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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리엘 김의 모멘텀 클래식
잊힌 악기, 안 잊힌 음악
아드리엘김
입력 2023-01-26 11:41 수정 최종수정 2023-01-27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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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에 대하여

△아르페지오네를 연주하고 있는 모습

작곡가 슈베르트는 연가곡집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를 작곡한지 얼마 되지 않아 1824년 11월 '아르페지오네 소나타(Arpeggione Sonata, D. 821)'를 세상에 내놓았다. '아르페지오'가 화음을 분산시켜 연주하는 주법이다 보니 아르페지오 연주가 강조된 작품으로 추측하기 쉬울 터. 하지만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는 빈의 악기 제작자 슈타우퍼(J.G. Stauper)가 개발한 '아르페지오네'라는 악기를 위해 쓰여진 곡이다.  결국 악기의 이름이 작품 제목으로 사용된 것.

기타 첼로(Guitarre-Violoncell)로 불리기도 했던 아르페지오네는 기타의 프렛 지판에 첼로를 연주하는 듯 악기를 세워 여섯 현을 활로 마찰시켜 연주하는 찰현악기 형태로 두 악기의 속성이 결합된 악기다.  따뜻한 음색의 내성적인 성향의 악기로 음량이 크지 않은 대신 감미롭게 감성을 자극하는 소리로 '사랑의 기타'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19세기 초는 혁신적인 악기 제작 붐이 일었던 시기였는데 당시에 아르페지오네를 닮은 비슷한 악기들이 여렷 존재했다고 한다.

화음 연주에 용이하고 폭넓은 음역대를 자랑했으며 독일 언론으로부터 "bezaubernd schön(매혹적으로 아름다운)"이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는 이 악기는 현재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을까? 아쉽게도 19세기 초, 10년 남짓 잠시 주목을 받던 이 악기는 역사의 뒤안길로 빠르게 자취를 감춘다. 

역사적으로 볼 때 19세기 초, 철혈 재상으로 불렸던 메테르니히가 주도한 빈 회의 이후 시민들의 대외활동이 제약을 받으며 소규모의 살롱 연주회가 성행하던 시점에 작은 음량에 감미로운 사운드가 매력적인 아르페지오네는 꽤 괜찮은 선택지였을 터. 숙련된 비르투오소 빈센츠 슈스터(Vincenz Schuster)의 위촉으로 아르페지오네 소나타가 작곡되었고 1824년 11월 초연 무대와 더불어 슈미트, 비른바흐와 같은 몇몇 작곡가들이 아르페지오네의 보급에 힘을 보태며 이 악기를 위한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낭만시대에 접어들며 대규모 편성의 오케스트라가 대세를 이루며 자연스럽게 음량이 풍부한 악기들을 선호하게 되었다. 결국 음량의 한계가 명확한 아르페지오네가 금새 설자리를 잃어버린 건 당연한 귀결.

사실 음악사에서 철저히 잊혀진 이 생소한 악기의 존재를 현대인에게 각인시킨 유일한 작품이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작품은 현재 첼로, 비올라의 주요 레퍼토리이자  슈베르트의 실내악 작품을 대표하는 명곡으로 손꼽히기 때문이다.

이 곡이 첼로나 비올라의 음역대와 정확히 일치하지 않으며 특히 첼로 연주에 있어서 고음역대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여간 연주하기 까다롭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뺴놓을 수 없는 낭만파 실내악 레퍼토리로 자리 잡은 이유가 뭘까?  아르페지오네라는 악기의 한계를 뛰어넘은 슈베르트의 천재적인 음악성 때문일 것이다.

이 곡을 작곡했던 당시, 27세의 슈베르트는 잘 알려진 대로 성병에 감염되어 있었고 우울증에 시달리며 극도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는 일기에 "매일 잠자리에 들 때마다 다시 아침에 눈을 뜨지 않기를 바란다"라며 깊은 절망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슬픔을 통해 만들어진 작품이 사람들을 가장 기쁘게 한다"라는 덧붙임과 함께.  현실의 비애가 묻어나는 서정적인 선율과 솟아오르는 희망감이 어우러진 이 작품에서 슬픔을 재료 삼아 천재적인 작품으로 승화시킨 슈베르트의 위대함이 드러난다.

슈베르트 사후 43년이나 지난 1871년 출판된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는 첼로, 비올라 이외에도 수많은 악기로 편곡되며 슈베르트의 진가를 입증했다.
세계적인 첼리스트 고티에르 카푸송은 "이 곡에서 느껴지는 연약하고 섬세한 아름다움이 감동적이다"라고 했으며 이 곡의 음반으로 찬사를 받은 바 있는 비올리스트 앙투안 타메스티는 "쇼를 위한 음악이 아닌 내면적인 음악"이라고 평했다.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는 세 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연주시간은 약 20분 정도로 짧은 편이라 한번에 세 악장을 연달아 들어보길 권한다.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의 주제를 닮은 서정적 선율과  희망찬  2주제의 대비가 아름다운 1악장과 슈베르트의 장기를 잘 살린 가곡 풍의 2악장 그리고 론도 형식의 3악장은 비엔나 풍의 선율과 재기 발랄한 헝가리 민속 음악이 조화를 이루며 지루할 틈이 없다. 시대 속에 잊힌 악기 아르페지오네. 하지만 위대한 작곡가의 음악은 결코 잊혀질 수 없다는 사실.

*추천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A1Y9-ajhMGw

<필자소개> 
아드리엘 김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와 바이올린을 전공, 졸업(석사)했으며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 부지휘자와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역임한바 있다, 현재는 지휘자, 작곡가,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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