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 인물서사, 권순철·박치호·서정태·정현·한효석를 주목하라”
2023년 갤러리끼(대표 이광기)가 새롭게 선보이는 기획전 <들숨 날숨 인간풍경(DEULSOOM-NALSOOM, The Humanscape>(4.14~6.10)은 인간의 내면과 외면을 아울러 관조하는 권순철, 박치호, 서정태, 정현, 한효석(가나다순)의 진지한 성찰을 다룬다. 인간을 자연 속에서 다뤄온 천인합일(天人合一)의 동양적 자연관은 인간을 우월한 위치(일점 투시의 원근법과 같은)에서 다룬 서구의 시각보다 거시적이고 사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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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풍경(Humanscapes)’은 2000년대 들어 유행한 ‘신체풍경(Bodyscapes)’ 테마와 달리, ‘사람 사이의 길(人間之道)’을 종합적 관점에서 모색한다. 전시는 스치는 바람의 흔적처럼 ‘들숨과 날숨/어제와 오늘’을 순간인 듯 감각적으로 묘사한다. 전시장을 메운 작품들과 사람들의 들숨 날숨에 ‘인간의 숲’이 들썩이기 때문이다.
동시대 인물화에 대한 다층의 가치해석
우리 시대의 인물화는 솔직담백한 우리의 몸짓을 담는다. 그런 의미에서 《들숨 날숨 인간풍경》은 동시대 한국을 대표하는 인물화가들의 시선을 통해, 인물화를 다시 복권 시키는 중요한 전시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인간의 몸, 신체를 넘어 자아와 타자를 연결 짓는 ‘숨=생(生)=실존(實存)’에 대한 작가 5인의 인간해석을 통해 욕망, 상처, 희망, 불안 등에 대한 비판과 공감의 시선을 총체적으로 보여준다.
서로 다른 조형 언어가 ‘인간풍경’에서 만났을 때, 각각의 작품들은 들숨과 날숨을 가진 또 다른 생명체로 기능할 것이다. 서로 다른 행간 속에서 ‘관람자의 인간해석’은 다양하고 풍성해질 수밖에 없다. 장르와 기법이 다른 작가 5인의 인간풍경은 ‘어떻게 더하고 빼느냐’에 따라 달리 읽힌다는 것이다. 치밀한 완전성 속에서 자기 세계를 확립한 작가들의 ‘긴장과 이완/들숨 날숨’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는 작품 이상의 가치를 깨닫게 될 것이다.
거칠지만 진실한 영혼의 날숨, 권순철의 인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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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철(b.1944, kwun Suncheol) 작가는 서울과 파리를 오가며 50여 년간 줄곧 그림을 그려왔다. 그림의 모티프는 주로 한국의 산과 바다. 그리고 한국인의 초상이다. 세파에 시달리며 힘겹게 살아온 노인의 얼굴은 작가 특유의 두꺼운 마티에르와 거친 붓 터치를 거쳐 깊은 울림을 전한다. 인간의 얼굴을 모티프로 예술과 종교의 상관 관계를 형상화하는 작품들은 ‘인물화의 최고 경지’에 이른 노화가의 심연을 드러낸다. 작가는 1991년 프랑스 파리 근교의 이씨레뮬리노 시에 있는 옛 탱크정비공장을 개조하여 46개의 아틀리에를 이룬 ‘소나무회’의 초대 회장이었다. 공장지대를 예술의 허브로 바꾸는 시대의 맥락 속에 한국 미술사의 중요 행보를 이끈 것이다. 작가가 고난과 역경을 날숨의 시선으로 표현하면, 풍파와 인고(忍苦)의 세월들은 들숨이 되어 우리 모두를 위로한다. 그림 속 인물들이 겪어온 여러 삶들이 모여 ‘한국인의 얼굴’이 되는 것이다.
부유하는 몸의 표류, 박치호의 들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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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호(b.1967, Park Chiho) 작가는 전남지역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개인의 상처와 사회 현실과의 관계를 거대한 어둠을 머금은 묵직한 몸의 서사로 표현한다. 파편화된 신체의 형(形)을 바다의 부유물과 같은 표류의 장(場)으로 묘사하면서 ‘부분과 전체가 상호교류하는’ 삶의 순환과정을 이야기한다. 전남도립미술관의
관능과 감정이 뒤섞인 푸른 날숨, 서정태의 채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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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태(b.1952, Suh JungTae)는 8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한국 채색화만을 고집하면서 그만의 독특한 진채(眞彩)의 세계를 탐색해 왔다. 여기서 진채란 내면과 외연을 종합한, 종합주의적 해석의 한국채색화를 말한다. 한국화의 전통에서 보자면 서정태의 작업은 자연에서 파생된 치밀한 자기수양의 과정과 연결된다. 초기작에서 보이는 노골성, 솔직한 관능, 진정성을 끊임없이 파고들어, 세상과 삶을 일체화시키는 근원적 욕망을 그린다고 할 수 있다. 실제 푸른 색조에 스며든 ‘눈이 큰 여인상’은 시대를 관찰하는 ‘작가 자신’의 표상이지 않을까 한다. 현실을 직시한 관찰자의 시선은 지금-여기 서슬 푸른 근원적 욕망 속에서 새로운 생명성을 갖기 때문이다.
거칠게 생략된 부드러운 인간조각, 정현의 들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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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현(b.1956, Chung Hyun)은 인간과 물질에 내재된 생명력을 조각 언어로 찾아가는 작가이다. 철길을 지탱하던 폐침목, 철근, 아스팔트, 석탄 찌꺼기 콜타르 등 쓸모(생명력)를 다한 산업 폐기물을 작업의 재료로 사용한다. 작가는 연필 드로잉, 녹 드로잉, 콜타르 드로잉 등을 바탕으로 ‘쓸모없음’의 가치에 새로운 생명력을 가미한다. 특히 1990년대 후반부터 주재료로 사용한 침목은 형상을 거칠게 생략하되 나무의 질긴 물질성을 그대로 드러내 재료가 지탱해온 시간과 생명력을 극대화한다. 공허한 대상들을 유의미하게 만드는 현대적이면서도 전위적인 조각 사이에, 인간을 따스히 어루만지는 정현의 들숨, 이른바 ‘실존미학’이 담겨 있다.
시지각을 뒤섞은 덩어리진 껍질, 한효석의 날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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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효석(b.1972, Hyoseok Han)은 사람의 얼굴 가죽을 벗겨낸 듯한, 고깃덩어리 같은 유화와 조각을 통해 욕망과 자본의 문제 등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해외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며 영국 사치갤러리 큐레이터팀이 선정한 한국현대미술대표작가 34명에 선정(2012년)되었다. 벗겨진 피부의 살점들은 ‘고깃덩어리’라는 느낌보다, ‘고통덩어리’를 송두리째 벗겨내는 속 시원한 감정까지 부여한다. 인간에 내재한 ‘시지각적 오류’를 ‘덩어리진 껍질’로 환원시킨 것이다. 한효석의 인물을 보면 구상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날 것의 감각을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웃음 앞에 내면의 상처를 감춘 조커'가 떠오른다. 기괴함이 주는 묘한 유머를 대상화하는 '개념적 날숨’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안현정씨는 예술철학전공 철학박사출신의 문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성균관대학교박물관 학예관, 유중재단 이사, 고려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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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인물서사, 권순철·박치호·서정태·정현·한효석를 주목하라”
2023년 갤러리끼(대표 이광기)가 새롭게 선보이는 기획전 <들숨 날숨 인간풍경(DEULSOOM-NALSOOM, The Humanscape>(4.14~6.10)은 인간의 내면과 외면을 아울러 관조하는 권순철, 박치호, 서정태, 정현, 한효석(가나다순)의 진지한 성찰을 다룬다. 인간을 자연 속에서 다뤄온 천인합일(天人合一)의 동양적 자연관은 인간을 우월한 위치(일점 투시의 원근법과 같은)에서 다룬 서구의 시각보다 거시적이고 사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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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풍경(Humanscapes)’은 2000년대 들어 유행한 ‘신체풍경(Bodyscapes)’ 테마와 달리, ‘사람 사이의 길(人間之道)’을 종합적 관점에서 모색한다. 전시는 스치는 바람의 흔적처럼 ‘들숨과 날숨/어제와 오늘’을 순간인 듯 감각적으로 묘사한다. 전시장을 메운 작품들과 사람들의 들숨 날숨에 ‘인간의 숲’이 들썩이기 때문이다.
동시대 인물화에 대한 다층의 가치해석
우리 시대의 인물화는 솔직담백한 우리의 몸짓을 담는다. 그런 의미에서 《들숨 날숨 인간풍경》은 동시대 한국을 대표하는 인물화가들의 시선을 통해, 인물화를 다시 복권 시키는 중요한 전시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인간의 몸, 신체를 넘어 자아와 타자를 연결 짓는 ‘숨=생(生)=실존(實存)’에 대한 작가 5인의 인간해석을 통해 욕망, 상처, 희망, 불안 등에 대한 비판과 공감의 시선을 총체적으로 보여준다.
서로 다른 조형 언어가 ‘인간풍경’에서 만났을 때, 각각의 작품들은 들숨과 날숨을 가진 또 다른 생명체로 기능할 것이다. 서로 다른 행간 속에서 ‘관람자의 인간해석’은 다양하고 풍성해질 수밖에 없다. 장르와 기법이 다른 작가 5인의 인간풍경은 ‘어떻게 더하고 빼느냐’에 따라 달리 읽힌다는 것이다. 치밀한 완전성 속에서 자기 세계를 확립한 작가들의 ‘긴장과 이완/들숨 날숨’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는 작품 이상의 가치를 깨닫게 될 것이다.
거칠지만 진실한 영혼의 날숨, 권순철의 인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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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철(b.1944, kwun Suncheol) 작가는 서울과 파리를 오가며 50여 년간 줄곧 그림을 그려왔다. 그림의 모티프는 주로 한국의 산과 바다. 그리고 한국인의 초상이다. 세파에 시달리며 힘겹게 살아온 노인의 얼굴은 작가 특유의 두꺼운 마티에르와 거친 붓 터치를 거쳐 깊은 울림을 전한다. 인간의 얼굴을 모티프로 예술과 종교의 상관 관계를 형상화하는 작품들은 ‘인물화의 최고 경지’에 이른 노화가의 심연을 드러낸다. 작가는 1991년 프랑스 파리 근교의 이씨레뮬리노 시에 있는 옛 탱크정비공장을 개조하여 46개의 아틀리에를 이룬 ‘소나무회’의 초대 회장이었다. 공장지대를 예술의 허브로 바꾸는 시대의 맥락 속에 한국 미술사의 중요 행보를 이끈 것이다. 작가가 고난과 역경을 날숨의 시선으로 표현하면, 풍파와 인고(忍苦)의 세월들은 들숨이 되어 우리 모두를 위로한다. 그림 속 인물들이 겪어온 여러 삶들이 모여 ‘한국인의 얼굴’이 되는 것이다.
부유하는 몸의 표류, 박치호의 들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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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호(b.1967, Park Chiho) 작가는 전남지역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개인의 상처와 사회 현실과의 관계를 거대한 어둠을 머금은 묵직한 몸의 서사로 표현한다. 파편화된 신체의 형(形)을 바다의 부유물과 같은 표류의 장(場)으로 묘사하면서 ‘부분과 전체가 상호교류하는’ 삶의 순환과정을 이야기한다. 전남도립미술관의
관능과 감정이 뒤섞인 푸른 날숨, 서정태의 채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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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태(b.1952, Suh JungTae)는 8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한국 채색화만을 고집하면서 그만의 독특한 진채(眞彩)의 세계를 탐색해 왔다. 여기서 진채란 내면과 외연을 종합한, 종합주의적 해석의 한국채색화를 말한다. 한국화의 전통에서 보자면 서정태의 작업은 자연에서 파생된 치밀한 자기수양의 과정과 연결된다. 초기작에서 보이는 노골성, 솔직한 관능, 진정성을 끊임없이 파고들어, 세상과 삶을 일체화시키는 근원적 욕망을 그린다고 할 수 있다. 실제 푸른 색조에 스며든 ‘눈이 큰 여인상’은 시대를 관찰하는 ‘작가 자신’의 표상이지 않을까 한다. 현실을 직시한 관찰자의 시선은 지금-여기 서슬 푸른 근원적 욕망 속에서 새로운 생명성을 갖기 때문이다.
거칠게 생략된 부드러운 인간조각, 정현의 들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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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현(b.1956, Chung Hyun)은 인간과 물질에 내재된 생명력을 조각 언어로 찾아가는 작가이다. 철길을 지탱하던 폐침목, 철근, 아스팔트, 석탄 찌꺼기 콜타르 등 쓸모(생명력)를 다한 산업 폐기물을 작업의 재료로 사용한다. 작가는 연필 드로잉, 녹 드로잉, 콜타르 드로잉 등을 바탕으로 ‘쓸모없음’의 가치에 새로운 생명력을 가미한다. 특히 1990년대 후반부터 주재료로 사용한 침목은 형상을 거칠게 생략하되 나무의 질긴 물질성을 그대로 드러내 재료가 지탱해온 시간과 생명력을 극대화한다. 공허한 대상들을 유의미하게 만드는 현대적이면서도 전위적인 조각 사이에, 인간을 따스히 어루만지는 정현의 들숨, 이른바 ‘실존미학’이 담겨 있다.
시지각을 뒤섞은 덩어리진 껍질, 한효석의 날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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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효석(b.1972, Hyoseok Han)은 사람의 얼굴 가죽을 벗겨낸 듯한, 고깃덩어리 같은 유화와 조각을 통해 욕망과 자본의 문제 등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해외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며 영국 사치갤러리 큐레이터팀이 선정한 한국현대미술대표작가 34명에 선정(2012년)되었다. 벗겨진 피부의 살점들은 ‘고깃덩어리’라는 느낌보다, ‘고통덩어리’를 송두리째 벗겨내는 속 시원한 감정까지 부여한다. 인간에 내재한 ‘시지각적 오류’를 ‘덩어리진 껍질’로 환원시킨 것이다. 한효석의 인물을 보면 구상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날 것의 감각을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웃음 앞에 내면의 상처를 감춘 조커'가 떠오른다. 기괴함이 주는 묘한 유머를 대상화하는 '개념적 날숨’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안현정씨는 예술철학전공 철학박사출신의 문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성균관대학교박물관 학예관, 유중재단 이사, 고려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