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개최된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아바타: 물의 길’(감독 제임스 캐머런, 2021) 편집 영상이 약 18분간 공개되었다. 2009년작 ‘아바타’(감독 제임스 캐머런)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관객이 극장에서 본 영화로 알려져 있기에 13년만에 공개된 2편에 대한 관심 또한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2편에서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나비족이 된 제이크 설리와 아내 네이티리의 모험이 다시 한 번 펼쳐지는데,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판도라 행성의 바닷속이 주요 공간이다. 2편의 수중 액션 신은 13년 동안 진화된 혁신적 CG 기술로 구현되어 1편이 개봉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관객들에게 새로운 영화적 경험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1편의 음악은 기존 SF 장르의 영웅 서사를 따르면서도 ‘아바타’ 시리즈가 추구하는 환경 및 민족문화 보존이라는 주제에 충실한 방향으로 작곡됐다. 음악감독이었던 제임스 호너는 민족 음악학자와 함께 작업하면서 나비족의 테마들을 만들어냈는데, 영화 후반부, 나비족이 이크라와 말을 타고 출격하는 장면부터 인간의 최첨단 병기들과 맞붙는 장면에는 클래식 악기들에 말발굽 소리, 이크라가 내는 소리, 나비족의 언어, 물소리 등을 뒤섞어 자연의 모든 생명체가 연결되어 있는 판도라 행성의 공간 및 나비족 전투의 특수성을 잘 살려냈다.
제임스 호너는 제임스 캐머런 감독과 작업해 오면서 ‘타이타닉’(1997)의 음악도 담당한 바 있는데, 스코어 뿐 아니라 그 해 최고의 오리지널 송이었던 ‘My Heart Will Go On’을 윌 제닝스와 함께 작곡해 오스카상과 그래미상, 골든 글로브상까지 모두 거머쥐었다. 안타깝게도 그는 2015년에 경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했는데, ‘아바타: 물의 길’의 음악은 그의 동료였던 영국 출신 작곡가, 사이먼 프랭글랜이 맡았다. 1편의 테마들을 어떻게 편곡했을지, 바닷속 자연의 소리와 오케스트라는 어떻게 조화시켰을지 궁금하다. 사이먼 프랭글랜 역시 스코어 뿐 아니라 대중음악에 뛰어난 작곡가이므로 2편의 오리지널 송 또한 기대해 봐도 좋을 것 같다.
윤성은의 Pick 무비 그 달던 복숭아는 어디에서 왔을까, ‘알카라스의 여름’
정보통신기술의 융합을 통해 이루어지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1차산업 종사자들의 이야기는 낯설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땀방울 없이는 우리 앞에 단 한 번의 식탁도 차려지지 못했을 것이다. 복숭아 농장을 일구며 살아가는 대가족의 이야기, ‘알카라스의 여름’(감독 카를라 시몬)은 감독의 말처럼 ‘누구에게나 가족이 있고, 모든 나라에 농업이 있기에’ 보편적인 주제를 전달하고 있는 영화다. 농장일이나 농촌 생활에 무지한 사람이라도 등장인물들 한 사람 한 사람에 공감하고 이입하도록 만드는 연출력에서 올해(72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 수상작의 위엄이 느껴진다.
복숭아 농장과 가족이 삶의 전부인 키메트는 부모님과 아내, 3남매의 가장으로서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다. 여동생 부부와 아이들도 자주 키메트를 방문해 농장은 북적대기 일쑤다.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햇살처럼 이들의 삶에는 에너지가 넘치고, 잘 익은 복숭아처럼 가족들의 관계도 단단해 보인다. 그러나 농장의 실소유주인 피뇰이 부지개발을 이유로 키메트에게 퇴거 명령을 내리면서 일가족은 혼란에 빠진다. 대신 피뇰은 키메트에게 태양전지판 관리직을 제안하지만 농부가 천직이라고 생각하는 키메트는 제안을 거절하며 피뇰을 거칠게 대한다. 이후, 전지판 사업을 고려해보는 여동생과 키메트의 갈등, 집안에 힘이 되고 싶지만 무기력함을 느끼는 큰 아들의 일탈 등이 크고 작은 사건으로 펼쳐지다가 이야기는 애써 담담하게 씁쓸한 결말에 다다른다.
농장의 아름다운 풍광을 몇 컷의 사진처럼 보여주는 오프닝 시퀀스와 집 뒤 쪽으로 포크레인이 나무를 밀고 있는 마지막 부감 샷은 뚜렷이 대비되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농장 풍경 직후에 ‘알카라스의 여름’(원제: 알카라스)이라는 제목이 뜨면서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알카라스’임을 천명했던 영화는 마지막 신에서 농장이 파괴되는 모습을 포착하고,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가족들의 안타까운 시선을 삽입시킨다. 그러나 과연 이 가족에게 희망이 있을까 하는 질문에 감독은 포크레인과 아이들을 함께 보여줌으로써 긍정적으로 답한다. 천진한 아이들의 뜀박질은 포크레인의 움직임보다 동적이고, 목소리는 포크레인의 육중한 기계음을 불식시키기 때문이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영화의 중반부에서도 농장의 어두운 상황과 별개로 싱그러운 자연에 파묻혀 식사를 나누고 잡담을 나누는 대가족의 모습이 즐겁고 행복하게 묘사된다. 거부와 저항이 무색하게도 시대는 변할 수밖에 없지만, 그 변화 속에 사라져간 시간과 기억들은 잊지 않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가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필자소개>
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
지난 달 개최된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아바타: 물의 길’(감독 제임스 캐머런, 2021) 편집 영상이 약 18분간 공개되었다. 2009년작 ‘아바타’(감독 제임스 캐머런)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관객이 극장에서 본 영화로 알려져 있기에 13년만에 공개된 2편에 대한 관심 또한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2편에서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나비족이 된 제이크 설리와 아내 네이티리의 모험이 다시 한 번 펼쳐지는데,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판도라 행성의 바닷속이 주요 공간이다. 2편의 수중 액션 신은 13년 동안 진화된 혁신적 CG 기술로 구현되어 1편이 개봉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관객들에게 새로운 영화적 경험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1편의 음악은 기존 SF 장르의 영웅 서사를 따르면서도 ‘아바타’ 시리즈가 추구하는 환경 및 민족문화 보존이라는 주제에 충실한 방향으로 작곡됐다. 음악감독이었던 제임스 호너는 민족 음악학자와 함께 작업하면서 나비족의 테마들을 만들어냈는데, 영화 후반부, 나비족이 이크라와 말을 타고 출격하는 장면부터 인간의 최첨단 병기들과 맞붙는 장면에는 클래식 악기들에 말발굽 소리, 이크라가 내는 소리, 나비족의 언어, 물소리 등을 뒤섞어 자연의 모든 생명체가 연결되어 있는 판도라 행성의 공간 및 나비족 전투의 특수성을 잘 살려냈다.
제임스 호너는 제임스 캐머런 감독과 작업해 오면서 ‘타이타닉’(1997)의 음악도 담당한 바 있는데, 스코어 뿐 아니라 그 해 최고의 오리지널 송이었던 ‘My Heart Will Go On’을 윌 제닝스와 함께 작곡해 오스카상과 그래미상, 골든 글로브상까지 모두 거머쥐었다. 안타깝게도 그는 2015년에 경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했는데, ‘아바타: 물의 길’의 음악은 그의 동료였던 영국 출신 작곡가, 사이먼 프랭글랜이 맡았다. 1편의 테마들을 어떻게 편곡했을지, 바닷속 자연의 소리와 오케스트라는 어떻게 조화시켰을지 궁금하다. 사이먼 프랭글랜 역시 스코어 뿐 아니라 대중음악에 뛰어난 작곡가이므로 2편의 오리지널 송 또한 기대해 봐도 좋을 것 같다.
윤성은의 Pick 무비 그 달던 복숭아는 어디에서 왔을까, ‘알카라스의 여름’
정보통신기술의 융합을 통해 이루어지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1차산업 종사자들의 이야기는 낯설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땀방울 없이는 우리 앞에 단 한 번의 식탁도 차려지지 못했을 것이다. 복숭아 농장을 일구며 살아가는 대가족의 이야기, ‘알카라스의 여름’(감독 카를라 시몬)은 감독의 말처럼 ‘누구에게나 가족이 있고, 모든 나라에 농업이 있기에’ 보편적인 주제를 전달하고 있는 영화다. 농장일이나 농촌 생활에 무지한 사람이라도 등장인물들 한 사람 한 사람에 공감하고 이입하도록 만드는 연출력에서 올해(72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 수상작의 위엄이 느껴진다.
복숭아 농장과 가족이 삶의 전부인 키메트는 부모님과 아내, 3남매의 가장으로서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다. 여동생 부부와 아이들도 자주 키메트를 방문해 농장은 북적대기 일쑤다.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햇살처럼 이들의 삶에는 에너지가 넘치고, 잘 익은 복숭아처럼 가족들의 관계도 단단해 보인다. 그러나 농장의 실소유주인 피뇰이 부지개발을 이유로 키메트에게 퇴거 명령을 내리면서 일가족은 혼란에 빠진다. 대신 피뇰은 키메트에게 태양전지판 관리직을 제안하지만 농부가 천직이라고 생각하는 키메트는 제안을 거절하며 피뇰을 거칠게 대한다. 이후, 전지판 사업을 고려해보는 여동생과 키메트의 갈등, 집안에 힘이 되고 싶지만 무기력함을 느끼는 큰 아들의 일탈 등이 크고 작은 사건으로 펼쳐지다가 이야기는 애써 담담하게 씁쓸한 결말에 다다른다.
농장의 아름다운 풍광을 몇 컷의 사진처럼 보여주는 오프닝 시퀀스와 집 뒤 쪽으로 포크레인이 나무를 밀고 있는 마지막 부감 샷은 뚜렷이 대비되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농장 풍경 직후에 ‘알카라스의 여름’(원제: 알카라스)이라는 제목이 뜨면서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알카라스’임을 천명했던 영화는 마지막 신에서 농장이 파괴되는 모습을 포착하고,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가족들의 안타까운 시선을 삽입시킨다. 그러나 과연 이 가족에게 희망이 있을까 하는 질문에 감독은 포크레인과 아이들을 함께 보여줌으로써 긍정적으로 답한다. 천진한 아이들의 뜀박질은 포크레인의 움직임보다 동적이고, 목소리는 포크레인의 육중한 기계음을 불식시키기 때문이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영화의 중반부에서도 농장의 어두운 상황과 별개로 싱그러운 자연에 파묻혀 식사를 나누고 잡담을 나누는 대가족의 모습이 즐겁고 행복하게 묘사된다. 거부와 저항이 무색하게도 시대는 변할 수밖에 없지만, 그 변화 속에 사라져간 시간과 기억들은 잊지 않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가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필자소개>
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