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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원의 커튼 콜
도시괴담속 알싸하고 삐딱한 현대사회 풍자의 재미를 즐긴다_뮤지컬 스위니 토드
원종원
입력 2023-02-14 09:2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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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괴담속 알싸하고 삐딱한 현대사회 풍자의 재미를 즐긴다_뮤지컬 스위니 토드

 스위니 토드 공연 장면  <사진제공 : 오디컴퍼니>

산업혁명 이후, 가파른 경제성장과 더불어 자본주의의 발호와 빈부격차의 심화, 그리고 계급사회의 폐해가 드러나기 시작했던 영국은 그야말로 전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용광로였다. 지금도 런던을 여행하면 그 시절의 모습을 따라 거닐어보는 것만큼 흥미로운 것이 없을 정도다. 물론 유럽에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이유도 비슷하다. 바로 역사를 직접 밟아보며 느낄 수 있는 시간여행의 묘미다.

절대왕권을 둘러싼 끔찍한 영국 역사의 배경이 된 런던 타워와 타워 브리지, 세계 표준시로 유명한 그리니치 전망대, 레스터 스퀘어나 옥스퍼드 써커스같은 인파 가득한 도심 풍경, 영화 제목으로도 유명한 노팅힐, 산책하기 좋은 햄스테드 히스, 하루종일 딤섬을 파는 차이나 타운과 트렌디한 소호 거리, 버킹검궁, 하이드 파크, 과학사나 자연사박물관, 테이트 모던, 코벤트 가든 등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바쁜 관광명소가 즐비하지만, 역사적인 대도시의 빛과 그림자를 체험하고 싶다면 꼭 추천하고 싶은 특별한 길이 있다. 바로 런던 구시가의 플리트 스트리트다.

한때는 영국의 언론사들이 밀집해있는 신문의 거리로 유명했다. 조판을 짜서 인쇄기로 신문을 찍어내던 시대엔 온갖 정보와 사람들이 몰려드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꼬불꼬불 이어지는 울퉁불퉁 돌바닥이나 골목길에는 오래된 상점이나 노포들도 많고, 저마다 사연 가득해 보이는 예스런 풍경이 해리 포터에나 나옴직한 마법사의 마을 – ‘다이아곤 벨리’로 통할 것 같은 느낌마저 보여준다. 바로 뮤지컬 ‘스위니 토드 – 플리트 스트리트의 악마 이발사’의 배경이 됐던 장소다.

런던의 이발사 벤자민 바커는 아름다운 부인, 어린 딸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마을의 유지이자 귀족인 터핀 판사는 바커 부인의 미모를 탐했고, 결국 억울한 누명을 씌워 그에게 유배형을 내린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런던으로 돌아온 그에게 이발관 아래층 파이가게 주인 러빗부인이 부인은 겁탈을 당한 뒤 스스로 세상을 떠났고, 그의 딸 조안나는 판사의 수양딸이 되었으며, 설상가상으로 판사가 그 딸과 결혼하려 하고 있다는 기가 막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복수심에 불타게 된 바커는 자신의 이름을 스위니 토드로 바꾸고, 언젠가 이발소에 면도를 하러 찾아올 판사에게 죽음을 선물하기 위해 연습삼아 무작위로 연쇄살인 행각을 벌이게 된다. 사건이 더욱 기괴하게 전개됐던 것은 러빗 부인이 시체들을 유기해 고기파이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팔았던 것인데, 당시 육류를 먹기 어려웠던 빈민층이나 피지배계급 사람들에게 값싸고 고기 가득한 파이를 공급했기 때문이다. 마침내 성공을 하지만, 복수에 눈이 멀어 주변을 알아보지 못했던 스위니 토드의 사연이 반전을 이루며 한탄을 자아내는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특별한 이 뮤지컬만의 묘미를 잉태해낸다.

스위니 토드 공연 장면  <사진제공 : 오디컴퍼니>

뮤지컬이 인기를 누리면서 ‘무차별 살인’을 자행한 이발사와 그 사체로 인육파이를 만들어 팔았다는 파이가게 사연이 실제 있었던 사건인가가 애호가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물론 실제라 믿는다면 억측에 불과하다. 이 이야기는 사실 오래된 도시의 뒷골목에서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괴담 수준의 소문들을 짜깁기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와 관련된 가장 오래된 자료는 ‘더 스트링 오브 펄스(The string of Pearls)’라는 매체에 1846년부터 일 년여에 걸쳐 연재되었던 3류 괴기소설이다. 정론지와 대중지의 구분이 명확한 영국의 매체 환경을 감안하자면, ‘카더라’ 통신의 ‘믿거나 말거나’ 식의 괴담에서 파생되어진 문화콘텐츠라 부를만 하다. 물론 그런 배경 탓에 뮤지컬은 사건 그 자체의 진실여부가 중요하다기보다 이 과정에서 문뜩문뜩 눈치 채게 되는 인간성 말살에 대한 풍자, 복수에 눈이 어두워 진실을 보지 못하는 인간의 불완전함에 대한 비판, 산업혁명 이후 극명하게 대립되던 계급 갈등과 빈부 격차 그리고 대도시의 사악함에 대한 날선 은유 등에 더욱 뒷맛이 진하게 남는 체험이 가능하다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선 무대보다 뮤지컬 영화로 먼저 각광을 받기도 했다. 괴짜 감독 팀 버튼이 2007년 발표했던 동명 타이틀의 뮤지컬 영화가 큰 인기를 누렸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면밀히 따지자면 물론 영화보다 무대가 훨씬 앞섰다. 뮤지컬이 만들어진 것은 1979년이고, 영화는 이보다 30여년 뒤인 2007년에 개봉했다. 사실 뮤지컬의 세계적 인기를 고려해본다면 뮤지컬 영화의 등장은 오히려 다소 뒤늦은 감조차 없지 않다. 팀 버튼은 학창시절부터 이 작품에 관심이 많았다는 후문도 있는데, 이런 탓인지 영화에는 원작 뮤지컬에 대한 팀 버튼 해박한 지식과 심도있는 표현이 덧붙여져 더욱 그로테스크한 재미를 담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팀 버튼의 페르소나라는 조니 뎁이 스위니 토드로, 또 ‘전망좋은 방’이나 ‘해리 포터’ 시리즈, 뮤지컬 영화 ‘레 미제라블’에서 인상 깊은 조연으로 완성도를 더해주던 헬레나 본햄 카터가 러빗 부인으로 등장해 환호를 이끌어냈다.

지금은 명을 달리한 ‘해리 포터’의 스네이프 교수 앨런 릭먼도 터핀 판사역으로 나왔다. 하지만, 영화는 뮤지컬의 영상적 재연이라기보다 팀 버튼 방식으로 재해석된 이색적인 전개를 선보였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그래서 영상을 보면 오히려 무대가 궁금해지고, 또 반대로 무대를 알면 영화의 파격이 더욱 알고 싶어지는 별스런 즐거움을 잉태해냈다고 평가할 만하다.

결코 대중적이라고 볼 순 없지만, 특별한 매력으로 화제를 몰고 다니는 뮤지컬 작품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특히, 뮤지컬은 젊은 여성 관객이 대부분이요, 솜사탕식 사랑 이야기뿐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참으로 특별하고 유별난 존재다. 뮤지컬에는 으레 드레스 입은 궁중 무도회가 등장하고, 왕가의 비리나 귀족들 연애담이 펼쳐질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일단 한번 보고’ 이야기하자 시비라도 걸고 싶다. 꼭 공연장을 직접 찾아보길 진심으로 추천한다.
 
<필자소개>
원종원씨는 한국외대 재학 시절, 영국을 여행하다가 만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활동을 시작했다. 뮤지컬 저변을 확대하고자 국내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를 결성, 관극운동을 펼쳤다. TV의 프로듀서와 일간지 기자,특파원을 거쳤으며, 현재 일간지와 경제지 등 여러 매체에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대학(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 강단에 서고 있는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컬 마니아이자 전문 평론가로 지면과 방송 등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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