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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원의 커튼 콜 (Curtain Call)
편집부
입력 2022-09-13 18:0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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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뮤지컬의 새로운 도전을 꿈꾸다_뮤지컬 웃는 남자.
 
원작은 바로 빅토르 위고가 1869년 발표한 소설이다. 영화광이라면 2012년 장 피에르 아메리스 감독이 만들고 제라르 드 빠르디유가 출연했던 프랑스 영화 ‘웃는 남자(L'homme qui rit)’를 떠올릴 수도 있다. 당시 ‘영화 베트맨에 나오는 조커의 탄생’이라는 조금은 엉뚱한 홍보문구가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는데 일부러 얼굴을 칼로 찢어 항상 웃는 모습을 만들었다는 캐릭터 탄생의 간접적 모티브를 알 수 있다는 의미였다. 사실 소설의 배경이 되던 시절 유럽에서는 귀족들이 노예나 어린 아이의 얼굴을 망측하게 만들어 유희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항상 웃는 얼굴이지만 그 웃음에 담긴 비틀린 사회에 대한 조롱과 심지어 그런 시절을 살아남아야 했던 민초들의 페이소스는 그 자체로 묘한 감상을 자아내는 매력을 담아내기 마련이다. 빅토르 위고가 가장 사랑했다는 소설이라는 별칭이 생겨난 이유도 그래서 나름 이해할 만하다.
 
뮤지컬로 환생한 ‘웃는 남자’는 한국 뮤지컬계의 현재와 미래를 담고 있다. 뮤지컬 ‘햄릿’, ‘모차르트’, ‘엘리자벳’ 등을 제작한 EMK 뮤지컬 컴퍼니가 5년여 세월동안 공을 들여 마침내 선을 보였던 창작 뮤지컬이었기 때문이다. 주로 체코나 오스트리아 등지 그리고 일본에서 흥행을 기록한 유럽 배경의 역사 뮤지컬을 번안 무대로 꾸몄던 제작사가 새로운 한국 뮤지컬을 향한 도전을 개시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이례적이고 또한 고무적이라 인정할 만하다. 단순히 창작 뮤지컬이 수입 뮤지컬에 비해 더 유리한 수익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장점 때문만이 아니라 창의적인 노력을 집중해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콘텐츠를 제작해냄으로써 대한민국을 단순한 소비 시장을 넘어 글로벌 문화산업 환경 속의 창작 기지로서 그 성장 가능성을 선보였다는 박수받을 만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뮤지컬 ‘웃는 남자’는 일본어로 번안돼 해외에서 막을 올렸던 진기록도 갖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이 발발하기 이전인 지난 2019년 여름 도쿄 닛세이극장에서 29회 일정으로 시작된 투어는 나고야 미소노좌, 토야마 나이카와 문화홀, 오사카 우메다예술극장과 후쿠오카 키타큐수 소레이유홀 등 모두 5개 지역을 순회하며 인기를 끌었다. 우리나라에서 글로벌 제작진에 의해 만들어진 뮤지컬 작품이 초연 두 해만에 일본을 순회했다는 기록 자체가 세계 시장에서의 한국의 위치을 알려주는 것 같아 뿌듯한 사건이었다. 우리말 초연 무대에서 양준모와 정성화가 맡았던 인정 많은 우르수스로는 오스트리아산 뮤지컬 ‘엘리자벳’에서 토드(일본 버전의 토드는 김준수가 열연했던 우리 무대와 달리 관록의 배우가 나와 비교적 진중하고 무게감 있는 연기를 선보였다)를, 또 일본 제작사 토호의 빅 히트작이었던 일본어 버전의 ‘레 미제라블’에서 장발장 역으로 등장했으며 여러 텔레비전 드라마를 통해 사랑받고 있는 일본의 국민배우 야마구치 유이치로가 등장해 특유의 온화함과 부드러운 연기로 극의 중심을 잡아주는 멋진 연기를 선보였다. 과거 뮤지컬 산업의 한류가 단지 ‘우리 것’을 ‘남’에게 파는 것에 집중했다면, ‘웃는 남자’는 이제 공연한류의 2.0시대라는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더욱 흥미로운 사례가 됐다.
 
뮤지컬 ‘웃는 남자’의 미덕은 일단 화려한 볼거리다. 가장 뛰어난 것은 단연 무대다. 쉬지 않고 이어지는 무대 전환은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무대 디자이너인 오필영의 작품이다. 이미 전작인 또 다른 창작 뮤지컬 ‘마타 하리’를 통해 비행기가 하늘을 날고 영상의 디졸브같은 자연스런 장면전환의 다양한 무대적 상상력을 실현해냈던 그는 ‘웃는 남자’에서 한층 세련된 무대적 상상력을 구체화해냈다. 특히, 주인공인 그윈플렌의 아픔을 상징하는 붉은 웃음은 단지 배우의 얼굴 뿐 아니라 무대 장치들에도 담겨 시종일관 관객들의 시선을 압도한다.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을 통해 세워진다’라는 의미심장한 문구가 노래로, 이미지로, 혹은 무대 세트로 등장할 때마다 화려함 속에 감춰진 시대의 비극이라는 극적인 아이러니가 가슴 저리게 펼쳐진다.

 
배우들의 면면도 ‘웃는 남자’가 지닌 매력이다. 올해 막을 올렸던 2022년 앙코르 버전에서는 초연 멤버였던 박효신, 박강현, 박은태가 가세해 좋은 무대를 선보였다. 여기에 민영기와 양준모가 선보이는 우르수스, 이수빈과 유소리가 만들어냈던 순수한 여인 데아, 신영숙, 김소향, 최성원, 김승대, 이상준, 김영주 등 관록파 뮤지컬 배우들의 조화는 꽤나 만족스런 무대 체험을 선사했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들은 뮤지컬의 소재로 인기를 누리는 경우가 많다. ‘레 미제라블’이 그랬고, ‘노트르담 드 파리’도 마찬가지다. 국내에서는 이런 작품들을 ‘노블컬’이라 부른다. 물론 소설을 의미하는 ‘노블’과 ‘뮤지컬’의 합성어다. 아무래도 책에서 만났던 활자가 무대로 구체화되며 형상화되는 모습이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묘미가 된다. 하지만 소설과 뮤지컬의 결합은 사실 따로 이름을 명명하지 않아도 너무나 흔한 뮤지컬계의 흥행 공식이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을 가져다 만든 ‘올리버!’나 ‘두 도시 이야기’, ‘크리스마스 캐롤’이 그런 경우이고, ‘지킬 앤 하이드’, ‘거미여인의 키스’, ‘마틸다’, 체코 뮤지컬 ‘햄릿’, 프랑스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 역시 모두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는 흥행작들이다.
 
무대를 보고 원작 소설을 다시 찾아 읽는 것도 흥미로운 공연 감상법이다. 원작 소설이 한참 세월이 지난 후 다시 각광을 받는다는 ‘역주행의 신화’가 K팝에서만 목격되는 현상이 아니라는 점도 흥미롭다. 무엇보다 빠르게 성장해온 한국 뮤지컬의 글로벌 뮤지컬 시장을 향한 흥미로운 도전이라는 점은 무척이나 반갑다. 앞으로 얼마나 큰 파괴력을 선보이게 될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필자소개>
원종원씨는 한국외대 재학 시절, 영국을 여행하다가 만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활동을 시작했다. 뮤지컬 저변을 확대하고자 국내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를 결성, 관극운동을 펼쳤다. TV의 프로듀서와 일간지 기자,특파원을 거쳤으며, 현재 일간지와 경제지 등 여러 매체에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대학(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 강단에 서고 있는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컬 마니아이자 전문 평론가로 지면과 방송 등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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