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고 싶지 않았던 음악가 - 류이치 사카모토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Ars longa, vita brevis)’.
류이치 사카모토가 직장암 투병 끝에 지난 3월 28일, 향년 71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이번 칼럼은 뉴에이지 피아니스트로, 작곡가로, 예술가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았던 그를 추모하며 그가 걸어온 궤적을 더듬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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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도쿄에서 태어나 1971년 도쿄 예술대학 음악학부에서 클래식 음악을 작곡한 그는 전형적인 클래식 학과의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대중음악에 눈을 돌려 Yellow Magic Ochestra(YMO)를 결성,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후 영화배우, 광고 모델로도 활동하며 인지도를 높인 그는 음악적 관점을 바꿔 영화음악에 관심을 두며 자신이 출연한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 OST ‘Merry Christmas Mr. Lawrence’로 영화음악 작곡가로서도 두각을 나타낸다. 그리고 1987년, <마지막 황제> 영화음악으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룩하며 본격적으로 영화음악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의 음악 세계는 섬세하고 정교하며 처연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할 정도로 서정적이었다. 다큐멘터리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 <류이치 사카모토:에이싱크>에서 보여 준 그의 음악 세계를 통해 선율을 넘어 소리 그 자체로 음악의 개념을 확장시켰고, ‘지속되는, 사라지지 않는 소리, 약해지지 않는 소리’에 대한 동경을 표현하며 “언제 죽어도 부끄럽지 않을 음악을 남기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부터는 환경 사회 운동가로서 음악인인 자신의 정체성을 살린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피해지역 아동들과 ‘도호쿠 유스 오케스트라’를 결성해 매년 오케스트라 및 음악 축제를 개최하고 환경 단체 ‘모어트리즈(More trees)’를 설립해 사회․정치적 현안을 다룬 시위에 직접 나와 목소리를 높였다. 또, 후쿠시마를 직접 방문해 방사능의 심각성을 알렸고 별세 2주 전까지 기고하던 도쿄 신문 칼럼을 통해 ‘원전 회귀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다. 더 나아가 도쿄도의 메이지진구 인근 재개발 사업에서 수천 그루의 나무가 사라지는 문제에 대해 도지사 등 대표 5명에게 공개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그는 한국과의 인연도 깊은 음악인이었다. 2011년 내한 공연에서는 새로운 연주 기법을 보여주는 실험적인 음악회를 열기도 했고 2017년에는 영화 <남한산성>의 OST에 참여한 바 있다. 특히 <남한산성> OST 참여 동기가 독특했는데, 인터뷰를 통해 “한국 음악, 특히 판소리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새롭게 배워보자는 제안에 참여를 결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또,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사실 그와의 인연이 즐겁고 좋은 것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유희열의 곡 ‘아주 사적인 밤’이 그의 곡 ‘Aqua’와 표절 시비가 일어나 국내외 음악팬들 사이에서 큰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모든 창작물은 기존의 예술에 영향을 받는다. 거기에 자신의 독창성이 5~10% 정도 가미한다면 훌륭하고 감사한 일이다”라며 오히려 유희열을 옹호하는 발언을 해 거장의 애티튜드를 보여주기도 했다. 2020년 보그 인터뷰에서 “인터뷰를 한국어로 해내고 싶다”던 그의 바람은 비록 실현되지 못했지만 여러 한국 아티스트들과의 작업을 통해 한국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 왔다.
그는 평생 음악이 가진 한계를 고민하고 그 속에서 음악의 힘을 온전하게 구현해내고자 노력했던, 언제나 ‘지금’을 사는 음악가였다. 자서전 <음악으로부터 자유로워지다>에서 “아무리 실제로 겪거나 느낀 것을 표현해도 그것이 음악으로 만들어지는 시점부터 음악 세계의 소유가 되어 둘 사이에는 극복할 수 없는 거리가 생긴다.”라는 그의 말은 진정 음악으로 소통하려는 노력을 해본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말이다. 그러나 그는 직면한 한계에 순종하지 않고 언어와 수식으로 다룰 수 있는 주제들, 가령 비동시성․소수․양자물리학 등과 같은 인간이 사유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음악으로 표현하고자 노력하기도 했다.
우리는 가끔 스스로가 정해 둔 정체성 혹은 타인이 규정해 주는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를 맞추려는 어리석은 시도를 하며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되곤 한다. 그러나 류이치 사카모토는 그럴 때마다 ‘이게 내가 좋아하는 것인가?’, ‘다른 가능성이 있는 건 아닐까?’ ‘이렇게 하면 되는 것일까?’라고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자신을 극복하고 그것을 음악으로 표현해 온 사람이었다.
한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직업적으로나 개인으로서나 이토록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자신의 한계를 함부로 예단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며, 한계에 직면했을 때 오히려 한 걸음 더 애써 나가아가는 사람이었기에 가능했다. 뛰어난 아티스트를 넘어 ‘지금 이 순간’, 시대가 원하고 바라던 인간상을 보여주었던 그가 우리 곁을 떠난 것이 몹시 아쉽지만 그의 음악은 오래도록 우리 곁에 머물 것이다. 인생은 짧지만 예술은 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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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민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예술경영)와 홍콩과학기술대학(MBA)을 졸업한 후 미국 뉴욕필하모닉 기획팀 및 싱가포르 IMG Artists에서 근무한 바 있다. 현재는 선아트 매니지먼트 대표를 맡고 있으며 한양대학교에서 예술경영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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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고 싶지 않았던 음악가 - 류이치 사카모토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Ars longa, vita brevis)’.
류이치 사카모토가 직장암 투병 끝에 지난 3월 28일, 향년 71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이번 칼럼은 뉴에이지 피아니스트로, 작곡가로, 예술가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았던 그를 추모하며 그가 걸어온 궤적을 더듬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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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도쿄에서 태어나 1971년 도쿄 예술대학 음악학부에서 클래식 음악을 작곡한 그는 전형적인 클래식 학과의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대중음악에 눈을 돌려 Yellow Magic Ochestra(YMO)를 결성,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후 영화배우, 광고 모델로도 활동하며 인지도를 높인 그는 음악적 관점을 바꿔 영화음악에 관심을 두며 자신이 출연한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 OST ‘Merry Christmas Mr. Lawrence’로 영화음악 작곡가로서도 두각을 나타낸다. 그리고 1987년, <마지막 황제> 영화음악으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룩하며 본격적으로 영화음악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의 음악 세계는 섬세하고 정교하며 처연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할 정도로 서정적이었다. 다큐멘터리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 <류이치 사카모토:에이싱크>에서 보여 준 그의 음악 세계를 통해 선율을 넘어 소리 그 자체로 음악의 개념을 확장시켰고, ‘지속되는, 사라지지 않는 소리, 약해지지 않는 소리’에 대한 동경을 표현하며 “언제 죽어도 부끄럽지 않을 음악을 남기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부터는 환경 사회 운동가로서 음악인인 자신의 정체성을 살린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피해지역 아동들과 ‘도호쿠 유스 오케스트라’를 결성해 매년 오케스트라 및 음악 축제를 개최하고 환경 단체 ‘모어트리즈(More trees)’를 설립해 사회․정치적 현안을 다룬 시위에 직접 나와 목소리를 높였다. 또, 후쿠시마를 직접 방문해 방사능의 심각성을 알렸고 별세 2주 전까지 기고하던 도쿄 신문 칼럼을 통해 ‘원전 회귀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다. 더 나아가 도쿄도의 메이지진구 인근 재개발 사업에서 수천 그루의 나무가 사라지는 문제에 대해 도지사 등 대표 5명에게 공개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그는 한국과의 인연도 깊은 음악인이었다. 2011년 내한 공연에서는 새로운 연주 기법을 보여주는 실험적인 음악회를 열기도 했고 2017년에는 영화 <남한산성>의 OST에 참여한 바 있다. 특히 <남한산성> OST 참여 동기가 독특했는데, 인터뷰를 통해 “한국 음악, 특히 판소리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새롭게 배워보자는 제안에 참여를 결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또,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사실 그와의 인연이 즐겁고 좋은 것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유희열의 곡 ‘아주 사적인 밤’이 그의 곡 ‘Aqua’와 표절 시비가 일어나 국내외 음악팬들 사이에서 큰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모든 창작물은 기존의 예술에 영향을 받는다. 거기에 자신의 독창성이 5~10% 정도 가미한다면 훌륭하고 감사한 일이다”라며 오히려 유희열을 옹호하는 발언을 해 거장의 애티튜드를 보여주기도 했다. 2020년 보그 인터뷰에서 “인터뷰를 한국어로 해내고 싶다”던 그의 바람은 비록 실현되지 못했지만 여러 한국 아티스트들과의 작업을 통해 한국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 왔다.
그는 평생 음악이 가진 한계를 고민하고 그 속에서 음악의 힘을 온전하게 구현해내고자 노력했던, 언제나 ‘지금’을 사는 음악가였다. 자서전 <음악으로부터 자유로워지다>에서 “아무리 실제로 겪거나 느낀 것을 표현해도 그것이 음악으로 만들어지는 시점부터 음악 세계의 소유가 되어 둘 사이에는 극복할 수 없는 거리가 생긴다.”라는 그의 말은 진정 음악으로 소통하려는 노력을 해본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말이다. 그러나 그는 직면한 한계에 순종하지 않고 언어와 수식으로 다룰 수 있는 주제들, 가령 비동시성․소수․양자물리학 등과 같은 인간이 사유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음악으로 표현하고자 노력하기도 했다.
우리는 가끔 스스로가 정해 둔 정체성 혹은 타인이 규정해 주는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를 맞추려는 어리석은 시도를 하며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되곤 한다. 그러나 류이치 사카모토는 그럴 때마다 ‘이게 내가 좋아하는 것인가?’, ‘다른 가능성이 있는 건 아닐까?’ ‘이렇게 하면 되는 것일까?’라고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자신을 극복하고 그것을 음악으로 표현해 온 사람이었다.
한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직업적으로나 개인으로서나 이토록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자신의 한계를 함부로 예단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며, 한계에 직면했을 때 오히려 한 걸음 더 애써 나가아가는 사람이었기에 가능했다. 뛰어난 아티스트를 넘어 ‘지금 이 순간’, 시대가 원하고 바라던 인간상을 보여주었던 그가 우리 곁을 떠난 것이 몹시 아쉽지만 그의 음악은 오래도록 우리 곁에 머물 것이다. 인생은 짧지만 예술은 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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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민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예술경영)와 홍콩과학기술대학(MBA)을 졸업한 후 미국 뉴욕필하모닉 기획팀 및 싱가포르 IMG Artists에서 근무한 바 있다. 현재는 선아트 매니지먼트 대표를 맡고 있으며 한양대학교에서 예술경영을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