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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은의 뮤직 in CINEMA
북산 5인방의 심장박동 같은 음악, ‘더 퍼스트 슬램덩크’
윤성은
입력 2023-02-17 15:3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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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산 5인방의 심장박동 같은 음악, ‘더 퍼스트 슬램덩크’

 


7080 세대들의 학창시절을 즐겁게 해주었던 농구만화, ‘슬램덩크’가 다시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1월 4일에 ‘더 퍼스트 슬램덩크’(감독 이노우에 다케히코, 이하 ‘더 퍼스트’)라는 제목으로 개봉한 극장판 애니메이션 때문인데, 박스오피스를 역주행 하더니 급기야 1위까지 차지했다. 뿐만 아니라 서점가에서는 원작 만화 및 관련 서적들이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캐릭터 굿즈를 판매하는 백화점 팝업스토어 앞에는 개장 전날부터 밤새워 줄을 서는 이들도 많으니 하나의 현상이라 할 만하다. 레트로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오래 되었지만 이제 소비의 주축이 된 세대들이 십대 시절의 추억에 보여주는 애정은 생각보다 더 뜨겁고 진한 것 같다.

‘더 퍼스트’는 북산고와 산왕공고의 경기장면에 송태섭의 성장드라마를 간간이 삽입시키면서 진행된다. 느리고 감성적인 플래시백이 농구경기의 속도감과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측면도 있으나 북산 5인방 각각의 매력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팬들의 가슴을 본격적으로 설레게 하는 것은 다섯 명의 선수가 거친 댓생으로 완성되면서 일본 록밴드 ‘더 버스데이’의 강렬한 음악이 흐를 때부터다. 오프닝곡으로 사용된 ‘LOVE ROCKETS’는 베이스, 드럼, 기타 등 악기가 하나씩 추가되면서 시작되는데, 음악에 맞춰 선수들의 이미지가 하나씩 만들어지도록 연출되었다. 연주도 좋지만 보컬의 독특한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에너지가 산왕전이 시작되기 직전의 긴장감을 한껏 끌어올려준다. 북산 5인방의 심장박동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곡이다.
 
또한, 1997년에 결성된 일본 록밴드 ‘텐피트’가 부른 ‘제ZERO감’은 뒤쳐졌던 북산고의 역공 장면과 엔딩에 삽입되었다. ‘더 퍼스트’를 위해 2년이나 공을 들여 만들어진 곡인 만큼 치열한 경기의 박진감과 열기에 오차 없이 접착되어 있어 관객들의 머릿속에도 오래 남는다. 영화가 끝난 후 음악만 들어도 슬램덩크의 감동을 다시 살아나는 것은 물론이다. ‘슬램덩크’ TV판에서 사용되었던 ‘세상이 끝날 때까지는’와 비교해서 들어보면 ‘더 퍼스트’의 훨씬 빠르고 격렬해진 경기 장면 컨셉을 더 확실히 이해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윤성은의 Pick 무비
 

바빌론 같았던 영화사, 바빌론 같은 영화, ‘바빌론’



영화 호사가들 사이에서 올 상반기 최고의 기대작 중 한 편으로 꼽혔던 ‘바빌론’(감독 데미안 셔젤)이 지난 1일, 베일을 벗었다. ‘위플래시’(2014), ‘라라랜드’(2016)로 잘 알려진 데미안 셔젤 감독과 브래드 피트, 마고 로비의 만남이라는 크레딧만으로도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다음 달 12일에 개최되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도 3개 부문 후보에 올라있다. 그러나 거기에 감독이나 배우들의 이름은 없다. 현지 평단의 반응도 엇갈리는 편이다. ‘아티스트’(감독 미셸 하자나비시우스, 2011), ‘헤일, 시저’(감독 조엘 코엔, 에단 코엔, 2016), ‘맹크’(데이비드 핀처, 2020) 등 할리우드 영화사의 한 때를 조명했던 작품들이 아카데미 회원들, 혹은 적어도 비평가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바빌론’은 유성영화의 시대로 넘어오기 직전(1926년)부터 시작해 이 시기를 반추한 기념비적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감독 진 켈리, 스탠리 도넌)가 극장에 걸렸던 1952년에 끝이 난다. 영화의 첫 번째 시퀀스에서 ‘매니’(디에고 칼바)는 할리우드 유명인사들의 파티를 위해 코끼리를 고용주의 집으로 끌고간다. 코끼리가 언덕을 올라가지 못하자 조련사는 코끼리의 엉덩이를 자극해 배변을 하게 만드는데, 코끼리가 싸지르는 그 분변을 쫄딱 맞고 만다. 말 그대로, 더럽게 웃기는 이 장면은 바로 이어 등장하는 퇴폐적 파티와 비정상적인 영화인들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포석이다. 영화 촬영장에서 누군가는 꿈을 보고, 누군가는 돈을 벌고, 누군가는 인기와 명예를 얻지만 교만과 욕망으로 가득차 있었던 그들의 삶은 이미 비참한 몰락을 담보하고 있다. 한편, 영화 후반부에서 ‘넬리’(마고 로비)는 할리우드 투자자들의 고상한 면상에 구토를 해대기도 하는데, 이는 모든 종류의 위선에 대한 감독의 정직한 반응이자 태도라는 점에서 코끼리의 분변과도 맞닿는 데가 있다.
 
영화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가장 중요하고 세계적인 도시였으나 일순간에 멸망해 버린 향락의 바빌론처럼, 무성영화기를 꽃 피워던 할리우드 시스템과 스타들도 새로운 시대 앞에서 명멸하듯 사라져 버렸다고 말한다. ‘잭’(브래드 피트)과 넬리, 매니의 운명은 그 씁쓸함을 그대로 느끼게 한다. 안타까운 것은 이 영화의 서사도 바빌론이라는 도시 운명의 하락 곡선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중반을 한참 넘어서까지 개성 있는 캐릭터와 블랙코미디로 영화적 쾌감을 극대화시키던 ‘바빌론’은 마지막 부분에서 패기도 논점도 잃고 무너져 내려버린다. 초반부터 몇 차례 레퍼런스로 사용한 ‘사랑은 비를 타고’의 주요 장면을 다시 한 번 통으로 삽입시키면서 감성을 자극하려 애쓰는 에필로그는 감독조차 이야기의 결론을 맺지 못해 갈팡질팡 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영화사의 변혁기에 사라져버린 스타들을 향한 애도와 영화 매체에 대한 애정이 크고 작은 균열을 일으키다가 결국 바벨탑을 붕괴시킨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봐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갈등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물론 추천 쪽이다. 실망스러운 뒷부분을 제외한다면 전반적으로 즐거운 작품이므로. 그리고 영화가 사라질 것이라 말하는 시대에 유의미한 쟁점들을 던져주므로. 많은 이들이 영화를 보고 이 논쟁에 동참했으면 좋겠다.
 
<필자소개>
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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