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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은의 뮤직 in CINEMA
윤성은
입력 2023-03-20 11:50 수정 최종수정 2023-03-24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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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듣는 말러 교향곡 5번 ‘타르’

이 영화는 음악영화가 아니다. 오케스트라 연주 장면도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그러니 주인공이 지휘자이자 작곡가라고 해서 ‘아마데우스’(감독 밀로스 포만)나 ‘카핑 베토벤’(감독 아그네츠카 홀란드) 같은 영화를 상상하면 오산이다. 아카데미 6개 부문의 후보에 올라있지만 음악상은 빠져있다.



‘타르’(감독 토드 필드)는 연주 신들을 많이 배치하기 보다 최고의 지위에 오른 지휘자가 어떻게 몰락해 가는가를 보여주는 드라마에 초점을 더 두고 있다. 남다른 카리스마와 실력을 지녔지만 공감능력은 부족한 ‘리디아 타르’(케이트 블란쳇)는 특유의 냉정함과 권력으로 오케스트라를 휘두르다가 옛 연인의 자살, 어린 첼로 연주자와의 루머 등으로 늪에 빠진다. 불행히도 탄탄대로만을 걸어왔던 그녀는 이런 경우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도 ‘헤어질 결심’(감독 박찬욱)의 주제곡 중 하나인 말러 교향곡 5번이 등장한다. 사실, 말러 교향곡 5번을 널리 알린 영화는 ‘타르’에서도 언급되듯이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베니스에서의 죽음’(1971)이었다. 쇠약해진 작곡가가 베니스에서 아름다운 소년을 발견하고 예술과 순수에 대해 되새김질하는 내용이다.

이처럼 여러 감독들이 사랑한 말러 교향곡 5번의 4악장, 아다지에토는 말러가 19살 연하의 아내 알마 쉰들러를 향해 바친 낭만적인 곡이다. 그러나 말러는 이후 계속 사양길을 걷게 되는데, 첫 딸이 죽은 후, 알마의 외도가 계속되자 말러는 정신과 상담을 받다가 몇 년 후 지병인 심장병으로 숨을 거두고 만다. 그래서 말러 교향곡 5번은 콘텍스트적 맥락에서 어쩐지 불길한 예감을 내포하고 있는 곡이기도 하다.

‘헤어질 결심’에서는 서래 남편의 죽음, 즉 서래와 해준의 사랑과 이별을 동시에 예견하는 곡으로 사용되었고, ‘타르’에서는 커리어의 정점에서 내리막길로 향하는 리디아의 위치를 암시한다. 말러 신드롬을 일으킨 장본인이자 극중 타르의 롤모델이기도 한 레너드 번스타인이 지휘한 말러 교향곡을 먼저 들어본다면 더 의미 있는 영화 감상이 될 것이다.
 
윤성은의 Pick 무비
누구에게나 가능한 구원 ‘더 웨일'

아카데미 시상식을 아무런 이해 관계 없이 보게 된 게 몇 년만인가. 2020년 ‘기생충’(감독 봉준호)이 여섯 개 부문의 후보에 오르고 작품상까지 거머쥔 후, 2021년도에는 윤여정(‘미나리’)씨가 여우조연상을 수상했고, 작년에는 그녀가 남우조연상을 발표하기 위해 다시 무대 위에 섰다. 올해는 기대작이었던 ‘헤어질 결심’(감독 박찬욱)이 최종 후보에 오르는데 실패하면서 아쉽게도 한국영화인을 아카데미 무대에서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올해 아카데미 후보작들을 살펴보면, 블록버스터부터 독립영화까지, 리얼리즘 영화부터 SF 영화까지, 다채롭게 구성되어 있을 뿐 아니라 각 작품의 완성도나 의미도 매우 뛰어나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2년 이상 주춤했던 영화산업이 다시 일어나고, 개봉 편수도 많아진 까닭이다. 그 중에서도 멀티버스 세계관을 바탕으로 중국계 이민자들이 삶과 가족의 의미를 되찾아가는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감독 다니엘 콴, 다니엘 샤이너트)가 10개 부문에서 11개(명)의 후보를 냈고, ‘서부 전선 이상 없다’(감독 에드워드 버거)와 ‘이니셰린의 밴시’(감독 마틴 맥도나)가 9개 부문의 후보에 오르면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작품상을 제외한 두어 개의 후보에 오르는데 그쳤음에도 주목할 만한 작품들이 있다. ‘더 웨일’(감독 대런 아로노프스키)은 남우주연상의 강력한 후보이자 대중들에게 추천하기에 무리가 없는 작품이다.

272킬로그램의 거구인 ‘찰리’(브렌든 프레이저)는 온라인 대학 강사로 집 안에서만 살아가고 있다. 그의 유일한 친구인 간호사 ‘리즈’(홍 차우)는 찰리의 건강 상태가 몹시 악화되었음을 직감하지만, 찰리는 병원에 가기를 거부한다. 대신 찰리는 오랫동안 인연을 끊고 살았던 딸 ‘엘리’(세이디 싱크)에게 연락해 매일 찾아와서 에세이를 완성시키면 전재산을 주겠다고 말한다. 엘리는 자기가 어릴 적 아내와 딸을 버리고 동성 애인과 떠나 버린 아빠에 대한 원망이 가득하지만 찰리의 부탁을 들어준다. 그렇게 가족들이 얼굴을 마주하면서 이들은 오랜 앙금을 털어내기 시작한다.

2012년 초연된 동명 연극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에는 찰리의 집이라는 고정된 공간에 단 6명의 인물만 등장한다. 그럼에도 이들이 번갈아 나누는 대화나 감정은 대작들에 버금갈 만큼 심오하다. 영화에서는 큰 상처와 갈등으로 관계가 얼룩져 있던 가족들이 화해할 수 있을까 라는 세속적 질문과 어떠한 과오와 실패가 있었던 인간도 구원받을 수 있을까 라는 종교적 질문을 동시에 던진다.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주조연급 등장인물들이 모두 한 번씩 눈물을 흘린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 각자가 가장 큰 슬픔을 느끼는 순간이기에 모두 다른 감정이 녹아 있다. 그 눈물에는 거짓이나 과장이 없고, 관객들에게 억지로 따라 울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관객들 스스로 그 인물들에 이입하며 눈시울이 붉어질 뿐이다. 사랑, 용서, 화해, 구원 등 인류가 끊임없이 고민해왔으나 답을 얻지 못했던 주제들로 따뜻한 정찬을 차려낸 작품이다.
 
<필자소개>
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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