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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Prologue!  
여성 국극의 귀환
김보람
입력 2023-03-17 10:51 수정 최종수정 2023-03-20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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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국극의 귀환
 
올 3월에는 계획이 있었다. 국립창극단의 신작 창극을 보러 가는 것이었다. 만화나 소설 원작의 공연이 무대에 오르는 것은 흔한 일이 되었으나, 웹툰을 창극으로 만드는 것은 보기 드문 시도이니 꼭 한 번 봤으면 싶은 공연이었다. 예매가 시작된 것을 알았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공연 횟수도 많고, 아이돌이 출연하는 뮤지컬도 아니고… 하는 안일한 생각. 덕분에 3월의 공연 나들이는 무산되었다. 창극 <정년이>는 공연 두 달을 앞두고 전 석 매진되었으며, 추가로 오픈한 3회차 공연의 관람권도 순식간에 동이 났다.
 

<창극 정년이 (출처: 국립극장)>
 
웹툰 <정년이>는 1950년대 대중을 휘어잡았던 '여성 국극'을 소재로, 국극 배우를 꿈꾸는 소녀 윤정년의 성장 이야기를 담고 있다. 흔치 않은 소재와 매력적인 등장인물들, 탄탄한 서사와 흠 잡을 데 없는 그림까지. 호평 일색인 댓글과 높은 평점, 연재 후에도 사그라들지 않는 인기로 단행본 출간과 창극 및 드라마 제작 소식이 연이어 전해지고 있다. 유튜브의 여성 국극 영상에 달린, 웹툰을 보고 찾아왔다는 댓글들이 양질의 콘텐츠가 일으키는 선순환을 증명한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여성 국극은 대체 무엇일까? 왜 요즘은 찾아보기 힘든 공연이 된 것일까?
 
'여성 국극'은 모든 배역을 여성 출연자가 맡아 공연하는 창극을 이르는 말이다. 창극은 한때 우리나라 고유한 형식의 연극이라는 뜻에서 '국극(國劇)'이라 불렸다. 1962년 국립창극단의 창단 당시 이름도 '국립국극단'이었다. 여성 국극은 박녹주, 김소희, 박귀희, 임춘앵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여류 명창들이 뜻을 모아 결성한 ‘여성국악동호회’를 시발점으로 본다. 이들은 1948년 춘향전을 소재로 한 창립 공연 <옥중화>를 시작으로, 한국 전쟁 중에도 대중의 열화와 같은 성원 속에 공연을 이어갔다. 소리꾼과 고수가 전부인 판소리와 달리, 수십 명이 무대에 올라 화려한 세트를 배경으로 노래와 춤을 선보였다. 기존 창극에 비해 소재도 훨씬 다채로웠다. 대중의 입맛과 눈높이에 맞춤하게 만든 여성 국극에 관객들은 열렬히 화답했다. 인기와 비례해 늘어난 수입은 동호회를 와해시키는 결과를 낳았고, 모임을 떠난 이들이 각자 만든 국극단 수가 열 곳을 훌쩍 넘기기도 했다.
 
그로부터 10년 남짓 전성기를 구가했던 여성 국극의 쇠퇴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존재한다. 한정된 전문 인력에 비해 늘어난 작품 수, 예술적 기량이 충분하지 않은 출연진의 기용, 볼거리에 치중한 작품 제작, 예산 관리 등에 취약하여 겪게 된 운영난, 인기 배우들의 은퇴, 영화나 TV 같은 대중 매체의 출현 등등. 대중예술로 구분되었던 여성 국극은 전통 예술 지원 정책의 대상에서도 제외된 채 쓸쓸히 무대 밖으로 밀려났다.
 
2013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왕자가 된 소녀들>에는 여성 국극에 평생을 바친 노배우들의 십 년 전 모습이 담겨 있다. 주류에서 멀어진 지 오래이나 7, 80줄에 들어선 그들은 여전히 모임을 하고 간간이 공연을 하며 여성 국극의 명맥을 이어간다. 2012년 타계한 여성 국극의 왕자 조금앵 역시 영화 속에서 팔십의 노구를 이끌고 무대에 오른다. 웹툰의 글작가는 남역 전문 배우였던 그가 팬의 요청으로 결혼사진을 찍어준 일화를 비롯해, 실존 인물들이 웹툰 속 캐릭터의 모티브가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차별과 제약이 뚜렷이 존재하던 시절, 유리천장을 뚫고 솟구쳐 올랐던 시대의 영웅들은 이제 그들과 함께 늙어버린 오랜 팬들의 기억 속에만 남아있다. 하지만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 이야기의 소재가 된 여성 국극은 새로운 세대의 팬층을 거느리고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문화유산을 융성하게 하는 길이 한 갈래뿐일 리는 없다. 창극 정년이와 드라마 정년이, 정년이의 무한한 확장과 성공을 기원한다. 

<필자소개>
김보람 씨는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영상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를 졸업했으며, 국립국악원에서 소식지 국악누리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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