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진 역사를 새로 쓰다 / ‘식스 더 뮤지컬(SIX The Musical)’ 한국어 공연
“너의 사랑 따위 필요 없어. 자유롭게 날아오를래!”
헨리 8세의 여섯 부인이 화려한 팝스타로 환생했다. 한때 하늘과 다름없었을 남편이자 왕에게 ‘너’의 사랑 따위 이제 필요 없다고 외치는 파격이 무척이나 재미있다. 게다가 저마다 가진 개성을 뚜렷하게 살린 스타일링에 당당하면서도 멋진 퍼포먼스, 가슴이 뻥 뚫릴 만큼 시원한 가창력은 번쩍이는 에너지로 공연장을 가득 채운다. 지난 3월 31일부터 한국어 공연으로 관객들과 만나고 있는 뮤지컬 최신작 ‘식스 더 뮤지컬(SIX The Musical)’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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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영국에서 탄생한 ‘식스 더 뮤지컬’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던 역사를 유쾌하게 비틀어 무대 위로 올린 작품이다. 물론 역사적 고증도 잊지 않았다. 대신 시대적 변화가 작품 안에 충실히 포함됐다. ‘MZ세대 창작진’이라 불리는 토비 말로우와 루시 모스가 의기투합해 만들었는데 94년생인 두 사람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동문으로 알려져 있다. 대학 내 뮤지컬 소사이어티에서 함께 활동하던 그들은 신인다운 패기로 발전을 거듭했다. 이후 2019년 웨스트엔드에서 정식 데뷔 무대를 갖고 이듬해 브로드웨이에도 진출한 ‘식스 더 뮤지컬’은 제75회 토니어워즈 최우수 음악상, 최우수 뮤지컬 의상 디자인상을 거머쥐었다. 그 밖에 각종 시상식에서 현재까지 총 11관왕을 달성한 이 작품은 눈에 띄는 이력과 더불어 그야말로 ‘핫(Hot)한’ 뮤지컬로 떠올랐다. 이어 2023년에는 아시아 최초 무대로 한국을 꼽으면서 지난 3월 약 3주간의 내한 초연을 마무리 짓고, 전 세계 최초 라이선스 공연을 연이어 무대에 올렸다. 3월 31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COEX 신한카드 아티움에서 개막한 ‘식스 더 뮤지컬’ 한국어 공연은 오는 6월 25일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마치 콘서트를 떠올리게 만든 공연은 생생한 라이브 밴드의 연주에 맞춰 80분 동안 펼쳐진다. 아라곤, 불린, 시모어, 클레페, 하워드, 파라는 이름을 얻게 된 튜더 왕가 여섯 왕비는 그동안 헨리 8세에 가려져 미처 전하지 못한 자신들의 이야기를 노래에 담아 흥미롭게 풀어놓는다. ‘이혼’, ‘참수’, ‘사망’, ‘생존’이라는 키워드로 요약된 인생은 언뜻 봐도 심상치 않다. 마이크를 잡고 무대 위에 선 그들은 ‘누가 과연 가장 힘들고 끔찍한 삶을 살았는가’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한다. 그리고 그 중 으뜸이라 꼽힌 사람이 리드보컬 역할을 맡기로 한다. 혹시나 이들과 관련된 역사를 잘 알지 못해도 전혀 문제없다. 거칠면서도 꽤 친절한 설명이 줄곧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필요에 따라 때로는 약간의 비속어도 듣기 불편하지 않을 만큼 쓰인다. 그간의 녹록지 않던 인생을 압축한 ‘아이엠 송(I’m song)’을 부르는 모습을 보다 보면 저절로 응원하는 마음이 샘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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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여섯 명의 주인공 캐릭터를 설정하는 과정에 인기 팝스타들이 영감을 줬다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먼저 헨리 8세의 첫 번째 부인으로 가장 오랜 기간 왕과 결혼 생활을 유지한 아라곤은 비욘세와 샤키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왕의 형수였다가 남편이 사망한 뒤 그 동생과 결혼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깜짝 놀랄 일인데 역사서에 전해진 이야기를 보면 마치 당장이라도 그가 리더 자리를 차지해야 할 것만 같다. 아라곤은 고향인 스페인과 가톨릭의 분위기를 살려 만든 금빛과 검은색의 갑옷 형태 의상을 입고 무대에 등장하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파워풀한 가창력으로 사랑받는 손승연과 이아름솔이 이 역을 맡았다.
그런 아라곤을 왕비 자리에서 밀어내고 국교를 바꾸면서까지 결혼에 성공한 두 번째 부인 불린은 에이브릴 라빈과 릴리 알렌을 모델 삼았다. 양옆으로 귀엽게 말아 올린 머리에 강렬한 초록색 의상을 입고 자유분방하게 무대를 누비는 불린 역에는 김지우와 배수정이 캐스팅돼 배역과 완벽히 어울린 모습을 연출한다.
왕이 그토록 바라던 아들을 낳았지만 아이를 품에 안아보지도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만 시모어는 박혜나와 박가람이 맡았다. 돌처럼 굳건한 사랑을 노래한 시모어 캐릭터에는 아델과 시아 이미지가 반영됐다. 또 오직 결혼을 위해 먼 타국에서 건너왔다가 초상화와 실물이 다르다는 이유로 혼자 성에 남겨진 클레페 역은 김지선, 최현선이 맡아 카리스마 넘치는 무대로 흥을 돋운다. 비교적 합리적인 이혼 절차를 밟는 데 성공해 싱글 라이프를 멋지게 즐기던 클레페에게서 금세기 가장 성공한 여성 래퍼라 손꼽히는 니키 미나즈가 겹쳐 보인다.
여섯 왕비 중 가장 어린 다섯 번째 부인 하워드는 김려원과 솔지의 무대로 만날 수 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아리아나 그란데의 이미지를 떠올려 본다면, 분홍빛 의상을 입고 긴 머리를 높이 올려 묶은 하이틴 팝스타처럼 꾸민 하워드가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마지막으로 진정한 사랑을 뒤로한 채 그저 왕의 결정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마지막 왕비 파는 서정적이면서도 감미로운 노래를 부르며 마치 ‘불행 격전지’ 같던 무대를 포근하게 감싼다. 유주혜와 홍지희가 그려낼 파의 모습은 엘리샤 키스로부터 본떴다.
빌보드 캐스트 앨범 순위 1위를 기록할 만큼 큰 인기를 얻었던 넘버들도 원어의 느낌을 최대한 살려 번역한 가사 덕분에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Ex-Wives’로 시작해 ‘Mega Six’에 이르기까지 반복적인 리듬과 멜로디에 실려 알아듣기 쉽도록 전달된 이야기는 그들 모두 ‘주인공’임을 분명히 한다. 누군가의 아내이자 왕의 여인이 아닌, 진정한 여왕으로 거듭나는 과정은 존재 자체로 눈부시게 빛난다. 새로 쓰인 여왕들의 놀라운 허스토리(Herstory)가 궁금하다면 지금 바로 퀸덤에 합류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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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영씨는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와 경인방송 라디오 리포터 등 방송 활동과 더불어 문화예술공연 전문 진행자로 다양한 무대에 선바 있다. 현재는 미디어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담당하고 있으며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후 공연 칼럼니스트로서 칼럼을 기고해왔고,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채널을 운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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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진 역사를 새로 쓰다 / ‘식스 더 뮤지컬(SIX The Musical)’ 한국어 공연
“너의 사랑 따위 필요 없어. 자유롭게 날아오를래!”
헨리 8세의 여섯 부인이 화려한 팝스타로 환생했다. 한때 하늘과 다름없었을 남편이자 왕에게 ‘너’의 사랑 따위 이제 필요 없다고 외치는 파격이 무척이나 재미있다. 게다가 저마다 가진 개성을 뚜렷하게 살린 스타일링에 당당하면서도 멋진 퍼포먼스, 가슴이 뻥 뚫릴 만큼 시원한 가창력은 번쩍이는 에너지로 공연장을 가득 채운다. 지난 3월 31일부터 한국어 공연으로 관객들과 만나고 있는 뮤지컬 최신작 ‘식스 더 뮤지컬(SIX The Musical)’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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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영국에서 탄생한 ‘식스 더 뮤지컬’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던 역사를 유쾌하게 비틀어 무대 위로 올린 작품이다. 물론 역사적 고증도 잊지 않았다. 대신 시대적 변화가 작품 안에 충실히 포함됐다. ‘MZ세대 창작진’이라 불리는 토비 말로우와 루시 모스가 의기투합해 만들었는데 94년생인 두 사람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동문으로 알려져 있다. 대학 내 뮤지컬 소사이어티에서 함께 활동하던 그들은 신인다운 패기로 발전을 거듭했다. 이후 2019년 웨스트엔드에서 정식 데뷔 무대를 갖고 이듬해 브로드웨이에도 진출한 ‘식스 더 뮤지컬’은 제75회 토니어워즈 최우수 음악상, 최우수 뮤지컬 의상 디자인상을 거머쥐었다. 그 밖에 각종 시상식에서 현재까지 총 11관왕을 달성한 이 작품은 눈에 띄는 이력과 더불어 그야말로 ‘핫(Hot)한’ 뮤지컬로 떠올랐다. 이어 2023년에는 아시아 최초 무대로 한국을 꼽으면서 지난 3월 약 3주간의 내한 초연을 마무리 짓고, 전 세계 최초 라이선스 공연을 연이어 무대에 올렸다. 3월 31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COEX 신한카드 아티움에서 개막한 ‘식스 더 뮤지컬’ 한국어 공연은 오는 6월 25일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마치 콘서트를 떠올리게 만든 공연은 생생한 라이브 밴드의 연주에 맞춰 80분 동안 펼쳐진다. 아라곤, 불린, 시모어, 클레페, 하워드, 파라는 이름을 얻게 된 튜더 왕가 여섯 왕비는 그동안 헨리 8세에 가려져 미처 전하지 못한 자신들의 이야기를 노래에 담아 흥미롭게 풀어놓는다. ‘이혼’, ‘참수’, ‘사망’, ‘생존’이라는 키워드로 요약된 인생은 언뜻 봐도 심상치 않다. 마이크를 잡고 무대 위에 선 그들은 ‘누가 과연 가장 힘들고 끔찍한 삶을 살았는가’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한다. 그리고 그 중 으뜸이라 꼽힌 사람이 리드보컬 역할을 맡기로 한다. 혹시나 이들과 관련된 역사를 잘 알지 못해도 전혀 문제없다. 거칠면서도 꽤 친절한 설명이 줄곧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필요에 따라 때로는 약간의 비속어도 듣기 불편하지 않을 만큼 쓰인다. 그간의 녹록지 않던 인생을 압축한 ‘아이엠 송(I’m song)’을 부르는 모습을 보다 보면 저절로 응원하는 마음이 샘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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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여섯 명의 주인공 캐릭터를 설정하는 과정에 인기 팝스타들이 영감을 줬다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먼저 헨리 8세의 첫 번째 부인으로 가장 오랜 기간 왕과 결혼 생활을 유지한 아라곤은 비욘세와 샤키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왕의 형수였다가 남편이 사망한 뒤 그 동생과 결혼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깜짝 놀랄 일인데 역사서에 전해진 이야기를 보면 마치 당장이라도 그가 리더 자리를 차지해야 할 것만 같다. 아라곤은 고향인 스페인과 가톨릭의 분위기를 살려 만든 금빛과 검은색의 갑옷 형태 의상을 입고 무대에 등장하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파워풀한 가창력으로 사랑받는 손승연과 이아름솔이 이 역을 맡았다.
그런 아라곤을 왕비 자리에서 밀어내고 국교를 바꾸면서까지 결혼에 성공한 두 번째 부인 불린은 에이브릴 라빈과 릴리 알렌을 모델 삼았다. 양옆으로 귀엽게 말아 올린 머리에 강렬한 초록색 의상을 입고 자유분방하게 무대를 누비는 불린 역에는 김지우와 배수정이 캐스팅돼 배역과 완벽히 어울린 모습을 연출한다.
왕이 그토록 바라던 아들을 낳았지만 아이를 품에 안아보지도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만 시모어는 박혜나와 박가람이 맡았다. 돌처럼 굳건한 사랑을 노래한 시모어 캐릭터에는 아델과 시아 이미지가 반영됐다. 또 오직 결혼을 위해 먼 타국에서 건너왔다가 초상화와 실물이 다르다는 이유로 혼자 성에 남겨진 클레페 역은 김지선, 최현선이 맡아 카리스마 넘치는 무대로 흥을 돋운다. 비교적 합리적인 이혼 절차를 밟는 데 성공해 싱글 라이프를 멋지게 즐기던 클레페에게서 금세기 가장 성공한 여성 래퍼라 손꼽히는 니키 미나즈가 겹쳐 보인다.
여섯 왕비 중 가장 어린 다섯 번째 부인 하워드는 김려원과 솔지의 무대로 만날 수 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아리아나 그란데의 이미지를 떠올려 본다면, 분홍빛 의상을 입고 긴 머리를 높이 올려 묶은 하이틴 팝스타처럼 꾸민 하워드가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마지막으로 진정한 사랑을 뒤로한 채 그저 왕의 결정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마지막 왕비 파는 서정적이면서도 감미로운 노래를 부르며 마치 ‘불행 격전지’ 같던 무대를 포근하게 감싼다. 유주혜와 홍지희가 그려낼 파의 모습은 엘리샤 키스로부터 본떴다.
빌보드 캐스트 앨범 순위 1위를 기록할 만큼 큰 인기를 얻었던 넘버들도 원어의 느낌을 최대한 살려 번역한 가사 덕분에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Ex-Wives’로 시작해 ‘Mega Six’에 이르기까지 반복적인 리듬과 멜로디에 실려 알아듣기 쉽도록 전달된 이야기는 그들 모두 ‘주인공’임을 분명히 한다. 누군가의 아내이자 왕의 여인이 아닌, 진정한 여왕으로 거듭나는 과정은 존재 자체로 눈부시게 빛난다. 새로 쓰인 여왕들의 놀라운 허스토리(Herstory)가 궁금하다면 지금 바로 퀸덤에 합류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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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영씨는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와 경인방송 라디오 리포터 등 방송 활동과 더불어 문화예술공연 전문 진행자로 다양한 무대에 선바 있다. 현재는 미디어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담당하고 있으며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후 공연 칼럼니스트로서 칼럼을 기고해왔고,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채널을 운영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