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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준의 클래스토리
편집부
입력 2022-07-28 12:25 수정 최종수정 2022-08-02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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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바이올린에 얽힌 이야기  

1936년 2월 28일 저녁, 카네기홀에서는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중 한 명인 브로니슬라프 후버만(B. Huberman, 1882~1947)의 연주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폴란드 태생의 유태인인 그는 당시 최고의 바이올린 제작자인 스트라디바리(A. Stradivari, 1644~1737)와 과르네리(G. Guarneri, 1698~1744)가 만든 바이올린을 하나씩 소유하고 있었는데 그 두 악기를 하나의 케이스 안에 넣어서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연주하는 작품에 더 알맞은 악기를 선택해서 연주했지요. 카네기홀에서 열린 그 연주회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느 작품을 과르네리 바이올린으로 연주하고 있을 때 대기실에 있던 그의 스트라디바리 바이올린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1713년에 만들어졌으며 이전 소유자의 이름을 따서 “깁슨-스트라디바리(Gibson-Stradivari/Ex-Gibson)”로 불리우던 이 악기를 누군가가 후버만의 대기실에 들어와 훔쳐간 것이었지요. 사실 이 악기는 1919년에 빈의 한 호텔에서 도둑맞은 적이 있었습니다. 도둑은 그 악기를 팔려고 시도했지만 그 때문에 검거되었고 후버만은 자신의 악기를 사흘 만에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카네기홀에서 사라진 후버만의 스트라디바리는 사람들의 많은 관심과 경찰의 수사에도 불구하고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후버만은 자신의 악기에 대한 보험금 3만 달러를 지급받았으나 그의 악기를 다시 볼 수 없었고 1947년 64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1985년 8월, 미국 코네티컷 주에서 한 남성이 위암으로 사망했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였던 그의 이름은 줄리언 알트만(J. Altman). 줄리어드 음대를 졸업했지만 전문 클래식 연주자의 길을 걷는 대신 주로 카페와 레스토랑에서 연주하며 살았던 그는 당시 어린이를 성적으로 학대한 죄로 1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이었죠. 그런데, 죽음이 임박했을 때 그는 그의 아내에게 그가 평생을 감춰왔던 놀라운 비밀을 털어놓았습니다. 자신이 평생동안 연주해왔던 바이올린이 바로 50여년 전 연기처럼 사라져버린 후버만의 스트라디바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그가 1936년의 그날 밤 이 스트라디바리를 훔친 범인인 것일까요? 알트만은 죽음을 앞두고 아내에게 이 악기에 얽힌 비밀을 밝히는 순간에도 진실을 명쾌하게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아내에게 진짜 도둑인 자신의 친구로부터 그 악기를 100달러를 주고 샀다고 했지만, 아내가 계속 의심하자 그날 밤 자신이 카네기홀 안으로 들어가 후버만의 스트라디바리를 코트 속에 숨긴 채 홀 밖으로 나왔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았지요. 정황상 카네기홀에서 연주를 했던 경험이 있었고 무대 뒤와 대기실로 향하는 길을 잘 알고 있었을 알트만 자신이 범인이라는 데에 무게가 실립니다.

바이올리니스트 브로니슬라프 후버만 (1930년) / (사진: Boris Lipnitzki/East News)

알트만이 사망한 이후 그의 부인은 오래 전 후버만에게 보험금을 지급하여 이 악기의 법적 소유권을 갖고 있던 보험회사 Lloyd’s of London에 악기를 돌려주었고 포상금(Finder’s fee) 명목으로 약 26만 달러를 받습니다. 그녀는 처음에 그녀의 남편이 악기를 직접 훔쳤다는 이야기를 숨기는 등 남편처럼 정직하지 않은 면모를 보였는데 포상금으로 받은 금액을 남편의 유산에 포함시키지 않아서 남편의 가족들과 유산을 둘러싼 법정 분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26만 달러라는 많은 돈을 받았으나 결국 그녀는 가난하게 사망하고 말았지요. 

알트만은 자신이 훔쳐 사용하고 있던 악기가 도난당한 후버만의 유명한 악기라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악기를 구두약으로 거무스레하게 칠해버렸는데 이를 제거하는 데에 9개월이나 걸렸습니다. 오랜 작업 끝에 원래의 불그스름한 광택을 회복한 후버만의 스트라디바리는 이렇게 50여년 만에 다시 세상에 등장하였습니다. 그리고, 1988년 아마데우스 콰르텟의 제 1바이올린 주자였던 노르베르트 브라이닌(N. Brainin, 1923~2005)이 이 스트라디바리를 구입하였고 2001년부터는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J. Bell, 1967~ )이 이 악기로 연주하고 있습니다. 1990년대 중반 브라이닌과 실내악 연주를 함께 하며 잠시 후버만의 스트라디바리를 연주해볼 수 있었던 벨은 2001년의 어느날 연주를 앞두고 런던의 유명 악기사에서 우연히 그리고 운명적으로 다시 이 바이올린을 만났습니다. 다시 이 스트라디바리를 잠시 연주할 기회를 얻은 벨은 연주를 시작한지 수초만에 “이것은 내 바이올린이야!”라고 생각했고, 이 악기를 반드시 구입해야겠다고 결심했지요. 그 결심은 결실을 맺어, 원래 독일의 한 기업가에게 팔려 박물관에 전시될 예정이었던 후버만의 스트라디바리는 벨을 통해 지금도 그 빛나는 소리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영원히 사라진 줄 알았던 악기가 다시 세상에 등장한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도난사건이 있었던 당시에 후버만이 이 악기를 연주하며 이루고자 했던 일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지요. 1930년대에 나치의 등장을 보며 앞날을 예견한 후버만은 실력있는 유태인 연주자들을 모아 팔레스타인에서 오케스트라를 설립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했고, 그는 오케스트라 설립 기금 마련을 위해 여러 연주회를 개최했지요. 1936년 카네기홀에서의 연주회도 바로 그 일환이었습니다. 그의 악기는 도난당했지만 같은 해 12월 그가 설립한 ‘팔레스타인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토스카니니(A. Toscanini, 1867~1957)의 지휘로 첫 연주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오케스트라는 후에 이름이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지요. 후버만의 이 계획은 결과적으로 1천여명의 생명을 나치로부터 구한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진정한 예술가의 목표는 예술 그 자체가 아니라 인류애라고 말했던 후버만. 그의 신념이 깃든 이 스트라디바리의 소리가 계속해서 찬란하게 울려 퍼지기를 기대합니다.

추천영상: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이 직접 편곡하고 연주한 쇼팽의 녹턴 Op. 9, No. 2 입니다. 암스테르담에 있는 반 고흐 미술관에서 연주했고 바이올린은 물론 후버만이 한 때 연주했던 바로 그 스트라디바리입니다. 서정적인 이 작품에서 시종일관 아름답게 빛나는 바이올린 소리를 들으니, 후버만이 이 악기를 도난당하고 얼마나 크게 상심했을지 상상하게 되기도 합니다. 벨이 특별한 애정을 표현해왔던 이 스트라디바리의 소리를 감상해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iuCheDo7HQM

<필자소개>
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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