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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준의 클래스토리
직캠의 매력을 담아
박병준
입력 2023-02-06 11:43 수정 최종수정 2023-02-06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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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캠의 매력을 담아

‘직캠’이라는 단어, 많이 들어보셨나요? 직캠은 ‘직접 촬영한 동영상’을 줄인 말입니다. 우리가 캠코더나 휴대전화기를 이용해 촬영하는 모든 동영상은 사실 직캠인 셈인데 일반적으로 이 말은 한 개인이 가수의 공연 혹은 리허설 현장을 직접 촬영한 영상을 가리킵니다. 여러 대의 카메라를 이용해 다채로운 화면을 담아내는 방송 화면과는 달리 직캠은 대부분 한 가수의 모습만 계속해서 담아냅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방송 화면에는 비춰지지 않는 그들의 모습을 가감없이 담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고 흥미롭지요. 이 특별함은 구성원이 여러 명인 아이돌 그룹인 경우 더 커집니다. 

사실, 개인이 이렇게 촬영한 직캠을 공유하는 것은 초상권 문제로 비화될 수 있지만 직캠 자체가 홍보에 도움이 되고 팬층을 더욱 두텁게 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크게 문제삼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물론 모든 대중 음악 공연에서 직캠이 허용되는 것은 아니지요.
외국에서는 팬캠(Fancam)이라고 불리우는 이 직캠. 클래식 음악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요? 현재 클래식 음악 공연 도중에 한 개인이 허락없이 공연 장면이나 연주자를 촬영하는 것은 엄격하게 금지됩니다. 청중이 자유롭게 촬영이 가능한 때는 공연 순서가 다 끝난 후 이루어지는 커튼콜 정도이지요. 비록 개인이 좋아하는 음악가의 공연을 자유롭게 촬영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어도 일부 클래식 음악 영상물에는 직캠의 매력을 가득 담은 기능이 존재합니다. 

바로 멀티 앵글(Multi Angle) 기능인데 이 기능은 주로 오케스트라 공연 영상물에 존재합니다. 이 기능을 활성화시키면,지휘자를 비추는 카메라, 일명 지휘자 카메라(Conductor Camera)를 통해 영상물 속 공연 내내 지휘자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청중석에서 바라보는 지휘자의 모습이 아닌,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바라보는 지휘자의 모습입니다.

지휘자 카메라의 한 예. 지휘자 리차드 판스(Richard Farnes)가 장장 15시간 가까이 걸리는 바그너의 니벨룽엔의 반지 전곡을 지휘하는 영상을 담았다.
(스크린샷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JWhRThHJGoE)


이 기능의 장점은 무엇일까요? 우선 지휘자가 오케스트라를 어떻게 이끌고 가는지 세세하게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습니다. 지휘자가 각각의 악기군에 어떻게 사인을 주는지, 템포나 다이나믹이 변화하는 부분에서 자신의 의도를 어떤 방식으로 전달하는지 등을 볼 수 있지요. 또 오케스트라 앙상블이 간혹 흐트러질 때나 실수가 있을 때 지휘자가 어떻게 대처하는지도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장점은 지휘자의 표정을 계속해서 살펴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일반적인 영상에서도 지휘자의 표정은 자주 잡히곤 하지만 그 표정이 다른 각도의 화면들이 지나가는 가운데 중간중간 등장하는 것과 한 작품이 연주되는 내내 비춰지는 것은 상당한 차이가 있지요. 작품의 흐름에 따라 지휘자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고통과 환희 같은 감정들을 계속 따라가다보면 이것이 때로 그 어떤 화려한 앵글보다도 더 극적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영상물로 클라우디오 아바도(C. Abbado, 1933-2014)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베토벤(L. v. Beethoven, 1770-1827)의 교향곡들을 들 수 있습니다. 2001년 2월 로마에서 촬영된 영상물 중 교향곡 3, 5, 6, 7번에 지원되는 멀티 앵글을 통해 그의 지휘 모습을 잘 볼 수 있지요. 당시 한창 위암 투병 중이어서 부쩍 수척해진 그의 모습을 보는 것이 안타깝지만 동시에 야윈 얼굴에 선명하게 드러나는 그의 표정 변화는 감상자를 한껏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특히 교향곡 5번 중 3악장에서 4악장으로 넘어가는 순간과 교향곡 6번 5악장의 절정에서 보여지는 그의 표정은 큰 감동으로 다가오지요.

지휘자 카메라로 한 지휘자를 관찰한다고 할 때 어떤 지휘자의 모습이 가장 매력적일까요? 물론, 이에 대한 대답은 각자가 다를 것이지만, 한 지휘자의 이름은 많은 이들에게 언급되지 않을까 합니다. 바로 카를로스 클라이버(C. Kleiber, 1930-2004)입니다. 보는 이를 빠져들게 하는 리드미컬한 그의 지휘 모습은 늘 회자되곤 하는데 그의 지휘 모습만을 담은 영상은 몇 개 존재합니다. 정식으로 출시된 영상물은 아니며 유튜브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영상들은 모두 오페라를 지휘하는 그의 모습을 담은 것인데, 1970년대 중반 바이로이트에서 지휘한 바그너(R. Wagner, 1813-1883)의 트리스탄과 이졸데(Tristan und Isolde) 공연 일부분과, 1994년 빈에서 지휘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 Strauss, 1864-1949)의 장미의 기사(Der Rosenkavalier) 공연 전체입니다. 

대부분 이 영상들은 오페라 극장에서 지휘자를 직접 볼 수 없는 곳에서도 지휘를 볼 수 있도록 지휘자 정면에서 촬영한 모니터 영상인데 화질도 음질도 좋지 않지만 더없이 귀중한 기록임에는 틀림없지요. 각각 3시간이 넘게 걸리는 이 길고 복잡한 작품들을 클라이버가 성악진과 오케스트라를 조율하며 이끄는 모습은 감탄을 불러 일으킵니다. 한 영상에서는 장미의 기사를 지휘하는 도중 성악진의 큰 실수가 나오자 클라이버가 실망한 나머지 지휘하면서 얼굴을 감싸쥔다거나 칼로 자신의 가슴을 찌르는 듯한 동작을 취하는 등 일반적인 영상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모습을 볼 수 있기도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liFpkJyRAM).

여러 장점들을 갖춘 흥미로운 기능인 멀티 앵글. 무척이나 아쉬운 점은 이러한 기능을 갖춘 클래식 영상물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대중음악 영상물에서는 ‘멀티’라는 명칭에 걸맞게 선택할 수 있는 앵글의 수도 더 많지만 클래식 음악 영상물에서는 그 명칭이 무색하게 지휘자 앵글 정도가 추가되는 것도 아쉽지요. 대중 음악에서는 공연을 생중계하며 멀티 앵글 기능을 지원하기도 하는데 이런 시스템이 클래식 음악 공연에도 도입되면 어떨까 상상해 봅니다. 귀중하고 흥미로운 기록들을 정식 영상물에서 더 많이 만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희망합니다.

추천영상: 본문에서 언급한 클라이버의 영상입니다. 1994년 빈에서 공연한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장미의 기사 중 3막입니다. 무대 화면과 클라이버의 지휘 모습을 동시에 볼 수 있어서 가치있는 영상이지요. 극의 절정을 이루는 유명한 3중창과 이어지는 듀엣 장면에서의 그의 지휘 모습은 감상자를 더 몰입하게 합니다. (47분 45초부터 시작). 화질과 음질이 최상은 아니어서 아쉬운데, 이 영상이 정식 영상물로 출시되면 어떨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9di4OoE7FE

<필자소개>
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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