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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원의 커튼 콜
대한사람 누구라도 마음 울컥할 감동을 담아내다_뮤지컬 영웅  
원종원
입력 2023-01-06 17:39 수정 최종수정 2023-01-27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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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사람 누구라도 마음 울컥할 감동을 담아내다_뮤지컬 영웅
 
△ 공연장면 1 그날을 기억하라 

2023년 시작부터 무대와 스크린을 통해 같은 뮤지컬이 막을 올려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를 담은 ‘영웅’이다. 대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울컥한 감동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안중근 의사는 1879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향반 지주 출신으로 근대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던 부친의 영향을 받아 유년시절부터 개화된 사고를 지니며 자랐다.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하기 전까지는 교육 계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전력도 있다. 1909년 하얼빈역 1번 플랫폼에서 한국 침략의 원흉이자 동양 평화의 파괴자인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을 당시 의사의 나이는 31살이었다.
 
중국 헤이룽장성(黑龍江省)의 하얼빈 중앙역을 찾아가면 안중근 의사에 관한 기록을 보관하고 있는 박물관이 있다. 그가 남긴 편지와 서책들, 여러 자료들을 지나면 중앙역 내부가 보이는 창문에 도착한다. 유리 너머로 보이는 1번 플랫폼 바닥에는 안중근 의사나 이토 히로부미가 실제 서 있었던 장소를 기록한 동그라미나 세모 같은 표식들이 그려져 있다. 묵직한 현실감으로 느껴지는 엄숙한 순간이다. 안타깝게도 선생의 무덤은 아직 발견조차 못했다. 형장의 이슬로 생을 다한 그의 시신을 일제는 연골을 제거해 무릎을 꿇린 채 관에 담아, 후세 사람들이 찾아볼 수 없게 훼손시키고 아무도 모르게 감춰버렸다는 후문만 무성하다. 세월이 흘러 이제 우리는 안중근 의사가 꿈꾸던 독립된 조국에서 살고 있지만, 아직도 그리고 여전히 우리 주변에는 그릇된 역사관을 지닌 이들의 존재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아 서글프고 안타깝다.
 
뮤지컬은 2010년 안중근 의사의 서거 100주년을 기념해 창작 뮤지컬로 만들어졌다. 명성황후의 시녀였던 설희 캐릭터를 상상해 추가하는 등 제작사인 극단 에이콤의 흥행작 ‘명성황후’와 여러모로 흡사해 혹자는 ‘명성황후’ 후속편 성격을 지닌 것 같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대형 무대를 화려한 비주얼로 포장하고, 보수적인 국가관과 애국심을 마케팅에 활용한다는 측면에서 두 작품 간에는 분명 유사점이 많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여기고 있는 국가 정체성이 사실 선조들의 피와 희생으로 얻어진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절로 숙연해지는 감동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토 히로부미를 향한 총성이 무대를 가를 때면 객석에서 절로 박수가 터져 나오는 분명한 이유다.
 
역사속 기록을 그대로 담아내려 했던 제작진의 의도도 무척이나 흥미로운 매력이다. 역사적인 포살의 순간,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모두 7발의 사격을 가했다. 이중 4발은 이토 히로부미에게, 나머지는 혹시라도 다른 이를 오인했을 경우를 대비해 주변 인물을 겨냥한 것이었다. 무대에서는 실제로 일곱 발의 총성이 울리는데, 전후사정을 알고 보면 마음으로부터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 공연장면 2 저격 현장

뮤지컬 ‘영웅’이 지닌 첫 번째 미덕은 우선 음악에 기인한다. 몇 번만 듣다보면 어느새 입가에 맴도는 선율을 느낄 만큼 매력있다. 특히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결심하는 1막 후반부의 음악들은 그야말로 중독성이 강하다. 뿔 나팔 소리나 규칙적인 템포의 박자감은 마치 마카로니 웨스턴 스타일의 미국 영화음악을 연상케도 하는데 만주 벌판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우리 선조들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절묘한 조화마저 느껴진다. 김지운 감독의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도 살짝 떠오르는 선율과 음악 스타일이다.
 
비주얼적인 완성도는 이 작품이 지닌 또 다른 매력이다. 도시적 이미지나 자연의 풍경을 적절히 활용해 공간감각을 연출해낸다. 파쿠르(Parcour)를 활용한 역동적인 안무와 무대 구성, 철골 구조물을 오르내리며 전개되는 입체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극 전개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도 담아낸다. 일반 대중들에겐 야마카시라는 파쿠르 팀의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이 움직임은 '투사(鬪士)를 위한 코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원래는 군대에서 장애물 통과 훈련을 가리키는 프랑스어인 '파쿠르 뒤 콩바탕(parcours du combattant)'에서 유래된 것인데, 점차 야외 운동 프로그램으로까지 확장된 개념이다. 무대에서 만나는 배우들의 움직임이 기민하고 민첩해 보이는 이유다. 파쿠르의 무대적 적용은 특히 영상을 적절히 활용한 공간 창출과 어우러져 꽤나 만족스러운 시각적 체험을 잉태해낸다. 덕분에 이들이 형상화하는 장면들, 예를 들어 일본 순사와 숨바꼭질을 벌이는 독립투사들의 추격씬 등은 창작 뮤지컬에서 좀체 만나기 힘들던 ‘보는’ 재미를 효과적으로 담아낸다.
 
특히 백미를 이루는 기차 세트의 활용은 잔상이 오래 남는 이 작품의 백미다. 영상으로 표현되던 달리는 기차가 삽시간에 세트로 변환되며 객석의 탄성을 자아낸다. 무대에 실물 크기의 기차가 실제 등장하는 것은 다른 유명 무대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드문 사례다. 우리나라 공연 관계자의 노하우와 창의력이 어디까지 성장했는지 목격할 수 있어 흥미롭다.

 
△공연장면3 추격

뮤지컬 ‘영웅’은 중국 하얼빈 현지에서 막을 올리는 기념비적 성과도 이뤄냈다. 이제는 비행기로 두 시간 남짓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지만, 서슬 퍼런 일제 시절, 몇 날 며칠 동안 동토(凍土)를 횡단하는 열차를 타고 그곳에 다다랐을 독립투사들의 마음을 떠올리면 그야말로 숙연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뮤지컬에 등장하는 노랫말처럼, “타국의 태양, 광활한 대지”에서 “장부가 세상에 태어나 큰 뜻을 품었으니 죽어도 그 뜻 잊지 말자고 하늘에 맹세”했던 선열들의 애국심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무대로 그리고 영화로 그 숭고한 정신을 기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아이들에겐 교육적인 목적에서라도 꼭 보여주고 싶은 창작 뮤지컬이다.
 
영화와 무대의 흥행을 저울질하는 언론들도 있다. 솔직히 무의미한 비교다. 1950년대 뮤지컬 영화들과 달리 요즘 만들어지는 영상용 콘텐츠는 무대와 ‘효과적인 거리두기’를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대를 본 관객들은 영화의 ‘파격’이 궁금해 상영관을 찾고, 영화의 리얼리즘을 즐긴 사람들은 원작 무대의 ‘진정성’을 느껴보려 공연장을 찾는다. ‘시카고’가 그랬고, ‘맘마미아!’나 ‘레 미제라블’도 뮤지컬 영화가 흥행할수록 공연의 관객이 늘어나는 결과를 가져왔다. 우리 창작 뮤지컬 ‘영웅’은 어떤 새로운 기록을 달성하게 될까. 궁금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려본다.
 
<필자소개>
원종원씨는 한국외대 재학 시절, 영국을 여행하다가 만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활동을 시작했다. 뮤지컬 저변을 확대하고자 국내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를 결성, 관극운동을 펼쳤다. TV의 프로듀서와 일간지 기자,특파원을 거쳤으며, 현재 일간지와 경제지 등 여러 매체에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대학(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 강단에 서고 있는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컬 마니아이자 전문 평론가로 지면과 방송 등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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