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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영의 뮤지컬 오버뷰 (Musical Over:view)
최윤영
입력 2023-03-31 11:17
수정 최종수정 2023-03-31 11:42
순수의 세계로 떠나는 여행, 뮤지컬 '어린 왕자'
뮤지컬 어린왕자 공연장면 <사진제공 HJ컬쳐>
“나는 언제나 여기에 있어. 우린 언젠가 다시 만날 거야.”
어린 시절 자그마한 손으로 집어 들었던 소설 ‘어린 왕자’는 당시 열 살 남짓했던 내게 알 듯 말 듯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으로 가득 찬 책이었다. 하지만 친구가 필요했던 노란 머리 어린 왕자와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유리병 속 빨간 장미꽃과 여우 그림만큼은 마치 오래도록 잊지 말아야 할 기억처럼 깊이 각인됐다. 그러던 어느 날, 책장에 꽂힌 ‘어린 왕자’를 다시 만났다. 세월이 흘러 다시 읽은 ‘어린 왕자’ 이야기는 마치 어른이 될 나를 손꼽아 기다린 듯했다. ‘어린 왕자’와의 만남은 상상했던 정도보다 훨씬 더 강렬했다. 뮤지컬 ‘어린 왕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별로 떠나기 전, 그가 남기고 간 인사처럼 ‘어린 왕자’는 정말로 언제나 그곳에 있었다. 그저 독자였던 내가 그새 달라졌을 뿐이다.
한국 창작뮤지컬 ‘어린 왕자’는 프랑스 소설가이자 비행사였던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세계적인 명작 소설을 낭독형 뮤지컬로 창작하면서 작품에 어울릴 만한 무대 문법을 더해 완성한 결과다. 지난 2018년 초연 이래 어느덧 네 번째 시즌을 맞이했는데, 올해는 특히 원작 소설 ‘어린 왕자’가 출간된 지 80주년을 맞이한 해이기도 해 더욱 뜻깊은 시즌이 됐다. 게다가 이 작품은 지난해 해외로도 수출되면서 작품성과 흥행성을 두루 증명했다. 덕분에 이번에는 라이선스 계약을 맺은 대만 공연팀의 1회 특별 무대도 같이 선보여 또 한 번 주목받았다.
새로운 시즌을 이끌 주역들 또한 기대를 모은다. 먼저 ‘생텍쥐페리’ 역은 정동화, 안재영, 동현이 맡았고 ‘어린 왕자’ 역으로는 이우종, 황민수, 정지우가 출연한다. 그리고 ‘나’ 역을 맡은 송영미, 정우연, 주다온이 무대에 올라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다. 이처럼 여러모로 주목할 만한 배경과 함께 지난 3월 4일 시즌 첫 공연을 선보인 뮤지컬 ‘어린 왕자’는 오는 4월 23일까지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만날 수 있다.
작품은 원작이 가진 매력을 충실하게 담으면서도 뮤지컬의 특성 역시 잊지 않았다. 이미 수많은 독자로부터 검증된 소설 속 명대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을 뿐만 아니라, 연극적인 요소까지 적절히 살려 스토리가 주는 효과를 극대화했다. 첼로와 바이올린, 피아노가 어울린 즉석 연주도 빼놓을 수 없다. 서정적인 선율을 타고 흐른 연주 덕분에 공연장은 훨씬 더 풍성한 감동의 물결로 가득 채워진다. 또 공연장 구조상 객석과 무대 사이 거리가 무척 가까운데, 바로 눈앞에서 생생한 연기와 노래를 선보이는 배우들을 보면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이미지를 남겼던 원작 속 삽화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여기에 색색의 조명으로 밝힌 소품들까지 저마다 또렷한 이미지로 남아 마지막까지 긴 여운을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이 때문에 소설 ‘어린 왕자’를 아껴왔던 관객이라면 새로운 장르의 옷을 입은 뮤지컬 ‘어린 왕자’에도 충분한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 듯하다.
비행기 고장으로 인해 사막 한복판에 불시착하게 된 ‘나’는 어디선가 나타난 소년 ‘어린 왕자’와 만난다. 줄곧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던 소년은
‘나’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라면서, 마음으로 봐야만 볼 수 있는 존재들에 대해 스스로 생각할 계기가 된다. 순수성을 잃은 어른들의 눈으로는 볼 수 없던 그림과 알고 싶지 않은 진실은 보려 하지 않는 사람들, 세대를 불문하고 여전히 모순의 시대를 살아가는 누군가의 사연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문득 적잖은 부끄러움으로 다가온다. 이렇게 80분에 걸친 시간 동안 무대 위로 펼쳐진 이야기는 오늘날 어른들에게 마음속 어딘가에 여전히 살아 숨 쉴 순수함과 미처 알지 못한 행복을 일깨워 준다.
동화보다 더 동화 같은 이야기가 전한 공감과 위로의 메시지들은 한때 어린아이였을 모두를 위해 작품 곳곳에 살아 숨 쉬듯 빛을 낸다. 한참 동안 피지 않은 나의 꽃이 피어나길 기다리던 시간이 나쁘지는 않았다던 ‘어린 왕자’의 말도 마치 언젠가 피어날 저마다의 나날들을 그리는 희망이 된다.
비록 멀어져 버린 시간이지만, 순수로 가득했던 세계로 잠시나마 돌아가 보는 경험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마음을 활짝 열고 충분히 길들 준비가 되었다면 올봄, ‘어린 왕자’가 기다리는 별에 한 번쯤 방문해 보자. 뮤지컬 ‘어린 왕자’는 분명 지금껏 만나보지 못한 꿈 같은 세상을 당신에게 한 아름 선사할 것이다.
<필자소개>
최윤영씨는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와 경인방송 라디오 리포터 등 방송 활동과 더불어 문화예술공연 전문 진행자로 다양한 무대에 선바 있다. 현재는 미디어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담당하고 있으며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후 공연 칼럼니스트로서 칼럼을 기고해왔고,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채널을 운영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