와 엘은 서로 완전히 다른 성격을 지닌 인물이다. 엄밀히 보면 두 사람 모두 정의롭다고 평가하기는 어려운 캐릭터다. 그릇된 정의를 실현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방향성을 잃어버린 라이토나, 사건 해결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고 쓰는 엘 모두 결코 바람직하게 행동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대비적 설정을 뚜렷하게 나타내기 위해 작품은 라이토에게 어둠을, 엘에게는 상대적으로 밝은 빛을 부여했다. 그래서 라이토가 입은 의상 색상이나 방에 쓰이는 색은 어둡고 따뜻한 컬러, 반대로 엘의 의상과 방 꾸밈에는 눈부시게 하얗고 차가운 컬러가 쓰였다. 이름에 빛(Light)을 담은 주인공 라이토에게 반대 설정이 들어간 점도 눈에 띈다. 사신 류크와 렘 역시 마찬가지다. 단지 재미를 위해 인간 세상에 데스노트를 떨어뜨려 막대한 혼란을 초래한 류크는 검은색, 오랜 관찰 끝에 존재의 가치를 깨달은 사신 렘은 흰색 옷을 입는다.
여기에 더해 작품에서는 선이 중요한 의미를 담는다. 장면을 전환할 때 검은 배경 위로 선이 그어지며 공간을 구분하는 장면이 자주 나타나는데, 이때 라이토와 엘은 서슴없이 그 선을 넘나드는 반면 다른 등장인물들의 경우 주어진 공간 안에서만 머무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각 캐릭터가 가진 신념이나 가치관을 어떻게 여기고 따르는지 파악할 수 있는 중요 단서다. 또 직선으로 표현되는 류크의 공허한 내면과 달리 따스한 렘의 마음은 곡선으로 나타난다. 이 같은 모습은 렘이 미사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기 시작하는 2막에서 두드러져 보인다. 그리고 라이토를 사이에 둔 채 위아래로 그어진 선에 맞춰 서서 애틋한 마음을 담아 ‘나의 히어로’를 노래하는 사유와 미사의 무대도 주인공의 내적 갈등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다.
이처럼 뮤지컬 ‘데스노트’는 흥미로운 소재만큼이나 재미있는 볼거리, 여러모로 의미 있게 생각해볼 만한 주제를 바탕으로 풍성한 감상을 선사한다. 덧없는 싸움 끝에 남은 것은 결국 포용과 용서의 메시지다. 남은 기간, 뮤지컬 ‘데스노트’가 제시한 물음표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직접 경험해보기를 바란다.
최윤영씨는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와 경인방송 라디오 리포터 등 방송 활동과 더불어 문화예술공연 전문 진행자로 다양한 무대에 선바 있다. 현재는 미디어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담당하고 있으며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후 공연 칼럼니스트로서 칼럼을 기고해왔고,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채널을 운영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