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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준의 클래스토리
편집부
입력 2022-09-02 10:16 수정 최종수정 2022-09-02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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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대화>

1988년 10월 3일, 빈의 무직페어라인(Musikverein)에서는 카라얀(H. v. Karajan, 1908-1989)이 이끄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하 베를린 필)의 공연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현악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연주된 쇤베르크(A. Schönberg, 1874-1951)의 <정화된 밤>이 전반부를 장식하였고 인터미션 후에는 브람스(J. Brahms, 1833-1897)의 교향곡 제 2번이 연주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20분 정도면 끝날 인터미션이 30분이 지나도 도무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카라얀이 대기실에 찾아온 어떤 손님과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카라얀은 오랜만에 만난 그 손님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방에 들이지 않은 채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고 결국 그 날의 인터미션은 거의 45분이나 소요되고 말았습니다. 브람스 교향곡 제 2번의 전체 연주 시간과 맞먹는 시간이었지요.

카라얀과 음악회 중간에 이토록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눈 그 손님은 누구였을까요? 바로 번스타인(L. Bernstein, 1918-1990)이었습니다. 마침 번스타인은 카라얀의 공연이 열리기 직전인 10월 1일과 2일,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하 빈 필)를 같은 장소에서 지휘했었지요. 한 시대를 풍미한 두 사람의 만남은 그 자체로 흥미를 불러 일으키는데 궁금해지는 것은 그들의 대화 내용입니다. 그들은 그 날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일까요?

싱거운 결론이지만, 그 날 어떤 이야기가 두 사람 사이에 오고 갔는지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카라얀과 번스타인 모두 그 날의 대화에 대하여 따로 밝힌 바도 없고요. 예술에 대한 열띤 토론이 진행되었을 수도 있지만 그들이 서로 오랜만에 만난 만큼,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주로 나누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어쩌면 카라얀이 당시 악화될대로 악화된 베를린 필과의 관계에 대한 속내를 번스타인에게 털어놓았을 수도 있겠지요. (카라얀은 1980년대 초반, 여성 클라리네티스트 자비네 마이어를 베를린 필 단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입단시키려 했는데 이는 양측 사이에 큰 갈등을 불러일으켰고, 이 갈등은 결국 해결되지 못했습니다.)

카라얀과 번스타인은 1954년 1월에 밀라노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두 사람 모두 스칼라 극장(Teatro alla Scala)에서 오페라를 지휘하는 일정이 있었지요. 이후로 두 사람은 빈이나 잘츠부르크에서 때때로 만남을 이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1959년 11월에는 카라얀이 번스타인이 상임지휘자로 있던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정기 연주회에 객원 지휘자로 등장하여 총 8번의 연주회를 이끌기도 했습니다. 이는 카라얀이 뉴욕 필하모닉을 그의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지휘했던 기록으로 남았지요.


1959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 카라얀(좌), 드미트리 미트로풀로스(중간), 그리고 번스타인(우)
(출처: wienerphilharmoniker.at)


사람들은 두 사람을 라이벌 구도에 놓고 비교하곤 했습니다. 그들이 세상을 떠난지 30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카라얀 VS 번스타인>과 같은 글들이 종종 실리곤 하지요. 동시대의 뛰어난 지휘자들이 많았지만, 이 두 사람의 스타일이 워낙 대조적이었던 데다가, 번스타인이 미국 출신으로서는 최초로 정상의 위치에 오른 지휘자였다는 사실도 이러한 라이벌 구도에 한 몫 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번스타인이 카라얀이 오랫동안 상임 지휘자로 있던 베를린 필을 거의 지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두고, 카라얀이 그를 견제했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번스타인은 1979년에 단 한 번 베를린 필을 지휘하였는데, 그 음악회는 베를린 필의 정기 연주회가 아닌 국제 앰네스티 자선 음악회였지요.

세간의 이러한 시선을 카라얀과 번스타인은 어떻게 생각하였을까요? 그리고, 그들은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았을까요? 이러한 궁금증에 대해 두 사람의 솔직한 생각을 알기란 사실 어렵습니다. 공식적인 인터뷰와 속마음이 다를 가능성은 항상 충분하고요. 이 글 첫머리의 긴 인터미션에 대한 에피소드를 소개한 당시 무직페어라인의 감독 안귀얀(T. Angyan, 1953- )은 과거는 알지 못한다고 전제하면서도, 1988년의 만남 당시 두 사람 사이에 어떤 라이벌 의식 같은 것은 느낄 수 없었다고 회상하였습니다.

그 만남 이후 채 1년이 지나지 않은 이듬해 7월 16일, 카라얀은 잘츠부르크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안귀얀은 3일 후 밀라노로 가서 그곳에서 음악회를 지휘하던 번스타인을 만나 무직페어라인에서 열릴 카라얀의 추모 음악회 지휘를 부탁하였습니다. 번스타인은 그 부탁을 들어주었지요. 추모 음악회는 카라얀의 사망 두 달 후에 열렸습니다. 그 음악회에서 번스타인은 빈 필을 지휘하여 현악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편곡된 베토벤(L. v. Beethoven, 1770-1827)의 마지막 현악사중주(Op. 135) 중 느린 악장을 고인을 위해 연주했습니다. 그리고, 1년이 조금 지난 1990년 10월 14일, 번스타인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쩌면 그들 생애 마지막으로 이루어졌을 1988년 가을의 그 만남과 대화. 마지막이라는 수식어는 그 만남과 대화를 왠지 더욱 애틋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카라얀과 번스타인이 남겨놓은 예술을 음미하며 지나치게 라이벌 구도에 그 두 사람을 가두어놓지 말고 그들이 나누었을 예술적, 인간적 교류를 상상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추천영상: 번스타인이 빈 필을 지휘하여 연주한 베토벤의 마지막 현악사중주(Op. 135)입니다. 현악 오케스트라 버전입니다. 전곡이 연주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카라얀 추모 음악회 실황은 아니고, 추모 음악회 당일 오후와 그 다음 날 오전 연주회의 편집본으로 보입니다. (추모 음악회는 1989년 9월 16일 정오에 열렸습니다.) 원래의 현악사중주 버전에 비해 현악 오케스트라 버전은 소리의 풍성함에 있어서는 당연히 강점이 있지만, 현악사중주 특유의 긴장감과 깊은 내면으로 향하는 느낌은 그만큼 옅어졌다는 단점도 존재합니다. 음악적인 평가와는 별도로, 이 영상이 카라얀을 추모하는 시기에 촬영되었기에, 느린 악장에서 추모의 분위기를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EBVUGRN_QY

<필자소개>
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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